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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여성 연출가들의 힘

공연계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 매일매일 가슴 졸이는 나날들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문화계 인사들은 대부분 연극과 뮤지컬 등에서 활발히 활동해오던 인물들이기 때문. 필자 또한 공연전문지의 기자로서 함께 무대와 예술을 논했던 배우들과 거장들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밝혀질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커밍아웃(?) 덕분에 ‘이러다가는 대학로에 볼 공연이 하나도 남지 않겠다’는 웃지 못 할 우스갯소리마저 떠돌 정도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건강한 공연계를 만들기 위해서 용기 있는 증언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고, 건강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작게나마 #위드유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이번 달에는 힘과 권위를 무기처럼 휘두르지 않고도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여성 연출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연극 <엘렉트라>

연출가 한태숙은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집요하게 포착해 서늘한 그림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다. 지금까지 <맥베스>, <리처드 3세>, <세일즈맨의 죽음>, <유리동물원> 등 영미 희곡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과 <신곡>, <1984> 등 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 등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한 연출이 이번에 선보일 신작은 연극 <엘렉트라>. 2011년과 2013년에 걸쳐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선보였던 그의 소포클레스 3부작의 완결작이다. 그리스 작가 소프클레스의 3대 비극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살해하는 엘렉트라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작품이 쓰여진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작가들에 의해 다시 쓰여지고 오페라와 영화로 변주되기도 한 명작. 딸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생각해 반감을 품는 정신분석학 용어 ‘엘렉트라 콤플렉스’ 역시 이 작품이 기원이 됐다. 
 
한태숙은 고전을 오래 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로 바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다. 그 치환의 재주는 이번 작품에도 예외 없이 발휘된다. 작품의 주인공 엘렉트라는 그리스 시대의 인물이 아닌 현대의 게릴라 여전사로 변신시켰다. 그는 정부군에 대항하는 게릴라들의 리더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를 인질로 붙잡아 벙커에 가둔다. 엘렉트라는 자신이 행하는 복수가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하지만, 클리탐네스트라는 자신의 논리로 이를 반박한다. 여기에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테스까지 등장하며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작품은 이를 통해 과연 복수는 정당한지, ‘개인의 정의가 전체의 정의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복수와 정의, 용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 <스모크>

뮤지컬 <스모크>는 이제 배우보다는 작가 겸 연출가라는 타이틀이 더욱 잘 어울리는 추정화의 작품이다. 단 세 명의 배우만으로 무대를 채우고, 치밀한 심리 싸움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이 그의 특기. 한국은 물론 도쿄, 교토, 뉴욕 등 해외 진출에 성공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뮤지컬 <인터뷰>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시그니처’는 이번 작품에서도 발휘된다. 
 
작품은 글을 쓰는 고통과 현실의 괴로움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남자 ‘초(超)’,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소년 ‘해(海)’, 이 두 사람에게 납치당한 여자 ‘홍(紅)’까지 세 사람이 폐업한 한 카페에 머무르는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다. 세상과 고립돼 보이는 이들 중 한 명은 괴로워하고, 한 명은 그를 위협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끌어안으려는 양상이다. 때로 이들의 대화는 뜬구름을 잡는 듯, 때로는 숨겨둔 비밀이 있는 듯 관객을 궁금하게 만들지만 차츰 연기가 걷히면서 세 명의 정체가 밝혀진다. 
 
비밀을 푸는 키워드는 바로 시인 이상.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에도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불안감과 고독, 절망으로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개’를 달고 싶었던 열망을 잃지 않았다. 뮤지컬은 이처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이자 ‘세상과 발이 맞지 않았던 절름발이’인 이상의 삶과 예술, 고뇌, 그리고 식민지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등장인물 세 명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에는 이상의 대표작인 시 <오감도>를 비롯해 <건축무한육면각체> <거울> <가구의 추위> <회한의 장>, 소설 <날개> <종생기>, 수필 <권태> 등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이라고 손꼽히는 시인의 글이 대사와 노래를 통해 전달된다. 

<엘렉트라> 4.26-5.5 | LG아트센터 | 02-2005-0114
<스모크> 4.24-7.15 |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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