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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교육, 보이지 않는 교육

20세기 최고 문호의 한사람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상대성원리로 과학의 새 지평을 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를 주도한 빌 게이츠 등은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보이지 않는 교육의 힘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교육의 도움 없이는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규 학교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잠재력과 비정규적 학습 결과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게이츠는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였고, 도스토옙스키는 튼튼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 역시 스위스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성적 사고를 통해 과학적 발견을 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듯이 정규 학교 교육 때문만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을 ‘보이는 교육(visible education)’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교육(invisible education)’은 학교 교육이 아닌 개인의 성장 과정이나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이루어진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보이는 교육’과 ‘보이지 않는 교육’이 잘 조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학교에서 간과하기 쉬운 도전정신과 창의적 사고, 끝까지 감내하는 끈기, 삶을 통해 체험한 지혜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생명을 살린 5분의 기적
도스토옙스키는 28살 때 시베리아 벌판에서 사형 당할 운명에 처했다. 사형을 집행한 사람들이 그에게 ‘5분의 시간을 줄테니 이 세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작별 기도하는 데 2분,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형수들에게 작별하는 데 2분, 그리고 눈앞의 자연과 지금까지 서 있게 해준 땅에게 감사하는 데 1분을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곧 죽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하고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그때 저 멀리서 ‘사형 중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일생 동안 5분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교육의 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교육은 자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고 헌 영역을 새 영역으로, 새 영역을 헌 영역으로 바꾸는 일이며,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의의 경쟁을 함과 동시에 협력을 배우는 일이기도 한 것이 교육이다.

과연 게이츠는 아프리카를 구원할 수 있을까?
‘보이는 교육’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교육’에 소홀해질 수 있다. 특히 요즘 학교 현장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인성교육 역시 보이는 교육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육에서 제대로 된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나 도스토옙스키, 게이츠처럼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자기 체험과 자기 훈련, 단련을 통해 인성의 바탕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날과 같은 업적이 가능해진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을, 남과의 지나친 경쟁보다 자기를 바라보는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세계의 지성인들이 즐겨 읽는 잡지 중 하나인 더 뉴요커(The New Yorker)라는 잡지에 게이츠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과연 게이츠는 아프리카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기사 제목이었다. 게이츠가 2000년에 재단을 만들어 5년이 지난 그때까지 15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의 생명을 구원했다는 내용이었다. 의문형 제목과 달리 게이츠가 아프리카 대륙의 그 많은 질병과 전염병 퇴치에 기여하고 있다는 희망과 격려의 기사였다. 게이츠가 처음부터 남을 배려하는 성격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픈 이웃을 보면서 자기 훈련을 통해 이처럼 세계 최고 기부 재단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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