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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교장의 리더십에서 시작된다

21세기가 막 문을 연 2001년, OECD 교육연구혁신센터(CERI, Center for Educational Research and Innovation)에서 미래학교 여섯 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하였다. 이 시나리오가 전 세계 학교사회에 던진 파문은 어느 때보다 크고 충격적이었다. 학교 붕괴론이나 소멸론을 학자들이 거론한 적은 있어도 OECD에서 공식적으로 학교해체(de-schooling) 가능성을 포함한 학교의 위기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기계학습(deep learning)을 앞세운 알파고의 등장은 학교해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과연 인간만이 학습의 주체인가?’라는 교수·학습의 정체성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교가 곧 교육은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학교(schooling)가 곧 교육(education)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학교활동은 교육적일 것이라는 ‘신화’로부터 교육수요자가 깨어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현재의 학교 교육을 바람직한 미래학교로 이끌어야 하는 학교장의 리더십도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음은 물론이다. 학교장 리더십 위기의 징후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관료주의의 전형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의 표상으로 희화화되고 있다. 영화나 문학작품에서도 학교장의 이미지는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몇십 년 전 얘기를 하고 있느냐?”, “학교문화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모르는가?”라고 항변해 보아도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현상유지 혹은 재구조화   
OECD의 미래학교 시나리오 중 제1의 시나리오는 도대체 변하지 않는(maintaining the ‘status quo’) 관료주의적 학교체제이다. 교실 중심의 전통적 교수·학습이 주된 활동이고 학교장은 국가 통제의 대리자로서 행정과 책무성을 떠맡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경우 교사들이 강력한 노조를 형성하여 국가주의 교육에 대항하면서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적 교육모델을 제안하는 경향에 빠진다는 점이다. 국가 권력과 강성 노조가 묘한 적대적 공생구조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학교의 재구조화(re-schooling)이다. 학교가 대외적으로 지역사회의 핵심적인 중심(center)으로 거듭나거나(시나리오 3) 대내적으로 집중 학습조직으로써의 학교(시나리오 4)로 바뀌는 모델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 시도가 실패하면 학교해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학교를 대신해 학습자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사회가 교육을 맡는 사회(시나리오 5)가 되거나,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팔 듯 지식을 거래하는 시장주의 교육이 심화(시나리오 6)될 가능성이 있다.


교육자라면 누구나 재구조화 모델을 지지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한국 교육에서 재구조화를 위한 시나리오 3과 4로 가기 위해서는 학교 전반의 획기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그 변화를 이끌어 새로운 미래학교로의 연착륙을 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학교장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최근 일부 지방의회에서 학교시설을 의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조례를 통과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열린 교육이 유행하던 시기에 교실과 복도를 터서 열린 교실을 만들었던 시행착오를 떠올리게 한다.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바뀐다는 의미는 단순히 학교의 물리적 공간을 지역주민과 공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학교는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육적 가치에 바탕을 둔 소통이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관계 맺기는 ‘외부의 기대’ 혹은 ‘정치권의 요구’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요구는 갈수록 강도가 세질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마을학교 운동도 학교를 마을 관계망의 일부로 포섭(co-optation)하겠다는 사회 운동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학교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학교를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학교를 대체하는 탈학교 시대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미래학교로의 도정(道程)에서 향후 학교장이 당면하게 될 몇 가지 이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방과후학교는 어떻게 바뀔까
알파고 시대에 암기와 문제풀이식 방과후학교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규교과 수업과 업무에 지친 교사들을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는 유연한 체제로 바꾸거나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지역 결합형이나 나아가 교육수요자, 지방자치단체, 전문기관, 지역사회 단체가 참여하는 위탁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교과 위주의 방과후학교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학생들의 재능과 끼, 문화·예술·체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기 어렵다. 학교장은 방과후학교가 지역사회와 결합하도록 학교 공동체 구성원은 물론 지역사회의 요구를 조화롭게 조정하여야 한다.
  
