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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그림 속 한양, 서울의 숲에서 찾다

어릴 적 읽은 고전소설 ‘전우치전’에는 흥미로운 설정이 있다. 주인공 전우치가 그림 속에서 나오기도 하고 또 그림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한바탕 도술로 세상의 약자들을 도와주고 그림 속으로 사라진 전우치를 보며 낭패한 왕과 대신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묘사돼 있다. ‘휴, 이제 전우치는 안전할 거야’라며 책을 덮었던 기억.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그래서 도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가 그림이라 믿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상에 다시 없을만한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 찬탄한다. 그림이란, 세상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림 속에 살고 있는 전우치와 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내가 그림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해 늘 다른 곳에서 ‘신기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찾을 때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그린 그림이 남아있다면 어떨까. 그림 속에 머물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 장소가 서울에 많이 있다.




겸재 정선의 ‘수성동계곡’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연 인물이다. 그래서 정선의 그림을 모아 놓고 보는 것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과 같다. 평소에 보던 풍광과 조금 다른 화가의 시선을 확인하는 것은 덤이다. 정선의 산수화에는 대부분 사람이 있다. 우리가 여행을 하듯 그림 속 인물들도 그 풍경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림 가운데 하나가 서울 인왕산의 수성동계곡을 그린 그림이다. 

 

정선은 인왕산 자락인 청운동에 살며 한양을 많이 그렸다. <장동팔경첩>은 그런 그림 중의 하나다. 장동은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을 가리킨다. 그림을 보면 한 사내가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리고 동행으로 보이는 인물이 그곳을 보고 있다. 아마 안평대군의 별장인 ‘비해당’이 있던 터를 보는 것이리라.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좁고 깊은 계곡이 바로 수성동(水聲洞)계곡이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서울 도심에서 수성동으로 향하는 길은 원래 계곡이었던 곳을 덮어서 만든 길이다. 동네 이름마저도 옥인동이니 그 이름은 옥동, 곧 ‘옥류동(玉流洞)’과 ‘인왕동’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수성동에서 나온 물은 옥류동을 흘러 청계천의 상류를 이뤘다. 

 

한양 한복판을 흐르는 물길 가장 높은 곳의 좁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바로 ‘기린교’로 현재 답사를 가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정선의 안내를 통해 수성동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과 세상이 만나는 현장이다. 

 

수성동계곡의 진가는 또 있다. 바로 세상 복잡한 도심에서 도보로 20분, 마을버스로 10분이면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복잡하기로 소문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서울, 생각보다 숲이 가깝다. 그것도 그림과 같은 곳이 그렇다.


[찾아가기]

수송동계곡은 도시개발로 건물들에 묻혀 있다가 2012년 복원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요즘 핫한 여행지인 서촌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서촌을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다. 

* 교통-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이용 

 [도보] ②번출구 도보로 18분 [버스] ③번출구 도보 약 30m 마을버스09번 탑승(10분)

* 관람료 - 무료





‘동궐도(東闕圖)’의 숲, 창덕궁 후원
 
‘그림 속을 걷는다’는 말은 답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낯선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그림으로 남겨놓기를 즐겼는데 이런 그림은 원래 목적인 예술적 감상 외에도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림 가운데 대표로 꼽는 것이 바로 ‘동궐도’다. 한양 동쪽 궁궐을 그린 이 그림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담았다. 지금은 서로 다른 궁궐로 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넘나들며 하나의 궁궐처럼 썼다. 유교 이념을 이상화한 궁궐인 경복궁과 달리 동궐은 한양이 가진 자연을 그대로 살려 유려하게 건설했다. 그래서 역대 조선의 왕은 경복궁보다 동궐, 그 중에서도 창덕궁을 즐겨 찾았고 270여 년 전, 경복궁이 없던 시절에는 창덕궁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창덕궁은 조선의 역사를 살피기에 좋은 장소다. 
 
이때 참고할만한 것이 1820년대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동궐도’다. 두 점이 남아있는 이 그림은 건물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묘사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건물도 있어 사료 가치도 훌륭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여느 산수화 못지않은 그림의 분위기다. 특별한 설명 없이 동아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보여준다면 자연에 둘러싸인 조선의 옛 도시 하나를 그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런 배경에는 물론 창덕궁 ‘후원’이 있다. ‘정원(庭園)’과는 다른 ‘원림(園林)’이다.
 
어떤 면에서 ‘정원’과 창덕궁 후원의 모습은 반대다. 정원은 집에 자연의 모습을 인공으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면 창덕궁 후원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정자 몇 채를 지어 놓은 것이다.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집 밖으로 자연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공의 멋진 아름다움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관람객도 있다. 그렇지만 창덕궁 후원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언덕과 숲으로 나뉜 공간에 놓인 정자가 만들어내는 장면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며 창덕궁 후원에는 그런 장소가 수십에 이른다. 아,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덕궁 후원에 가끔 호랑이와 표범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맹수마저 자연인줄 알고 들어왔나 보다.

[찾아가기]
창덕궁은 관람공간이 크게 2개 영역으로 구분된다. 개별 자유 관람하는 전각영역과 제한 관람하는 후원영역으로 나눠진다. 창덕궁의 숲이라 할 수 있는 후원영역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관람 희망 6일전에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 교통-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도보 약 150m
* 관람료-전각후원=8000원(어른)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닐까, 백사실계곡
 
옛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세계가 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 계곡물에 흘러내려오는 복숭아꽃이 아니라면 찾아갈 수도 없다는 곳이다. 그런 곳을 꿈에 본 안평대군은 그 모습을 잊을까 두려워 화가 안견을 불렀다. 이렇게 완성한 그림이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다. 이 그림은 장대한 필치와 세밀한 묘사로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을 완성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 부암동에 있는 ‘무계정사’다. 안평대군은 여기에 명류를 초청해 시와 그림 품평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런 무계정사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산(북악산)이 있다. 어쩌면 안평대군이 꿈에 보았다는 무릉도원은 여기가 아닐까. 
 
그런 의심을 더욱 짙게 만드는 곳이 백사실계곡이다. 조선시대 세초(사초를 물에 씻는 행사)를 했다는 계곡에 놓인 세검정을 지나면 나온다. 굳이 ‘무릉도원’으로 확정하지 않더라도 신선들이 즐길만한 공간으로 봤던 것 같다. 백사실계곡 한쪽 큰 바위에 새겨진 ‘백석동천(白石洞天)’이 이를 보여준다. 백석은 중국 백석산을 뜻하는 말이지만 백악산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또 동천은 자연의 어우러짐이 절묘한 곳임을 이르는 낱말이다. 그런 점에서 백석동천, 그리고 그 공간을 품고 있는 백사실계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세상의 어지러움을 피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백사 이항복도 여기에 별서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 백사실계곡의 분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현대 도시라는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이 들어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누군가가 숲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찾아가기]
백사실계곡은 백악(북악) 북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부암동, 평창동에서 찾아가는 여러 갈래 길이 있으나, 대부분 세검정에서 출발해 부암동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백사실계곡 답사 후 부암동에서 소문난 커피를 맛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교통-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도보30m 버스(1020번,1711번 등) 탑승(약20분) 세검정 하차
*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