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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아빠와 학교서 상추 심으며 대화도 술술

경기 솔개초의 생태교육
학교 유휴공간에 마사토, 퇴비 섞어가며 텃밭 마련
30여 가족에 제공…"아이와 함께 땀흘리며 보람"
손주 등교 돕는 어르신도 참여, 선생님들과 소통

"할아버지,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어."

경기 솔개초 3학년 정우현 군은 매일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등굣길이 즐겁다. 학교 담장 밖 가족텃밭에 자신이 심은 상추와 치커리 등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다. 지난달 아빠가 직접 삽을 들고 마사토와 퇴비를 섞어 일궜던 텃밭이 어느새 채소로 가득차 마음까지 뿌듯하다. 손주를 교실로 들여보낸 정해구(75)씨는 학교 현관 앞에 비치된 삽과 물주전자를 들고 텃밭을 정리했다. 정씨는 이내 권점호 교장선생님을 찾아 상추를 뽑고 난 뒤에는 배추를 심어야겠다고 얘기했다. 권 교장은 강낭콩 모종을 만들 계획이라며 물속에 담가둔 강낭콩을 내보였다. 정 씨는 "예전에는 농사도 짓고 했는데 이곳에 이사와서는 텃밭조차 할 공간을 찾기 어려웠었다"며 "집 근처 학교에 텃밭이 조성돼 손자와 매일 와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학교 안팎의 공간을 활용해 만든 텃밭과 꽃밭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 학교 선생님들까지 함께 소통하는 학교. 고층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솔개초가 초록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운동장의 한 귀퉁이, 덩그러니 나무만 서 있고 잡초뿐이였던 좁은 화단, 학교 담장 아래 버려진 공간 등이 모두 꽃과 농작물로 뒤덮여 있다.

화분 하나 변변치 않았던 삭막했던 학교가 탈바꿈한 것은 지난해 9월 권 교장이 전근을 오면서부터다. 평소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권 교장은 교감이 된 11년 전부터 학교의 생태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심의 시멘트 공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최소한 학교에서만이라도 자연을 접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학교는 30여 가족에게 텃밭과 꽃밭을 제공했다. 학부모들도 도심에서 자란 경우가 대다수여서 권 교장이 직접 재배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4학년 조현빈 군의 아버지 조규보(49)씨는 "요즘 아이들이 게임에만 빠져있는데 아이와 함께 땀흘리며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좋다"며 "아이가 자연에 애착을 갖는 것을 보고 농작물들이 죽지 않게 해야겠단 생각에 주말마다 가보고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어제도 상추를 따 부친을오시게 해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자랑을 덧붙였다.

권 교장은 가족텃밭, 학급텃밭 외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과 꽃사랑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곳곳의 꽃과 나무를 관리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직접 꽃에서 씨를 채취하는 작업까지 하도록 했다. 꽃씨를 직접 받을 줄 아는 섬세함, 자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싶어서였다. 권 교장도 그동안 꽃씨를 직접 채취해왔다. 그렇게 해서 인 100여개의 씨앗들이 교장실에 모아져 있다. 학생들에게 개방된 교장실에는 매일 아침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드나들며 씨앗을 가져가 심기도 하고 모종이 자라나는 과정을 둘러보기도 한다. 

5학년 조혜민 양은 "평소에 식물을 좋아했어도 키울 공간이 없었는데 학교에서 매일 가꿀 수 있어서 좋고 다른 친구들의 텃밭, 꽃밭도 함께 관리해주다보니 보람이 있다"며 "평범했던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권 교장은 "나와 함께 공부한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퇴근길에 꽃집을 들러 2000원짜리 꽃하나라도 사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작은 꿈"이라며 "식물을 키우면서 나누는 모든 대화와 활동들이 다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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