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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현명한 소비,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자

Q. 30대 육아휴직을 앞둔 교사입니다. 휴직기간 동안 월급은 줄고 아이에 대한 비용은 늘어날 텐데, 어떻게 지출을 관리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크게 사용한 것도 없는데 카드 대금을 결제하고 나면 통장이 바닥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데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 요즘은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버스, 지하철은 물론 편의점에서 800원짜리 삼각김밥 하나 사도 카드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일상 소비생활이 전자화폐로 대체되면서 ‘얼마나 쓰고 사는지’에 대한 감이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자화폐는 돈의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지각’을 어렵게 만든다. 지갑에 10만원을 넣고 사용할 때는 들고 나는 돈을 보며 얼마를 썼고 더 쓸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알 수 있지만, 카드나 모바일페이같은 전자결제는 일부러 더해보지 않고서는 총 사용금액을 알기 어렵고 한 번에 지출하는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많이 쓴다는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이삼만 원짜리 소비를 열댓 번만 해도 수십만 원은 금방 넘는다. 요즘은 신용카드 누적금액을 알려주는 문자서비스도 있지만 여러 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일일이 더해봐야 한다. 편리해진 결제시스템으로 오히려 돈 관리는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정보처리에 사용되는 시스템1·2

흔히 행동경제학에서는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두 가지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한다. ‘system1’은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해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system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활동 측면이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돼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을 보며 기분을 알아챈다든지 ‘2+2’와 같이 간단한 문제를 풀거나 미완성된 문구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일은 ‘시스템1’에 따른 자동적 활동이다. 반면, 연말정산 서류의 각 항목에 해당 사항을 적어 넣거나 두 세탁기의 가격대비 성능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일은 ‘시스템2’와 관련된다. 
 
이들은 서로 연관돼 있다. 초보 운전일 때는 한적한 도로에서도 주위의 차와 도로 표지판, 신호에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지만, 운전이 능숙해지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깜빡이를 켜고 수월하게 끼어들 수 있게 된다. 반대 경우도 있다. 복잡한 대합실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성’ 또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체격이 좋은 남자’와 같이 특징을 생각해두면 쉽게 사람을 찾을 수도 있다. 이 두 시스템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수고를 줄이고 성과를 높여 준다. 
 
하지만 때론 이 두 시스템의 상호작용으로 오류가 발생하며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와 관련된 실험 중 하나가 바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다. 서로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은 두 팀의 농구경기를 보며 각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는 지시를 받은 실험참가자 대부분이 경기 중간에 등장한 고릴라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패스를 세라는 지시를 받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고릴라를 발견한 것과 대조된다. 관찰은 시스템1의 자동 기능이지만 주어진 다양한 자극에 어느 정도 주의력을 할당하느냐에 따라 능력은 매우 달라진다.

필요와 충동으로 이뤄지는 소액지출
 
소비관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문제도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삼십여 년 전만해도 월급봉투를 받았고 현금사용이 일반적이었다. 돈이 봉투의 두께로 구체화되고 그 한정된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가계부 갈피갈피마다 저축할 돈, 학원비, 다음 달 명절비용과 생활비 등으로 나눠 배분하고 남은 현금을 보며 사용 속도를 조절하곤 했다. 
 
하지만 벌고 쓰는 돈을 온라인상 디지털 숫자로 주고받는 요즘은 돈의 질량감도, 부피감도 느끼기 힘들다. 여기에 더해 시공간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편하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환경은 시스템2가 개입하지 못하거나 단편적이고 단기적인 주의집중만을 하도록 만든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나는 소비행위마다 충분한 주의력을 가지고 꼼꼼히 소비에 따른 효능과 가성비를 따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몇 만원에 지나지 않는 소액 지출은 필요와 충동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마음에 드는 몇 십만 원짜리 가방에 지불해야 할 비용과 가방이 주는 만족감 사이에서 요모조모 따지며 당분간 커피를 줄이겠다고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결심은 그 때뿐, 다음날 출근길에 익숙하게 커피를 테이크아웃 한다. 습관화된 소비는 시스템2의 도움 없이도 손쉽고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1이 저지른 소비의 총량이 얼마인지, 이 달의 가용자원(돈)과 비교해 많지 않은지, 문제(적자)가 발생하기 전에 제어를 할지 등을 검토해 결정하기에 시스템2는 게으르고 우리의 일상은 너무 바쁘다. 
 
