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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없었다

2018 통일리더캠프 북중국경에서 통일을 꿈꾸다 <2편>

새벽이 되어도 서울 도심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는 삼십 도이다. 북·중 접경지역 탐방이 시작되는 날이다. 출국 절차를 받기 위해 오전 5시 30분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출발한다. 버스 속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먹는다.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길섶의 풀들은 더위에 지쳐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차량의 밀림이 없이 한 시간여 만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아침 공항풍경은 이채롭다. 다양한 목적과 설렘을 가지고 출국하려는 인파로 북적인다. 탑승 절차를 마치고 탑승 대기 공간으로 간다. 대리석 바닥에 블루라이트의 현란한 조명을 갖춘 면세물건을 파는 가게의 간판들이 우리나라 속 이국에 와 있는 기분을 갖게 한다. 잠시 긴장을 풀겸 모닝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시선을 돌린다. 쉴새 업이 이착륙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국적의 비행기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리고 머릿속을 가득채운 여러 사념이 질문에게 던진다. 삶에 있어서 진정한 여유와 행복이란 무엇인가? 떠나는 장소에서 가족이나 지인에게 때로는 서운하게 모질게 대한 지낸 일들이 거울로 비쳐온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을 향하는 비행기 탑승이 시작됨을 알린다. 같은 일행들이지만 아직은 서먹서먹한 채 목걸이 이름표만 본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과 서해를 내려다보며 비행기는 고도를 높인다. 좁은 비행기 창을 통해 흰 구름이 솜사탕처럼 솟아오르고 얼음장 같은 파란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양하고 포근한 구름 모습은 신들이 거니는 정원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시계를 도착지 현지 시각으로 한 시간 거꾸로 돌린다. 앞좌석 등받이에 비행경로가 표시된다. 중국 산둥반도와 대련, 선양, 장춘을 지나는 항로이다. 돌아서 가니 시간도 경비도 많이 든다. 아마 통일이 되었다면 남북 직항로나 육로를 이용하여 갈 수 있을 것인데 분단은 더 큰 비용과 아픔을 동반하게 한다. 현지시각 10시를 조금 넘기자 연길 공항에 착륙준비를 알리는 기장의 멘트가 나온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낮아질수록 구름이 많아지며 창에 빗방울이 사선을 긋는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비행기는 연길 공항에 착륙한다. 공항 분위기와 그 주변의 건물들은 어둡다. 기온은 폭염과 열대야에 대비되는 우리나라의 구월 말 시월 초의 온도다. 공항 주변 건물은 밝고 환한 색조보다는 짙은 무채색 계열이 대부분이고 다만 지붕만 붉은색이다. 단체 비자로 입국 절차를 마치고 현지 가이드를 만난다. 공항을 나서며 뒤를 돌아본다. 국제공항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지방공항에도 못 미치는 모습이다.


연길 공항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 연길 시내에서 점심을 먹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시는 제일 번화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의 중소도시보다 아래다. 특이한 점은 모든 간판에 한글과 중국어가 병행 표기되어 있다. 이런 자치주는 중국내에 5곳이 있는데 연길시의 조선족은 60% 정도라 한다.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억양과 말투는 북한 쪽에 가깝다. 시내의 교통상황은 무질서 속에 전개된다. 자전거, 삼륜차, 자동차 등이 서로 얽혀 움직이며 신호등은 드물다.


