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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과학기술이 만든 디스토피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청보리 물결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오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있는 탓에 감사 인사를 하러 몇 곳을 다녀왔다. 무리하게 농사일을 하신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다 퇴원하셨기에 온 가족이 모였다. 아프신 어머니께서야 죽을 드셨지만 아이들은 시골 마당 숯불에 고기를 구워먹었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깊게 하였다. 먼길을 달려와 피곤하였지만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는 날이었다. 다 자란 조카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삼촌의 행복한 얼굴이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아카시아 향기를 머금었다.

 

이런 고전적(?) 행복은 부엌에 쌓인 엄청난 설거지와 다시 돌아가야 할 귀가길이 남아있었고, 할머니의 잔소리에 담긴 따뜻한 애정이 지겨운 아이들은 몰래 휴대폰게임을 하였다. 대학생들은 벌써부터 취업을 걱정하고,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은근히 물어보는 장난스런 물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연휴동안 읽는 책이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이다.

 

소설가 헉슬리가 만드는 미래는 모두가 늘 행복한 사회이다. 이것은 인간들의 유전자와 정신의 조작에 의해 얻어진 결과이다. 런던의 부화와 조건반사 센터의 34층에 있는 수정 부서에서는 시험관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주민들이 태어날 준비가 이루어진다. 멋진 신세계의 주민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험관에서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 헐~ 이렇게만 되면 진로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고 시험관에서 부여 받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이곳에서 태어나는 모든 태아는 다섯 종류의 상자에서 생산된다. 개인의 운명은 실험실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2540년의 신세계는 포드가 T모델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시설에서 생산되어 소비의 시대를 열었던 때부터 632년이 지난 시점이다. 결국 ‘포드’가 신이다. ‘모든 것이 행복하라!’는 가르침이 잘 드러난다.

 

헉슬리의 신세계에서는 가족이 없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그들은 '부모'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런 모든 인간들과 반대되는 인물은 야만인 '존’이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성장하여 미개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였지만 존은 금서인 ‘세익스피어’를 읽었다. 그는 세계를 통제하는 지배자와 대화하는 중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나는 신을 원하고 문학도 원해요. 진정한 위험에 처해보는 것도 원하지요.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선도 원하지만 죄도 원하지요." 이 말에 세계의 지배자가 대답한다.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군. 늙고 추하고 생식불능이 되는 권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성병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없거나 이들이 들끓을 권리, 매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고문을 당할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 "예, 난 그런 권리를 원해요."

 

‘왜 그것이 금서가 되었나요?’ ‘낡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된 이유일세. 이곳에서는 낡은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단 말일세.’ ‘그것들이 아름다워도 그렇습니까?’ ‘특히 아름다운 것이면 더욱 그렇지.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거든. 그런데 우리는 낡은 것에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입장일세.’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러한 문학 작품이나 사상을 디스토피아라고 한다.  그는 과학이 인간으로부터  유리될 때 나타나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산기슭에 아카시아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 향기를 따라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존의 모습을 생각한다. 내 삶의 주체는 과연 나인가? 소비의 주체가 나인가? 이런 물음에 정확히 답하는 삶이 되고 싶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