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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을 잡아라②] 항상 괴로운 학습부진 학생들

본지-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공동기획

어느 볕 좋은 날 진호는 교실 맨 뒷자리에서 초점 없는 눈빛으로 벽면의 시계를 응시하고 있다. 온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펴더니 이내 엎드려 잠을 청한다. 쉬는 시간에도 잠에서 깰 생각은 없다. 학교에 머무는 진호의 8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나간다. "학교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진호와의 면담에서 가장 기억나는 한 마디다.

 

학교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윤서는 학기 초 친구 사귀기에 실패했다. 같은 모둠 내 그 누구도 윤서의 문제풀이를 도와주지 않는다. 윤서는 눈치를 보며 의미 없이 교과서 페이지만 넘긴다. 제출 시간이 임박해서 한 친구가 베껴 쓰라며 노트를 휙 던져준다. 윤서는 다급하게 답을 받아 적는다. 이 짧고 퉁명스러운 대화가 윤서가 친구들과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

 

"어차피 애들이 날 싫어할 게 뻔하니까요." 친구들은 윤서가 싫다. 공부도 못하지만 자기랑 코드가 안 맞는단다. 그런 이유만으로 윤서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고 잔인하다. 그런데 윤서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초등학교 수학시간. 스스로 한 번 풀어보자며 활동지를 나눠주자 민정이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하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한다. 선생님은 익숙한 듯 조금만 참아보자고 타이른다. 열다섯 문제 중 세 문제 정도 풀었을 때 민정이는 복통을 다시 어필하며 양호실로 탈출한다. "공부해도 모르겠어요. 나 수학 안 미워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인 재능이 부족해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민정이에게는 수학이 그런 것이다.

 

학습부진학생에 대한 연구를 3년째 하며 다양한 학생을 관찰하고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음에는 학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되묻던 질문도, 수학을 미워하지 않는데 도망가던 마음도, 단 한명의 친구도 없는 학교에 오는 마음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 학생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 생각이 무지와 편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학습부진을 겪는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실패의 경험이 많고, 수없이 거부당하며 인정받지 못해 자존감은 곤두박질쳤으며, 학습된 무기력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사회와 학교는 이 아이들에게 참 못할 짓을 하고 있다. 학교의 역할은 아이들이 그 연령대에 배워야하고 발달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흡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느리게 배우는 학생들에게 남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너는 왜 이렇게 느리냐며 채찍질하는 것은 이 아이들을 개미지옥에 빠지게 할 뿐이다.

 

이 무기력하고 자존감 낮은 학습부진학생들이 배움을 이어 가려면 우선 학교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를 점점 더 싫어하고 있다. 비록 조금 느리더라도 학교에서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이라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학교에 오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이 조금 느리면 어떤가!

 

왜 이 아이들이 의미 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을 방치하는가? 이 아이들에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고 훗날 인생을 실전으로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준비돼 있지 않은 이 들의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져 있을 것이다. 

 

학교는 절대 괴로운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단순히 수업을 통한 지식습득을 위한 과정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됐으면 한다. 조금 배움이 느리면 또 어떤가? 모든 학생이 함수를 이해하고 교과서 본문을 유창하게 술술 읽어내며 자기 생각을 글로 조리 있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배움이 조금 느린 아이들이 더 잘하고 좋아하는 다른 것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 대안적 경로에는 결코 낡은 잣대와 편견이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작고 꾸준한 노력들을 통해 진호가 학교 오는 것이 좋아하게 되고 윤서에게 다가가는 친구들이 생기며 민정이가 양호실로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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