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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창가에서] 체벌이 사라진 세상

“제 아이를 회초리를 쳐서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주세요”라는 말은 사라졌다. 사람을 어떻게 매로 다스릴 수 있느냐는 신성한 인권에 기초한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금지옥엽처럼 귀한 우리 자식의 몸에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맹목적 자식 사랑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단순히 시대와 교육 환경이 변해서 그렇다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회초리 만들어 전달한 학부모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귀한 자식 매 하나 더 때린다’는 속담이 있다. 조상들이 자식 귀한 줄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귀한 자식에게 매 하나를 더 안긴 것은 다 까닭이 있어서였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고 강인하게 길러야 나중에 성장해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주 기계공고 학부모들이 손수 회초리를 만들어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선생님들께 전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학생을 체벌한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교권 추락 상황에서 읽은 기사였기에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체벌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필자 또한 학창 시절 체벌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벌과 사랑의 회초리는 엄격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체벌은 통제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폭력의 일종이다. 체벌에는 교사의 감정이 실리게 마련이고, 교사의 사적인 감정이 실렸다면 이는 사랑의 회초리가 아니다.
 

반면 사랑의 회초리는 체벌과는 다르다. 사랑의 회초리에는 스승으로서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잘 되기는 바라는 부모 같은 마음이 깃들어 있다.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감싸주면서 더욱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진짜 사랑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흔히 ‘교편(敎鞭)’을 잡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편(鞭)’은 회초리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원래 가르친다는 것과 회초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어떤 것이 사랑의 매이고 어떤 것이 체벌인가를 고민하는 교사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랑의 매와 단순한 폭력적 체벌은 아이들이 기막히게 구별해내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무리 그럴듯한 표정으로 위장을 하더라도 진심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법이다.

 

진심이 담겨있으면 사랑의 매
 

필자가 교직에 발을 들인 1990년대 초만 해도 “때려서라도 사람 좀 만들어주세요”라며 교사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던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우리 아이는 말로 타일러야 잘 듣습니다. 꾸중보다 칭찬해 주십시오”라는 주문이 주류다. 물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은 좋은 말이다. 그렇다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한테까지 칭찬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날 서당의 훈장님들은 학동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체벌을 가했다. 자식이 서당에서 회초리를 맞고 오면 그 아이 부모님은 다음날 감사의 표시로 서당에 떡을 해 보냈다. 자기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사은의 표시였다. 아주 가끔 “제 아이에게 회초리를 대서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주세요”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를 만나면 새삼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