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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봄비가 내렸다. 보도블록 사이로 이름 모를 새싹이 돋아 오르고 담장 밑 시멘트 담 아래 양지쪽에 올해도 어김없이 엎드린 민들레가 봄빛보다 더 환한 노란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음력 이월 영등할멈 시샘의 몰아치는 꽃샘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붙박이로 가녀린 그 떨림은 억세기만 하다.

 

물, 바람 모든 자연이 한 겹의 나이테를 남기고 생동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지는 삼월 햇살 아래 시간의 흐름은 동백꽃의 낙하처럼 지금의 어려움을 학창시절 추억으로 환희의 올을 엮는다.

 

쿵작쿵작 귀에 익은 노래방 기기의 7080 음악이 반가움과 동질성에 취기를 더하여 띠동갑이 모인 운동장은 그들만의 세상이다. 한때는 자갈도 삼키고 소화할 수 있는 청춘의 꽃. 지금은 지천명의 중반에 희끗희끗 적은 숱의 머리카락은 봄바람에이 스칠 때 마다 머릿밑만 훤하다.

 

삶이란 선택지는 어떤 선택도 후회와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음악 소리에 맞추어 거슬러 오른 막춤이 절규하듯 흐느적거린다. 곤란함 속에 말썽 많았던 학창시절의 향수에 취한다. 한 곡 부르고 마시는 소주 한잔 그 속엔 지난날 술추렴 하는 아버지의 눈물이 담긴다.

 

우리의 평범한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이후 6.25 한국전쟁, 새마을 운동 등 굵직한 현대사를 겪으며 배운 것 없이 막노동으로 하루를 견디며 안주 없는 쓴 소주로 아린 가슴을 쓰다듬으며 길을 걸었다. 이제는 느낀다. 지천명의 중반에 선 띠동갑들의 막춤 속에 베인 아버지의 모습을…….

 

약관의 시기를 돌아본다. 세상일에 부나비처럼 뛰어들어 앉기와 서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일어서 걸은 것은 비록 연로하셨지만 아버지가 계셨기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란 이름은 언제나 멀게만 느껴진다.

 

아버지란 이름은 새끼 먹이로 제 살까지 내어주는 염낭거미와 다를 바 없다. 민들레처럼 언제나 낮은 곳을 찾아 자신을 가꾸고 고통과 한 몸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비록 삶을 다해 갈아엎거나 짓밟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바람과 햇빛이 닿은 곳이면 홀씨를 날려서 가족을 위한 영역을 만든다.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미어진다. 언제나 가방끈 짧은 것을 못내 한스러워하셨다. 막노동으로 어깨가 짓무르고 허기진 몸이지만 새참으로 준 빵도 드시지 않고 어둠이 진해지는 방문을 열고 디밀기만 하셨다. 그래도 항상 부족하다고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퉁퉁거리며 절대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거라고 대들었지만 말없이 삭이셨다.

 

그 시기 가난한 형편을 누가 구제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아버지를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여 호구지책을 우선으로 상완근이 떨어져 허물 거리는 것도 감추고 고통을 감내하며 마감하셨다.

 

휴일 봄이 내려앉는 학교 운동장에는 징 소리 같은 스피커의 저음이 깔리고 꽹과리 같은 고음이 흥을 돋운다. 아버지들은 동네잔치가 있는 날이면 막걸리의 취기와 장구 장단으로 한을 살풀이했다. 이제 그 아버지의 아들은 노래방 기기 반주에 아니리를 가슴에 담아 추임새를 뿜고 발림으로 살풀이를 한다. 강한 거부의 몸짓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같음의 인정에 항복해야 하는 얼굴. 환한 봄 햇살 아래 생활의 골이 스며들고 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민들레보다 더 투박하고 강하다. 톱날 같은 잎으로 몸을 바치고 다투거나 들레지도 않고 힘들어도 비겁하거나 굴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선명한 색깔로 등불 같은 민들레꽃으로 자식을 보듬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지금을 사는 아버지의 삶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 받기를 포기한 처음 세대를 뜻하는 막처세대란 신조어를 등장시킨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 못 한 아들 뒷바라지에 딸 시집도 보내야 하고 요양병원에 계신 어른도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해를 더해 삼월이 반복될수록 젊은 날 아련한 기억은 삶의 바늘비와 늘어나는 약봉지로 채워진다. 그렇게 데워지는 생활의 냄비 속에 우리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개구리로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술잔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느 시인은 실직의 각혈을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문밖에서 아버지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그것은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는 것을.

 

서편을 향하는 봄날 해가 두어 발 남았다. 살풀이는 잦아져 봄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봄바람 한 줄기에 하늘을 담을 봄 까치꽃이 잔디밭에서 고개를 숙이고 민들레는 꽃잎을 접는다. 내일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의 길은 촉촉이 젖어오는 일상의 땅위를 쉬지 않고 맨발로 밟으며 바람에 부대껴도 잎새를 돋우며 다시 일어서는 민들레꽃이다. 아버지 그리움은 기약 없는 땅에 발 내린 민들레 홀씨처럼 시간이 축적될수록 발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