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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일기- 비상학(飛翔鶴)의 전설

선학동 나그네

십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전라남도 장흥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물과 숲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장흥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탐진강에선 물축제를 하여 사람들이 무척 많았었다. 편백숲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산림욕을 하였고, 장흥 삼합(쇠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구웠다.

 

이 아름다운 장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다시 읽었다. 오래전 여행지에서 본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한적한 바다 풍경, 소등섬의 일몰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이들은 해수욕장에서 파도와 놀았지만 나 혼자 비상학의 전설을 찾아 계속 바다 위를 바라보았었다.

 

소리꾼 아버지와 눈먼 딸 그리고 이복 오라비의 기구한 운명은 가슴에 한을 품게 하고, 그 한을 다만 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사내가 찾아갔던 그 장흥의 마을 주변에서 나도 내 마음에 얽혀있던 어떤 것을 풀어내고 싶었으리라.

 

사내는 갈수록 발길을 서둘러 댔다. 사내는 새삼 표정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산길이 제법 높아 그런지 저녁 해는 회진 쪽에서보다는 아직 한 뼘 길이나 남아 있었다. 이제 마지막 산모롱이를 하나 올라서고 나면 거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들어간 선학동 포구의 긴 물길이 눈앞을 시원히 막아 설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보게 될 것이었다. 장삼자락을 길게 벌려 선학동을 싸안은 도승(道僧) 형국(形局)의 관음봉(觀音峯)과 만조에 실려 완연히 모습 지어 오를 그 신비스런 선학(仙鶴)의 자태를.

 

흰쥐 해라고 하는 새해는 쏜살처럼 흐르고 있다. 1월의 중순을 지났다. 새해라는 것은 시간을 인위적으로 분절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분절 앞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 지난해 다 읽지 못한 철학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새학기 아침독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독서 모임 5주년을 맞이해서 고전 읽기를 준비하고 있다.

 

가끔 세상일에 앞이 막혀 눈이 보이지 않을 때면 내 마음에도 둥둥 북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막혀버린 회진포의 마른 논 위로 비상학을 보여 주던 여인의 소리를 들려오는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새해 나도 마음속에 비상학의 전설을 품고 살아가려 한다. 올해는 다시 장흥으로 여행계획을 세워보려 한다.

 

『선학동 나그네』, 이청준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