이곳 연변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 깃든 곳으로 역사가 낳은 곳이다. 한때는 북간도라 하였으며 연길 분지는 한민족이 최초로 벼를 이식한 곳으로 수도작(水稻作)이 행해졌으며 그밖에 콩·수수·옥수수·보리 등도 재배된다. 한때는 청나라 측이 이 지역을 봉금지역(封禁地域: 이주 금지의 무인공간지대)으로 정하고 청국인이나 조선인 모두의 입주를 불허하는 공간이었지만 청말 조선 후기 봉금이 해제되고 우리 농민이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도협약 이후 청나라로 넘어가고 일본의 압제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우리 농민과 애국지사들은 두만강을 넘어 정착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연길 시내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디어 첫 일정인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북도 온성시의 남양마을과 인접하고 있는 중국변경 도문으로 향한다. 비 때문에 밖을 잘 볼 수 없다. 문득 지금 가고 있는 곳을 생각하며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 가사를 떠올린다. 두만강은 어떤 모습일까? 내리기 전 주의사항을 듣는다. 이곳에서는 렌즈가 긴 사진기, 현수막, 깃발, 만세 구호, 손가락질, 심지어 웃음도 금지라고 한다. 두만강 광장에 내리자마자 빗줄기는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심술을 부린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 돌아갈 수도 없는 일 부러질 것 같은 우산을 잡고 두만강변으로 나간다. 평소 같으면 강 건너 푸른 들과 산, 남양마을 볼 수 있겠지만 구름과 안개에 가려 아쉬움을 더한다. 중국 국경 중 북한과 제일 가까운 도문과 남양마을은 빗속에 숨을 죽이고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찾을 수 없다. 단지 흐릿하게 인적없는 적막감에 싸인 남양마을만 숨을 죽이고 있다. 아쉽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아픔을 삼키며 돌아선다. 가이드의 설명이 붙여진다. 이곳 도문 사람들은 좋아도 나빠도 우리 민족이라 서로 도운다고 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화해란 비좁은 원을 그려놓고 그 위에 함께 서 있는 것이라고. 좁은 공간 속에 함께 서 있기 위해선 각자 자기 욕심을 조금씩 덜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화해란 내 고집과 내 욕심을 밖으로 밀어낼 때 거기서 새로이 싹트는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 그런데 그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통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서로의 노력 없이는 어렵다.


도문을 뒤로 봉오골 반일본 전적비로 향한다. 봉오동은 두만강에서 40리 거리에 있으며 험준한 산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장 수십 리를 뻗은 계곡 지대로 독립군 근거지의 하나였다. 홍범도와 최진동이 이끄는 대한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한 곳이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곳이라 기대감이 앞서간다. 하지만 봉오골 저수지 왼쪽에 위치한 전적비를 보는 순간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비에 젖은 향로, 뒹굴고 있는 국화꽃 송이, 우묵장성이 된 주변을 보며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이분들의 넋이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후손으로서 면목이 없다. 우산을 받쳐 들고 간단한 추념의 시간을 갖고 고개를 돌려 본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 봉오골 전체 지형은 볼 수 없지만 깊은 계곡의 지형을 이용한 유인 매복 작전이라면 적은 수로 상대와 싸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떨어지는 빗소리가 꾸짖음을 더한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일제 강점기 시절 중국군도 두려워한 일본군을 상대하여 거둔 승리로 우린 민족의 저항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 전쟁에 이어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도 승리를 하면서 중국에서 대한 독립군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간도참변을 일으켜 한인 수만 명을 무참히 죽이는 보복을 한다. 이런 아픈 비극의 만행의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낯선 땅 이국에서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불사른 투사들이 있던 곳, 1920년 6월 6일 봉오동 전투의 현장을 떠올리며 한민족의 후손으로 더 꿋꿋하게 살아야 함에 의의를 던진다. 하지만 중국은 봉오동 청산리 싸움을 중국인으로서 조선족이 일본에 대항하여 싸워 이긴 전쟁이라 애써 축소하며 자신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다. 참 어처구니없는 실상이다.


어떤 나라건 개인이건 힘의 우의를 선점하여야 소리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숨져간 의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은 남북이 하나 되어 힘을 뭉치는 일이다. 지금 패권 국가들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큰 소리를 내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의도 정의로 만드는 것은 바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을 제일 두려워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라고.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절박하다. 서로의 이념은 평행선이다. 이런 소모성 대립의 종지부를 찍고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 바로 통일이다. 하지만 며칠 전 뉴스에서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통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심히 걱정이 앞선다. 이런 통일에 대한 사고를 바르게 정립하여 통일이란 희망의 바이러스를 심는 게 교직자로서 나라를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한다.


직접 와서 봐야 한다. 관광이나 여행을 통한 즐김이 아닌 현실을 보아야 한다.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민족이 세운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지척에 두고도 넘지 못하는 곳! 언제쯤이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이념의 소실점이 빨리 찾아올 수 있도록 봉오동전적비 앞에서 두 손에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