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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다

 

2013년 나는 농촌에서만 근무를 했던 교사라 도시에 나가서 많은 것을 더 경험하고, 경력 있으신 선생님들을 보며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천안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천안이라는 도시로 발령을 받으면서도 천안의 가장 작은 학교 중 하나로 발령 받게 되었다. 
 

“아 또 6학급이네.”
 

이만저만 실망한게 아니었다.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내가 하고 싶던 과학과 프로그래밍 등 학생 지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또 작은 학교에 오다니. 애들은 이런 거에 관심도 없고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부족함을 아이들에게 전가했던 못난 생각이었다.
 

나는 6학년 담임이 되었고 내가 꿈꿨던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우울하고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학기 초부터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5학년이었던 그 학생은 키가 작고 얼굴은 동그랗게 귀여웠는데 행동이 너무 이상했다. 나에게 다가와 계속 말을 거는가 하면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고 혼자 앉아서 다른 곳을 보거나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5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이 학생은 원래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고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바로 옆 교실 이었던 나는 거의 매일 우는 소리와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듣곤 했다. 여름에는 티셔츠를 벗고 민소매 셔츠만 입은 채 학교를 돌아다니거나 수업시간에 코를 파고 방귀도 뀌는 등 또래 학생들과도 사뭇 달랐다. 자기 욕심도 엄청나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소리를 지르고 울고 하는 바람에 늘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친구들 모두 이 학생을 싫어했고 선생님들도 ADHD 또는 자폐증을 겪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학생, 교사 모두 이 학생을 문제아라고 인식했고, 이 학생 때문에 수업 분위기도 좋지 않다며 앞으로 걱정이라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학생이 참 신기했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이접기 실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날도 종이접기 한 결과물을 나에게 보이며 자랑해서 “너 어떻게 이걸 접었어?”라고 물으니 “이거 되게 쉬워요. 선생님 가르쳐드릴까요?”라며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양도 상당했다.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대신 책을 읽는데, 읽는 책이 또 다른 학생들과 사뭇 달랐다. ‘피타고라스의 수학이야기’, ‘파인만의 물리학’ 등 초등학생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들을 혼자 심각하게 보는 모습을 자주 봤다. 이렇게 책을 읽은 후에는 자랑을 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선생님과 말을 하고 싶어서인지 찾아와서 자신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선생님, 피타고라스 정리가 뭔지 아세요?” 
“선생님, 피보나치 수열 알려드릴까요?”
 

이 학생은 거리낌 없이 나에게 다가와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했고 더욱 신기한 건 책 내용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줄줄 외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보통 학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 수학 좋아하니?” “네, 재미있어요.” 
“너 그럼 선생님이랑 프로그래밍 공부 한 번 해볼래?” “네? 그게 뭔데요.”
 

나는 교대에 입학하기 전 다녔던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생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5학년 2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이 학생에게 C언어 책을 선물로 주며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 교실로 와서 C언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데 이해력과 적용하는 능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열심히 가르치며 내년 1학기에 프로그래밍 대회가 있는데 같이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6학년이 되고 이 학생은 우리반이 되었다. 학부모 상담의 날, 어머니께서 학교를 방문하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상담 도중 눈물을 보이시면서 이제까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왔는지, 너무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학교에 들어와서 학교생활에 전혀 적응을 못하자 특수반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여러 번 받았고, 선생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아 혼도 많이 나고 어머니와 선생님 사이에 갈등도 생겨서 문제가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제까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이 학생은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환경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칭찬을 많이 받게 되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거의 매일 오후에 학교에 남아 나와 같이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생을 차에 태워 학교에 와서 함께 공부하며 실력을 키워 갔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배우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얘는 정말 천재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같이 점심을 먹을 때 자기는 짜장면은 못 먹는다며 울거나, 우유도 흰 우유밖에 먹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긴 했다.
 

어느덧 정보올림피아드 대회 날이 다가왔고 나는 이 정도 실력이면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대회장으로 향했다. 혹시나 시험을 치며 울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어서 시험 직전에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감독관님에게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전화 꼭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다행히 전화는 오지 않았고 학생은 시험이 끝나고 코를 파며 교문으로 나왔다.
 

대회 결과 발표일이 다가왔고 결과가 적힌 공문을 열어보니 금상! 혹시나 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우리 학교 학생, 선생님 모두 깜짝 놀랐고 놀림 받던 아이가 아니라 이제 학교에서 스타가 되었다. 그 날 이후 나와 학생은 더욱 열심히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고 도 대회에 참가했다. 그 결과는 또 금상!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  전국대회 출전권까지 따내게 되었다. 이제 전국대회 준비를 위해 주말까지 반납하고 함께 밥을 먹어가며 대회 준비를 했다.

