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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뚝딱’ 만들지 말고 아이들과 머리 맞대자!

<학교 놀이터를 살리자>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

 

2000년대 초반, MBC의 공익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한 코너가 전국적인 독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 경쾌한 구호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한 달에 한 권씩 좋은 책을 소개하고 독서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는 ‘기적의 도서관’ 사업도 추진했었다. 그 결과 전국에 두 개 뿐이었던 어린이 전문 도서관은 기적의 도서관 14곳을 포함해 100개를 훌쩍 뛰어넘게 됐는데 이는 단순히 숫자상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순천에서 시작된 ‘기적의 놀이터’는 이 ‘기적의 도서관 사업’에서 이름을 따왔다. 첫 번째 발걸음인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은 순천시와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씨가 지난 2015년부터 힘을 합쳐 기획하고 디자이너 스쿨 및 1박 2일간의 디자인 캠프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을 거쳐 지난 2016년 5월 문을 열었다. 
 

조합놀이대, 그네와 시소, 탄성 고무매트 바닥 3종 세트의 천편일률적인 놀이터에서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놀이거리로 가득 채운 이 곳은 하루 평균 200명, 주말 평균 700명의 어린이가 찾아오는 인기 만점 놀이터다. 지난해에는 공공건축 최우수상과 창의행정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으며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객들이 붐비는 명소가 됐다.

 

어린이감리단 의견 적극 반영

 

8월의 무더운 어느 날, 서울초등체육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방문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의 첫 인상은 ‘나도 놀아보고 싶다’였다. 놀이터 입구와 도로 사이를 막아주는 구불구불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과 그 아래로 반쯤 묻혀 있는 20m의 원통형 미끄럼틀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는 넓은 모래밭과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팽나무 고목도 눈길을 끌었다. 
 

순천시청 공원녹지과 소속으로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놀이터 활동가 김선미 씨는 특히 놀이터 가운데에 설치된 모래밭의 모래가 강원도 주문진에서 공수한 스스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여과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깨끗한 모래와 그 위로 그림처럼 누워있는 팽나무 고목, 자연 미끄럼틀이자 겨울에는 눈썰매장으로 변신하는 언덕, 그리고 그 언덕 아래로 숨어있는 원통형 미끄럼틀은 1년 6개월간 놀이터 디자이너와 아이들이 ‘자연친화적인 새로운 놀이터’를 주제로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다. 
 

특히 2018년도 창의행정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에는 이처럼 아이들이 설계부터 감리까지 함께했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기적의 놀이터의 이름인 ‘엉뚱발뚱’ 또한 공모를 통해 아이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며, 아이들로 구성된 놀이터 감리단은 실제로 완성 단계에서 아이들 눈높이에서만 찾을 수 있는 피드백과 요구사항을 제시해 준공이 늦어지기도 했다. 기적의 놀이터 1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20m 길이의 거대한 원통형 미끄럼틀은 더 스릴 있고 긴 미끄럼틀을 만들어달라는 어린이 감리단의 의견을 반영해 길이를 확장하고 그에 맞는 경사각를 확보하기 위해 휜 형태로 언덕 아래를 통과하는 형태를 갖추게 됐고 엉뚱발뚱 놀이터에서 가장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모래사장 둘레를 따라 조성된 U자 모양의 연못 수로 양쪽에는 재래식 펌프가 설치돼 있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하루 수백 명이 와서 모두 한두 번씩 펌프질을 하다 보니 고장이 멈출 날이 없었는데, 처음에는 출장 기사를 불러 수리를 하다가 이제는 자기가 전부 직접 고친다며 웃음을 보이는 놀이터 활동가의 이야기에서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인지 느낄 수 있었다.

 

시간 걸려도 눈높이에 맞춰야

 

서두에 언급한 ‘기적의 도서관’ 사업이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딱딱하고 숨 막히는 독서실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따뜻한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도서관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관심이 생겨났고 이런 관심이 제2, 제3의 ‘기적의 도서관’ 사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났다. ‘기적의 놀이터’ 사업 또한 우리나라 놀이터의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는 현재 4호까지 개장했고, 10호 개장까지의 일정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서울시와 세종시, 시흥시를 포함한 다양한 지자체에서도 새로운 놀이터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놀이터의 변화도 시작됐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7년부터 ‘아이들이 놀러오는 학교놀이터 만들기 시범 사업’을 추진해 신현초와 장월초에 ‘꿈을 담은 놀이터’를 개장했고 2022년까지 서울 공립초의 25% 이상에 ‘새로운 학교놀이터’가 조성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가 꼭 되새겨야 할 것은 놀이터 변화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이 기획부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씨는 “사회적 관심을 등에 업고 어른의 눈높이에서 진행되는 놀이터 사업은 ‘놀이터 토건’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해왔다.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회의하고, 어린이 감리단을 운영하며 준공 연기도 기꺼이 감수했던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은 새로운 시설로 놀이터를 뚝딱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의논하고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함께 있어야만 우리네 놀이터의 기적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워질 학교놀이터 또한 ‘놀이터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 변화 속에 학부모와 교사가 놀이터 활동가로서 역할을 함께하는 ‘협력의 공간’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박민영 서울대림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