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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육이 '깨어있는 시민'을 양성해야

우리는 지금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격랑의 파도 앞에 서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 사는 한 지인이 조그만 연하엽서에 "귀국의 정치 상황이 빨리 평온을 찾기 바란다" 기원을 적어 보내면서 힘들어 하는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상황은 결코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리더가 엉망인 나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도자들의 모습이 이렇게 외국인들에게 비치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를 어디부터 고쳐야 할 것인가? 항상 문제가 발생하면 대안을 마련하는데 고민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근본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국민, 즉, '깨어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입시 경쟁’이라는 큰 괴물 앞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보다 국어, 영어, 수학이 중시된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 한국사회를 조명하면서 비판의 자유와 토론의 자유를 통해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새로운 교사 운동이 시작될 것을 기대한다.


그 기대는 단순한 근거 때문이다. 무릇 생명은 결코 누르는 힘에 주저앉지 않는다. 아무리 흙더미가 무거워도 밑으로 밑으로 뿌리를 내린 후에 생명은 끝내 때가 차면 고개를 쳐들고 새순을 틔우고 나온다. 그런 생명의 기운이 교사들 가슴속에 여전히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입시를 넘는 새로운 실천에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이 가슴속에 파고 들어서, 응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불편한 삶을 자청하는 교사들이 1000명만 있어도,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어디 그런 교사들 없겠는가?

 

이제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널려 있다. 지식의 전달 방식과 체계가 다양한 시대이다. 교사만 유일한 전문가로 의지하는 함정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일상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의존성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다.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든지,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에 접근하게 만들고, 의문스러운 것에 대하여 무언가 쓰고, 뭘 만들고, 3차, 4차 여러 가지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해 볼 수 있는 경험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학생은 소비자가 아니다. 교사가 장사꾼이 아니듯이... 그럼 장사꾼은 나쁘고 교사는 고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상업도 다 훌륭한 직업인데, 그런 뜻이 아니다. 만남의 성격이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면 한쪽은 대등하다. 이를 전제로 하고 만남이 이루어진다.  적어도 교육적인 관계로 만날 때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건가를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성적표 속에는 교사의 전문가적 권위가 듬뿍 담겨 있다. 영국 교사는 서술 평가 속에 ‘탁월하다'

는 기록을 남긴다. 영국 대학은 교사가 ‘탁월하다’고 남긴 기록을 존중한다. 이 성적을 가지고 이 학생이 옥스퍼드대를 간다. 이를 보아 영국의 대학들이 고등학교 교사들의 평가를 매우 존중해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의 전문적 권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국의 판사나 의사들의 판결문이나 처방전과 동급으로 교사들의 평가 기록을 취급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거짓으로 뒤범벅이 된 대학이 부정한 방법으로 평가를 하여 교육에 대한 신뢰가 망가진 모습을 보니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이 변하려면 교사의 권위가 바르게 서야 하고 행정이 이를 뒷받치 할 때 올바른 교육행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