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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일본의 수출규제, 백색국가(무역우대) 제외 조치에 대응하는 일본 불매운동과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시점에 일제 강점기 독립군의 첫 승리를 다룬 영화 봉오동 전투가 개봉되었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없는 지금 이 영화는 속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이다. 독립군은 숫자, 무기, 자금 등 모든 것이 부족하였지만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 지형을 활용하여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를 유인하여 궤멸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험준한 산속을 무거운 총을 들고 일본군을 유인하며 달리는 긴박한 독립군의 모습과 몸서리치는 일본군의 만행이 표현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역사책에 기록된 영웅 홍범도가 아니라, 각자 생업을 내려놓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뛰어든 이름 모를 영웅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며 작년 8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봉오동 전적비를 찾은 일을 떠올린다. 그 전적비는 봉오골 저수지 왼쪽에 위치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비에 젖어 뒹구는 향로, 우묵장성이 된 주변을 보며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앞섰다.

 

봉오동은 중국 지린성 왕칭현의 두만강 변 지역 이름이다. 10개의 작은 마을에 200여 명이 살던 궁벽한 오지였다. 러시아 국경까지는 40㎞, 북한 국경까지는 18㎞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서 독립군 지휘관인 최진동은 1908년 청나라의 지방관청으로부터 봉오동 일대 토지를 사들여 개간하고 독립군은 물론 일본 압제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들을 끌어모아 한인촌을 세운다. 험준한 골짜기가 25㎞에 달할 만큼 깊어 독립군이 농사짓고 군사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이곳에서 홍범도와 최진동의 대한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 월강추격대대와의 전투에서 첫 승리를 한다.

 

영화 속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 잊히지 않는 대사가 메아리친다. 전설적인 칼잡이 독립군 황해철은 이북 사투리를 쓰면서 전국의 독립군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는 이유를 "어제 농사짓던 사람들이 오늘 독립군이 되어 총을 쏘는 거야. 그러니 정확한 독립군 숫자를 어케 알겠니! 나라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복받치게 만들었고 소총잡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장하는 “여긴 마지막 조선이야 뺏기면 전부 끝이야.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하며 독립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일본은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참변을 일으켜 수만 명의 우리 동포를 살해한다. 끔찍한 만행이다.

 

여기서 일본의 수많은 만행의 하나인 731부대를 생각한다. 이 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세균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비밀부대였다.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해부 실험,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냉동실험, 생체 원심분리실험,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 관통실험, 가스실험 등이었다.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 눙안과 장춘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고, 이로 인해 중국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종전 후 이같은 끔찍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731부대 관련자 중 누구도 전쟁 범죄자로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이 인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관련자 전원을 석방했기 때문에 만행은 묻히게 됐다. 약소국의 비애다. 그러나 1981년 일본인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가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을 발표하며 731부대의 만행이 알려지게 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끔찍한 나라다. 우리가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합된 마음과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측면도 원인이 된다. 영화 속 아름다운 산과 들, 파란 하늘 아래 일본군의 총칼에 쓰러지고 무너지는 백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당하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에서 분노가 더 크게 느껴진다.

 

우리의 근 현대사는 질곡과 아픔의 역사이다. 영국 수상 처질은 “전쟁에서 진 나라는 일어서도 항복한 나라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봉오동 전투는 알게 한다.

 

영화 봉오동 전투를 연출한 감독은 ‘인간의 저항과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우리는 그들이 지켜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야기함으로써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지금을 사는 우리는 앞으로도 일본을 대할 때는 감정 아닌 냉철함으로 앞서 준비해야 함을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