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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⑤] 올랭피아와 인상주의

≪올랭피아(Olympia)≫는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과 함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대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문을 연 가장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마도 미술 사조 중에서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것을 꼽으라면 인상주의일 것이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네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마네는 정작 인상파에 속하길 꺼렸지만,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인상주의가 처음 시작한 시점에 이 새로운 화풍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대중적인 인식은 오늘날과는 정반대였다.

 

특히, 마네의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당대의 기존 미술 평단 및 대중들의 평가절하는 건전한 비평을 넘어서 야유와 조롱으로까지 이어졌다. 비너스와 같은 여신이 아닌 당대 여성을 누드화로 그린 작품의 주제나 대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가 하면, 심지어 마네가 미술기법의 기본도 모르는 아마추어라고 조롱까지 하였다. 당시에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회화에서 인상주의의 시작을 정확히 말한다면, 1863년이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치세하에 있었고, 미술 활동은 제도권에서 개최하는 전시회 즉, ‘살롱(Salon)’에 의해 이루어졌다. 1863년에 살롱전의 심사위원단은 유난히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여 출품된 작품을 선정하였는데, 그 결과 당시 출품작의 5분의 3이 낙선되었다. 이 낙선 비율은 당시 이례적인 것이어서 예술계에 엄청난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화가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한편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폴레옹 3세는 인상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하는 결정을 한다. 즉 낙선한 작품들도 만국박람회의 한 편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전시회가 소위 ‘낙선전(落選展)’이라 불리는 ‘살롱 데 르퓌제(Salon des Refusés)’이다.

 

낙선한 작품들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수천명의 대중들이 그날 비웃었다고 한다. 그 중 ≪풀밭 위의 점심≫ 등을 출품한 마네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작품의 주제 및 대상이 천박하다는 것에서부터 기법이 미숙하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불만 가득한 대중들은 ‘그림을 너무 못 그렸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마네가 이 낙선전에는 전시하지 않았지만, 뒤이어 1865년 아카데미 살롱에 출품한 ≪올랭피아≫를 본 대중의 평가는 더 가혹했다. 회화의 기법 차원에서 마네가 그림 속의 대상이 두드러지게 되도록 3차원 입체감을 살려서 그리지 않고, 평면에 2차원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간적 깊이를 느낄 수 없도록 평면적인 색채로 표현된 회화적 평면성(flatness)은 회화를 회화답게, 다른 어떤 목적의 수단이 아니라 그 본질적 차원에서 만들어준 결정적인 기법이었으며, 이후 순수 회화 예술 나아가 추상표현주의의 기원이 된다. 창조적 새로움은 이처럼 당대의 혹독한 평판을 뚫고 솟아 나온다. 

 

회화의 기법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도 당시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올랭피아≫는 오늘날까지도 종종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예술 제도나 사회적 문화에 대판 비판과 성적 차별을 넘어서는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담론, 인종 평등 담론 등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을 꼽자면 ≪올랭피아≫ 이후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한바, ‘환상(illusion)’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이다. 

 

≪올랭피아≫에서 당당하며 강렬하게 관람자를 직접 보고 있는 19세기의 ‘올랭피아’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성(性)과 제반 사회적 통념에 대한 환상의 해체를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의 시선을 던진다. ‘당신의 자유로운 감각은 얼마나 순수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