● 햇빛발전소와 환경 대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수업에서 원전 철폐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절전을 해야 한다거나 대체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산만 뒷받침된다면 전국 모든 학교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면 원전 1기를 줄이고도 여분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햇빛발전소를 비롯한 생태학적 에너지 환경을 학교에 접목하는 것도 미래학교를 위한 학교장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 거창한 시설 확보보다 전문기관과의 연계 추진
학교장의 대외 활동은 그동안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과 협의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학교에 중후장대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국가 예산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학교에 예산이 집중되면 다른 학교는 그만큼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재임 시절에 뭔가 구체적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으로 학교장은 중후장대한 시설 유치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사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요즘은 하드웨어보다 수업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별로 모이지 않는 학교 도서관 시설을 거창하게 만드는 것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전자책(e-book)과 DVD, 동영상 교수·학습자료 등 다양한 영상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문제는 도서 정가의 70%에 달하는 전자책을 단위학교 예산으로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안으로 지역사회의 평생학습관이나 (대학)도서관과 자료를 연계·공유하면 학교에서 따로 구입하지 않고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요즘에는 비행기 조종이나 자동차 운전도 시뮬레이션으로 실기교육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시뮬레이션으로 하는 사이버 실험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문기관과 연계하여 사이버 교수·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학교·대학 협력 프로그램(School-University partnership program)은 대학의 R&D 역량을 초·중등학교에 다양하게 접목하고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 형성 방편으로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단순한 자매결연 수준을 뛰어넘어 진학과 함께 수업 및 연구·진로·실험·실습·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예술교육의 평등성 확보
알파고와 같은 기계 로봇이 넘볼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 예술이라는 얘기가 있다. 예술은 타고난 재능과 잠재능력에 좌우되기 때문에 공부를 못 하더라도 얼마든지 성공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예술교육이 사교육에 의존하면서 불평등 기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소수만이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학교장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화·예술 자원을 활용하여 잠재된 예술적 재능을 누구나 꽃피울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 알바족과 노동인권
잠자는 교실의 주범은 소위 ‘알바생’으로 불리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알바생들에게 수업규칙을 강요할 뿐 당사자 입장에서 문제의 해법을 고민하지 않았다. 노동 인권도 보수와 진보의 정파 논쟁에 의해 의제가 분리되어 학교에서 다루기를 꺼려하는 사안이 됐다. 알바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대체로 학교에서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행정구청의 지원을 받아 인근 대학의 평생교육원과 연계하여 알바생을 대상으로 한 프랜차이즈 샵 매니저 과정을 개설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강의하던 현직 매니저들이 감동할 정도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근로기준법 시간에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줄을 이었다. 사회에 나가면 종업원들이 행복한 프랜차이즈를 경영해 보고 싶다는 꿈을 얘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뒤처진 아이들 특히 알바생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잃었던 꿈을 되찾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책무성 역시 학교장에게 부여되어 있다.     
 
● ‘百世시대’의 자산, 스포츠
기초체력은 기초학력보다 일선 학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 로봇이 생산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에 개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필수조건은 기초체력과 예능, 문화 감수성이다. 입시만을 중시하는 학교 경영에서 벗어나 지식과 문화·예술·체육 등으로 수준을 높이는 학교 경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지식경영을 위해 집단 지성의 학습조직을 만드는 일, 학부모의 오래된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꾸어 가는 일, 지역사회의 유관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 등을 선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이란?
우리는 학교장 리더십을 논의할 때 주로 민주성의 잣대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권위적 리더십에서 벗어나 섬기는 리더십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어떤 교육학자는 외국의 일부 학교처럼 열쇠뭉치를 들고 문단속하는 교장이 바람직한 교장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라 방임형 리더십으로 잘못된 관점이다. 모든 정형적 가치체계와 권위가 수요자들의 편의적 요구에 의해 해체되는 포스트모던화된 학교 리더십의 변형인 것이다.


학교장은 미래학교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change maker)’으로서의 시대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그 어떤 유사한 형태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장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구성원들의 집단지성 역량을 강화하고, 갈등을 조율하며, 학교 울타리를 넘나들며 교육 영토를 넓힘으로써 학교가 명실상부하게 지역사회의 지식과 정보, 문화와 복지의 센터이자 허브의 역할을 하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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