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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의 지적 위트와 섬세한 통찰

 

강마을은 흐리고 가뭄으로 푸석푸석한 들판이 보입니다. 남녘에는 겨울 가뭄이 심합니다. 눈도 비도 오지 않아 겨울 작물은 비시비실하고 하우스를 하는 지역은 관정도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저희 학교 근처는 낙동강과 남강이 인접해 강물을 공급받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농작물 값이 떨어져서 큰일이라고 학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제는 양상추 하우스를 하시는 학부모님께서 지나다 들렀다면서 양상추 한 박스를 주고 가십니다. 주시면 안 된다고 하니, 이건 상품이 못되어 값이 나가지 않는 것으로 그냥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랍니다. 저녁에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아삭한 양상추에 고기와 마늘을 얹어 먹으니 꿀맛입니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 남편의 얼굴을 모처럼 자세히 보니, 주름이 보이고 머리엔 흰 머리가 많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이 사람과 젊은 시절 참 많이도 싸웠는데 지금은 가족으로 시시콜콜한 식성까지도 공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여 만나고 싸우고 다시 소중함을 이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유머와 통찰이 함께 조화를 이룬 책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철학적 깊이가 있어 읽으며 많은 사유를 동반합니다. 에세이와 소설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보이는 섬세한 지적 위트와 통찰력은 읽는 이를 깊이 책 속으로 빨아들이면서 제 삶을 다시 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지긋지긋한 싸움들을 웃으며 회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라비와 커스틴의 삶을 따라가며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핍니다. 작가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낭만의 한계와 결혼 제도의 모순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대담한 논의를 펼칩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사춘기에는 증오심마저 품었는데 말이다. 야망을 펼칠 크고 영원한 것들이 있는데 그렇게 작고 일시적인 것에서 기쁨을 얻다니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 자신의 영예와 강렬함을 원했다. 꽃에 붙들린다는 것은 위험한 체념의 상징이었다. 이제 그는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양과 실망을 다룰 줄 아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가 장미의 줄기나 불루벨 꽃잎에 감탄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무엇인가 영구적으로 망가져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고요한 완벽과 즐거움을 간직한 이 자그마한 섬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pp. 273~274

 

라비는 낭만적 연애를 거쳐 비로소 자신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으며 다른 이를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 사랑의 핵심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람을 덜 물리고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새롭게 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교무실 창으로 푸석한 들판을 다시 봅니다. 교지의 마지막 작업을 하면서 내 삶에 있어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것으로 돌아가라고 신께서 기회를 준다면 단연코 거절할 것입니다. 젊음이 주는 불꽃같은 빛남도 좋지만 그 젊음을 돌아서 이제는 인생을 관조하며 성찰하는 이 나이가 주는 깊은 갈색의 침착한 모습을 사랑합니다. 빨리 남쪽지역의 가뭄이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