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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근대(近代)를 먹고 자란 도시, 항구

도시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역사다. 서울도 조선과 백제의 역사가 서린 고도(古都)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내세울만한 시간의 깊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부산이나 군산은 인근의 큰 고을인 동래와 옥구에 부속된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거치며 변화가 일어난 근대도시. 특히 오랜 시간 대외강경책이며 해금정책을 통해 교류가 없다가 개항을 맞아 변화한 항구도시의 변모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그곳에서 근현대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피난민의 한, 땀 곳곳에 베인 도시 부산=부산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어촌인 부산포였지만 그렇다고 여느 고을과 같지는 않았다. 동래 왜관이라고 부르던 곳이 이전을 거듭하다가 지금의 용두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부산은 대일본 교섭창구였다. 그러다가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며 부산은 개항장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대륙 침략의 교두보가 된 부산은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접점으로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미 급격히 성장한 부산은 해방 후 한국전쟁이 터지며 더욱 주목 받았다. 수십 만 명의 재한일본인이 돌아가는 곳이며 또 수십 만 명의 재일동포가 돌아온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수도 역할까지 맡았다. 어려운 시절, 삶을 찾아 또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모여들었고 광복 이전 50만이 넘었던 인구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몇 배가 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의 원조물자가 도착했고 경부선 고속도로를 통해 수출이 이뤄지며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 도시로 성장했다.
 
격동의 근현대사는 부산 곳곳에 남아있다. 용두산 일대를 찾는다면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 건물을 개조한 근대역사관에서 부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한국전쟁 후 미군의 군용물자와 부산항으로 밀수된 온갖 물건들이 거래됐던 국제시장과 미군물자 중 특히 통조림을 많이 팔아 깡통시장으로 유명해진 부평시장은 맛 탐방지를 넘어 역사 순례지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서울을 빼앗기고 떠난 이승만 정부는 부산에 임시수도를 마련했는데, 그때 사용했던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정부청사로 쓰던 동아대박물관도 같이 둘러보면 좋다. 임시수도가 들어선 부산은 피난민들이 안전한 지역으로 여겼기에 판잣집으로 채워진 달동네가 만들어졌다. 해방 후 피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초량 이바구길을 찾는 것도 좋다. 이바구길 168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시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갔을 민초들의 땀을 느낄 수 있고 올라간 다음에는 그 땀의 결과로 이뤄진 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추천-부산 근대역사 1일 여행 코스
용두산 타워(부산항 조망) → (도보10분) → 부산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 (도보5분) → 국제시장과 깡통시장 → (도보5분) → 임시수도기념관 및 임시정부 청사(현 동아대박물관) → (버스15분) → 초량 이바구길



◆일제 쌀 수탈 창구…아픔 서린 군산=조선시대 작은 항구였던 군산은 만만치 않은 역사를 지닌 곳이다. 원래 군산은 지금의 고군산군도다. 고군산(古群山)은 옛 군산이란 뜻을 담은 이름이다. 조선 초 섬에 있던 군진을 육지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어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온 것이다. 군산은 삼국시대에 백강과 기벌포, 고려시대에는 진포라고 불렀다. 금강을 안고 있는 위치가 전략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에 외국과 격렬한 전쟁을 벌였다. 특히 진포대첩은 세계 최초로 화약무기를 써서 왜구를 물리친 전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접어들며 군산은 한가로운 어촌이 됐다. 개항된 것은 대한제국 때다. 조약에 따른 개항이 아니니 자주적 개항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과실은 일제가 가져갔다. 호남의 중심도시인 전주와 연결되는 신작로를 개통하며 군산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세관과 은행과 미두장이 설립됐다. 이때 장미동으로 부르는 마을도 생겼다. 꽃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쌀을 쌓아두는 마을’이란 뜻이다. 군산이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는 창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군산의 역사 현장은 이국적이지만 아프다. 
 
군산 역사 답사의 첫 길은 옛 군산항변 장미동 일대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로 시작하면 좋다. 일제의 쌀 수탈을 고스란히 지켜본 군산세관, 당시 군산일대의 근대 건축물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근대건축전시관(옛 조선은행),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일본18은행, 군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근대역사관까지 걷다보면 다양한 근대역사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의 무대로 유명한 신흥동 일본가옥(히로쓰가옥)은 당시 일본 상인들의 부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히로쓰가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외곽에는 일제강점기 군산 대표 일본인 농장주였던 시마타니의 철근콘크리트 농장창고(금고)도 볼 수 있다. 

추천-군산 근대역사 1일 여행 코스
군산근대건축전시관(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 옛 일본18은행 → 근대역사관 → 옛 군산세관 → (도보7분) → 신흥동 일본가옥(히로쓰가옥) → (도보5분) → 동국사



◆제물포에서 국제도시로, 인천=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인천은 개항을 약속했지만 조선 정부는 조심스러웠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에 처음 들어온 외국은 일본이 아니라 임오군란 때 들어온 청이었다. 이후 1883년에 개항을 한 인천은 빠르게 변해갔다. 서양 문물이 최초로 닿는 곳이며 외국으로 떠나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천은 다른 어떤 곳보다 다양한 나라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기도 한 자유공원의 원래 이름은 만국공원이었으며 그 아래에는 각국조계(개항도시에 있던 여러 외국인의 공통 거주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인천 여행에는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다. 
 
인천 답사는 중구 일대의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하면 좋다. 그 속에서 각국조계시절의 서양 관련 유적지와 청과 일본의 흔적을 같이 살펴볼 수 있다. 청일조계지경계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차이나타운, 오른쪽으로 일본은행거리, 위쪽으로는 자유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행거리에는 제1은행을 비롯해 제18은행, 제58은행 등 일본은행 지점 건물이 몇 개 남아있다. 일본은 은행을 세울 때 번호를 매겼는데 그 번호가 60번을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은행이 여럿 들어섰다는 것은 당시 인천의 경제적 중요성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현재 이 은행들은 인천개항박물관과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소를 조금 벗어나 월미도 이민사박물관을 보면 근대 이후 치열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자취를 볼 수 있다. 1903년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단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하와이로 떠났는데 그 출발지도 바로 인천 제물포항이었다. 아울러 인천상률작전의 길잡이 역할을 한 팔미도 등대에서 한국전쟁의 비극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추천-인천 근대역사 1일 여행 코스
청일조계지 경계계단-일본은행거리(옛 일본제1은행/인천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옛 일본제58은행/옛 일본영사관)-인천 차이나타운(짜장면박물관)-제물포구락부-자유공원-홍예문-인천내동교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