 

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더 솔직하게 말해 거의 대회가 다가올 무렵에는 나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기발한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또 놀랐다. 함께 대회를 준비한 다른 선생님도 도대체 저런 학생이 갑자기 어디서 나왔냐며 궁금해 했다. 이전에 C언어 자체를 몰랐고 준비 기간도 6개월이 갓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깜짝 놀랐다.
 

드디어 전국대회 날. 학생을 대회장으로 보내며 “자신있게 하고, 울지 말고!”라며 힘을 주었다. 잘 하고 오겠다며 대회장으로 들어갔지만 이상하게 내가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닌데 내가 더 많이 떨렸다. 대회시간 내내 인솔교사가 대기하는 대회의장에서는 스크린으로 현재 학생이 몇 번 문제를 풀었고 점수가 몇 점인지 실시간으로 표시가 되었다. 아직 다른 학생들과 달리 1번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속이 타고 걱정이 되었지만 좀 기다려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화면을 주시하는 순간, 점수판에 1번 문제와 2번 문제의 점수에 한꺼번에 만점이 뜨는 것이었다. 아 뭔가 좋은 느낌이 온다는 생각과 함께 덩달아 더 긴장이 되었다. 3번 문제까지 만점으로 표시되었고 마지막 4번 문제만 남았다. 하지만 10여 분이 남았는데 4번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회 보안상 더 이상 결과화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스크린도 꺼졌다. 그렇게 떨리는 10분이 지난 후 대회장을 나오는 학생을 만났다. 
 

“4번 문제 못 풀었어?” “아니요. 풀었어요.”
 

다행히 4번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왔다고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결과가 나오는 날, 당당히도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고 플랜카드까지 걸며 축하했다.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셨고 학생들까지 축하 인사를 하며 이 학생의 학교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들도 이 학생을 이해하게 되었고 교사들 역시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6학년 졸업식 날. “선생님~”하며 안기는 학생의 모습이 내 눈에는 아직 애기 같아 보이는데 졸업이라니 좀 믿기진 않았지만 함께 보냈던 만화 같던 시간이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학생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얘는 이럴거야’, ‘이런 학생은 안돼’라는 생각들이 사라지고 ‘이 학생은 어떤 능력이 있을까?’,‘왜 이런 생각을 할까’라는 학생에 대한 기대와 이해하려는 마음이 오롯이 생겼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은 자기 나름에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것을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게 되었다.

 

졸업식 날 학생의 부모님은 나에게 아들의 능력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교사로서 평생 갖고 가야 할 굵직한 중심을 하나 제대로 찾은 것 같아 오히려 이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아직은 숨겨진 학생들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 나의 교직생활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OO아, 졸업하고 몇 번 봤는데 이제는 선생님도 학교를 옮겨서 보기 어렵구나. 잘 지내지? 앞으로도 건강하고 너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즐겁게 살길 바란다, 선생님이 멀리서나마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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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교단수기 공모 금상 수상자 수상 소감 - 아이들의 숨은 ‘빛’ 찾는 교사 되고파 

 

 

어느덧 아홉 번째 졸업식을 맞았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은 훌쩍 커서 나보다 큰 키로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온다. 어느 분야건 10여년 정도의 세월을 그 직장에서 근무하면 전문가의 수준에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매해가 새롭고 긴장이 되는지.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가 모두 달라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수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의 이야기를 반성문 쓰듯이 썼던 수기로 상까지 받으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한편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최근 중국에서 달 뒷면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미 달 착륙은 1969년 아폴로 11호가 성공한 바 있어 ‘중국의 달 착륙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달 탐사선 착륙은 우리가 매일 밤 보는 달의 한 쪽 면이 아닌 그 뒤에 숨어 한번 도 볼 수 없었던 곳을 본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진다. 눈에 보이는 모습만이 아닌 그 이면을 보려는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한 것 같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의 어떤 면을 보고 있었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면을 보려고 노력했는가? 스스로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겉으로는 늘 밝게 웃지만 속은 온갖 상처로 아픔을 가진 아이들. 공부도 하지 않고 말썽만 부리지만 뭔가 특별한 ‘하나’를 가진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그들의 뒷면을 찾아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가질 때, 비로소 숨어서 반짝이는 그 뒷면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수 많은 제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구든 훤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그 뒤에 숨은 더욱 눈부신 아이들의 ‘빛’을 찾는 교사가 되어 세상을 밝혀주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조그마한 힘이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