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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동행] ‘춤바람’으로 맺은 영원한 사랑

“선생님, 전 댄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뭘 해도 될 것 같구나.”

 

헉 힙합이라니! 서로 놀랐다.

 

힙합학원에서 마주치게 된 우리는, 40 중반이 된 학교 선생님을 힙합학원에서 마주칠 줄 몰랐던 아이는 나의 존재에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렇게 우린 ‘춤 학원’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는 댄스 가수가 되길 꿈꾸며 실용음악학원과 힙합학원을 다니는 중이었고, 난 ‘신명 나는’ 운동을 찾다가 요가가 아닌 힙합학원 문을 두드린 차에 조우하게 된 터였으니 서로 놀랄 만도 했다.

 

수업시간 맨 앞에 앉아 가끔은 꼬박꼬박 졸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수업 듣기에 열심을 내던 학생이었다. 말갛고 정갈한 표정으로 수업도 듣고 대답도 하던 학생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배틀’을 하며 춤을 추는 모습에선 전의(戰意)와 자신감과 끼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그렇게 춤을 추는 아이의 사진도 찍고 학교에서 춤 이야기도 하며 우린 우리만의 학교 밖 이야기로 공감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든 선생이 춤바람(?)이 나서 그것도 힙합을 배운다는 소문에 학교축제 담당 선생님의 제안이 들어왔다. 축제 때 무대에 오르시라! 몸치인 나는 극구 사양했다.

 

대신 학생과 한 조로 오르는 걸 허락해 주면 하겠다고 반격(?)을 하자 담당 선생님은 반색이었다. 우영이를 호출해 도움을 요청했다.

 

“큰일 났다, 우영아. 힙합 배우는 거 알고는 날더러 어울마당 때 춤을 추라는데. 난 네가 안 한다고 하면 안 한다고 버틸거다. 네 생각은 어떠냐?”

“오! 그래요? 선생님! 왜 안 해요? 해야죠!”

“그럼 네가 몸치인 이 쌤한테 춤 연습도 시키고 의상도 준비하고 음악도 준비해야 한다. 괜찮겠니?”

“당연하죠.”

 

그렇게 해서 시작된 춤 연습. 아이와 대략 한 달간 춤 연습을 하면서 나는 사소한 동작 하나도 맘에 들지 않으면 맘에 들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 우영이의 성실함을 보게 되었다. 몸치인 내게 순서를 익혀주기 위해 어찌나 열심히 반복 학습을 시키던지. 사소한 손동작 하나까지. 그렇게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학교 안 빈교실을 전전하기도 하고 늦도록 땀을 함께 흘리며 휴일엔 학교 밖 연습실에서도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평소엔 하지 않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선생님, 전 가수가 되고 싶어요. 댄스가수가. 물론 되면 좋지만 가수를 꿈꾸는 사람은 너무 많거든요. 전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아이의 고민은 참으로 절절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공존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을 지도해 왔지만 꿈과 이상을 좇으면서도 현실에 두 발을 탄탄하게 딛고 있는 모습이 미더웠다. 그러면서 그 꿈을 이루려 하는 아이의 노력은 눈물이 날 정도로 혹독했다. 곁에서 근 한달 간 아이를 지켜보며 자신 있게 충고할 수 있었다.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나중에 네가 꼭 가수가 되지 않아도 댄스학원을 차려도 되겠고, 가수나 댄서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춤으로 그 분야로 진출하려는 아이들을 위한 기획사를 차려도 되겠다. 뭘 해도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나중에라도 ‘방송인’으로 수명이 길게 활동하려면 공부도 좀 틈틈이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늦도록 연습하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뭐라 뭐라 종알거렸고, 그때마다 힘들어하고 고민이 한가득인 아이에게 길을 잃지 않도록 열심히 충고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어디 어디 오디션이 있는데 학교에서의 학사일정과 맞지 않아 학교에서는 출석을 강력히 권고했지만 고3 때 담임교사와 나만 네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격려했던 일도 있었다.

 

학교축제는 그다음 해에도 있었고, 아이의 춤을 사진으로 담아 CD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디든 오디션을 볼 때 자료로 제출할 데가 있으면 하라는 의미로 건낸 선물이기도 했다. 이 아이가 어딜 가도 제 몫을 하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며 본 아이는 땀의 가치를 아는 아이였다.

 

연습실 마루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땀. 하루에 옷을 두 번씩 갈아입으며 춤을 추고 또 추던 열정. 그렇게 춤을 사랑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10대에는 누구나 불안하고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아이보다 인생을 조금 먼저 조금 더 살아온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그렇게 그해 초겨울이 지나갔다. 그리고 학교축제 때 무대에 올라 선생은 맘껏 망가지고, 제자는 화려하게 비상을 시작하였다.

 

그 이후엔 ‘JYP 오디션’에서 전국 1등을 하고 2PM 그룹의 멤버가 되고, 그렇게 아이는 빛나는 ‘스타’가 되었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었던 선생님이란 우영이의 기억 탓에 늘 잊히지 않는 선생님으로 남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라면서 방송에 나가서도 이야기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TV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우리 결혼 했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에 출연(?)하는 재미있는 경험도 했다.

 

2006년 우영이가 고2 때, 학교 밖에서 ‘춤바람(?)’으로 맺은 우리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 참으로 그 인연이 감사할 뿐이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크든 작든 선물이 도착했고 해가 바뀔 때면 새해 인사도 날아들었다. 해외 공연이다 뭐다 또 솔로 활동이 아니라 팀이 움직이는데도 마음 씀이 참 다감하고 고마운 아이였다.

 

작년엔 부산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다고 제일 좋은 자리 선생님께서 필요하신 만큼 티켓을 보내드린다고 내가 필요하다는 만큼 입장표를 선물로 안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인연은 지금도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믿는다. 끝까지 믿어주는 교사와 그 교사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학생의 감사와 사랑이 맺은 결실은 아마도 ‘네버 앤딩 스토리’가 될 것이다.

 

“선생님, 전 댄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제 꿈대로 가수가 되지 못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요?”

“공부는 내가 널 가르쳤다만 춤은 네가 나의 선생님이더라. 네가 날 가르치는 걸 보니 뭘 해도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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