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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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거침없는 영혼의 자유인 - 그리스인 조르바


 강마을의 가을 아침은 안개가 주인입니다. 안개는 강위로 그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며 올라와서는 은사시나무 사이로 하얀 입김을 불어버리면, 세상의 풍경은 제 것입니다. 축축하고 하얀 안개 속에서 우리는 외롭고 무섭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나도 너도 꽃도 나무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

저는 세상살이가 이런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언제나 제 앞의 삶은 두렵고 무섭습니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면 이런 마음이 덜 할까 하였습니다만,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

저는 요즘 학교에서의 일상이 참 힘듭니다. 많은 업무와 수업, 공부, 힘든 인간관계가 매일 반복됩니다. 지친 저를 또 다른 제가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존재는 걱정하며 저에게 말을 합니다.

 

세상 뭐 별거 없어. 그냥 마음 가는대로 살아.”

하루를 잘 버티어 왔잖아, 내일도 그럴 거야. 힘내!”

너 잘하고 있어. 징징 거리지마. 너는 어른이잖아.”

 

이런 저를 비웃는 그를 깊어진 가을날에 만났습니다. 거침없는 영혼의 자유인 조르바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저와 판박이인 그의 대장을 후려치듯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면서 행복하였습니다. 온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조르바는 생명력 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자연의 다른 모습이 조르바입니다. 그리고 그는 참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이로움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새롭지 않은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여인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알았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고 찾았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심장을 가진 사아니, 크고 말이 푸짐한 입이 있으며, 위대한 야성의 정신이 있어 아직 대지의 젓줄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은 사나이였다. 22P

 

그는 사람을 보거나 꽃핀 나무를 보거나 한 잔의 냉수를 대했을 때도 그와 같은 경이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르바는 매일 모든 것을 생전 처음 보는 듯 대했다. 64P

 

행복한 조르바가 산투르를 켜고 껑충껑충 춤을 추는 모습이 보입니다. 늙은 카바레 가수 부불리나를 조르바는 아프로디테로, 작고 귀여운 비둘기로, 순수하고 향기로운 처녀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능력자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멋진 사나이 조르바! 그는 온몸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안개 속에서 제 마음이 어지럽게 헤맨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개 덕분에 옆 자리의 벗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흐릿한 안개 숲으로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는 손으로 느껴지던 벗의 따뜻한 체온 때문이었습니다. 안개 속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안개가 흐르는 그 길을 걸어가는 법은 간단합니다. 앞 사람이 간 그 길을 조금씩 더듬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옆 사람의 온기를 확인하며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고 격려하며 가는 것이겠지요. 삶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축복처럼 안개는 길을 열어 진홍빛 물봉선 말아 올린 꽃잎 한 자락이 보이리라 믿습니다.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박석일 옮김). 동서문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