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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모교 방문

50년 만에 찾은 모교의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똑같았습니다. 반세기동안 이토록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곧 나의 모교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어쩌면 당연해야 할,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학교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50년 만에 모교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지구 정 반대쪽에 있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타운까지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날아가야 할 정도로 어렵게 성사된 방문이었습니다. 레게의 전설 밥 말리와 번개 우사인 볼트의 나라이며, 캐리비언 해적의 본거지가 있던 곳입니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했을 때 하도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세상에, 지상의 천국 아닌가!”하고 탄성을 질렀다던 섬나라입니다.

아침 조회시간의 충격
학교에 도착하니 저 역시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충격적이었습니다.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중학생 시절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낡은 칠판, 자그마한 받침이 달려있는 걸상, 뜨거운 열대 햇빛 가리개용으로 만든 창틀……. 교실을 보고 또 봐도 50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찼습니다. 50년 전에는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기적처럼 발전하는 동안 이곳에는 시간이 멈췄었나 봅니다. 교복이 똑같았고, 선생님의 모습도 점심 메뉴도 그대로였습니다. 사회가 이토록 변하지 않은 게 더 큰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침 월요일이어서 실내 체육관에서 아침 조회가 있었고, 교장선생님이 저를 전교생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얼떨결에 몇 마디 하게 됐지만 단상 위에서 내려 본 800여 명의 중·고등학생 모습이 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각 반별로 늘어선 줄은 삐뚤빼뚤했고 실내는 잡담으로 웅성웅성했습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께서 단상에 올라서니 10초 이내에 조용해졌고, 가장 먼저 다 함께 교가를 불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인사 말씀 중간에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바로 전(前)주에 치러진 총선에 부정부패와 폭력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자랑스러우냐고 반문하며 학생들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저는 두 번째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답을 하는 게 아닙니까. 조회시간인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모든 학생이 들을 수 있도록 반복해 주는 게 아닙니까. “참여, 용기, 평화, 민주……. 간음.” 어떤 장난꾸러기가 짓궂게 내뱉은 말까지 포함했습니다. 게다가 “어떤 승리에 도취한 시민이 간음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좋은 행동은 아니지요”라고 바람직한 행동의 한계를 확실하게 그어주었습니다.

끝으로 전달 사항이 있는 학생들이 있으면 모두 단상 위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8명의 학생이 차례대로 방과후동아리활동과 새로운 학내 규칙을 간결하게 설명했습니다. 운동부는 축구팀이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패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패자를 위한 박수 소리가 너무나 우렁차서 제 가슴이 다 뭉클해졌습니다. 조회는 국가 제창으로 끝났습니다.

교육에 대한 정답은 어디에
비록 줄이 정확하게 일자로 맞춰지지는 않았지만 조회에는 분명 질서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옳은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서로 배려합니다. 여기에는 인권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바를 다 허락하지 않지만 학생들의 발언은 심지어 엉뚱하더라도 존중해주고 또 하나의 교육 기회로 삼습니다. 민주주의도 확실하게 있습니다. 애국심과 애교심이 전체주의와 충돌하지 않고, 개성과 특성이 개인주의와 혼동되지 않습니다. 비록 지난 반세기 동안 지도자를 잘못 만나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가 되었지만, 자메이카는 여전히 살고 싶은 나라이며 세계적인 스타와 인재를 배출하는 나라입니다. 학생들이 주인의식과 책임 있는 참여로 선생님과 하나가 되는 제 모교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를 이런 학교 모습이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교육에 대한 정답은 아마도 한국 학교와 자메이카 학교의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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