친절한 카드사가 한 달 사용내역을 정리해 알려주고 매우 단호하고 신속하게 통장 잔액을 차감한 이후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별 것도 없이 많이 썼다는 것을. 문제는 많이 쓴 것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데’에 있다. 기억나지 않는 소비는 돈을 도둑맞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아까워하면서도 쓰고 나 뒤돌아 잊어버리기를 끊임없이 계속한다는 점에서 더 큰 불행인 셈이다. 

쉽게 소비하게 만드는 수단 제거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할까? 시스템2는 낯선 상황에서 잘 작동된다. 소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익숙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1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쉽게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출 수단들을 지갑에서 빼 버리는 것은 가장 간단한 통제방법이다. 손가락을 꼽으며 간단한 셈을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 이번 일주일, 이달 한 달 사용할 수 있는 돈을 구체적으로 체감하며 소비함으로써 소비의 질량감과 부피감을 느껴보는 것도 필요하다. 
 
평소처럼 쇼핑카트를 가득 채우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지갑 속에 신용카드가 없다는 걸 깨닫고 당황할 수도 있다. 괜찮다. 아무도 내가 당황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줄밖으로 빠져나와 당장 급하지 않은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놔도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사서 가뿐하게 집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쓸 돈을 정해놓고 맞춰 쓰는 의도적인 통제과정을 겪으며 자연스레 쓸 수 있는 돈의 크기를 체감하게 되고 필수적인 지출의 우선순위와 규모를 정할 수 있다. 좀 더 좋은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 여행이나 레저, 여가활동 같은 선택소비는 여유자금이나 저축을 통해 훨씬 더 계획적이고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 의식적인 노력과 통제를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스템1로 습관화된다. 
 
사례자의 경우 비정기 지출까지 감안했을 때 백만 원 가량 적자지만 저축․투자를 당분간 중단하면 육아휴직기간 동안 수지균형을 맞출 수 있다. 다만, 출산 후 육아로 늘어나는 지출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30여만 원 가량의 조정은 필요한 상황이다. 사례자의 경우 아내가 관리하는 공동 생활비용 신용카드와 부부 각각 용돈 등 지출을 위한 신용카드까지 총 3장을 사용하고 있다. 또 남편과 아내의 급여통장에서 여러 자동이체가 각각 이뤄지고 있어 가정의 소비지출을 한 번에 파악하기 복잡한 구조다. 지출방식별로 정리해보면 현금성 지출이 거의 누락돼 있어, 실제 지출규모는 부부가 정리한 것보다 20~30만 원 가량 더 많다. 무엇보다 지출 대부분이 신용카드로 이뤄지다보니 급여가 들어와도 카드대금이 빠져나가면 통장에 잔액이 거의 남지 않아 카드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는 구조다.(표 참조)
 
우선 보험정리를 통해 확보한 여유자금으로 신용카드 대금을 정리하는 한편 남편 급여통장을 주사용통장으로 정하고 자동이체를 한 곳으로 묶어 정리했다. 아내의 급여통장은 생활비통장으로 정해 지출항목별로 예산을 세워 1주일 생활비 35만 원씩만 매주 이체해 체크카드로 사용키로 했다. 남편은 별도의 용돈 통장을 만들어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체크카드를 쓰고 아내 용돈은 현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후불시스템인 신용카드 대신 매달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정해 맞춰 놓고 지출하다보니 지출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고 무엇보다 문자알림서비스를 통해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소비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소비통제를 이룰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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