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바람직한 종교는 어떤 모습인가?’ ‘주일 종교 활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진정한 목회자와 성직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신앙은 인간의 삶보다 우위에 있는 특별한 가치인가?’ 요즘처럼 힘겨운 코로나19와의 싸움을 견뎌내며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마음속의 질문은 꼬리를 물며 답을 구하고자 애를 쓸 것이다. 이미 보편화된 질문으로 이론화되었거나 도그마로 정착이 되었지만 특수한 현실에 부딪히며 다시금 재고해 볼 문제이다.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실생활과의 연계 속에서 깨달음(계시)을 얻는다면 이 또한 신의 의도일 것이다.
지금 전국의 사찰이나 성당, 교회는 집단 활동으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일정 기간 종교행사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반드시 주일 종교행사를 지켜야 한다며 강행하는 종교 단체도 있다. 어느 목회자는 특정 종교모임에 참석하면 있던 병도 나을 수 있고 치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그 기저에는 현 정부에 대한 배척을 주장하며 극우 보수 정권의 정치적 성향을 노골화하기에 순수한 종교행사로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종교인은 이런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숙고의 여지를 남긴다.
지금은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유발한 감염병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 조치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실수는 인간이고 용서는 신이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종교는 인간의 집단지성과는 달리 ‘주일을 거룩하게’, ‘안식일을 지켜라’는 계명을 예외 없이 고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총체적인 인간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 세상의 문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도 인간이 창조해 낸 대상이다. 현대는 중세의 종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삶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인간이 거룩한 신을 닮고자 하는 것은 피조물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신을 닮을 수 없기에 종교는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하려는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초월하여 특별한 지위를 강제로 행사한다면 인간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과거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나 ‘종교는 아편이다’는 국가적 주장이 난무했던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인간에게 전혀 무의미한 주장이었던가?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세속적인 명제도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나름의 교훈이 아니던가?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종교의 역할'을 살펴보자. 《보살핌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제가 승려로서 몰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서로 다른 종교 전통 간에 진정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대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 이르기까지 주요 종교가 전하는 똑같은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인내, 용서,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가 이를 실천하고 있으며,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토대입니다.”
그렇다. 달라이라마의 말처럼 모든 종교의 메시지는 하나, '사랑'이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전 인류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 전 우주적인 것이다. 그걸 놓치거나 잃으면 그 종교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하물며 미움과 걱정과 사회적 재앙의 근원지가 된다면 자기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다. 종교는 일치와 화합을 추구하는 역할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고 죄를 범한다. 이를 성찰하여 보다 겸허하고 자기 내면을 충실히 하며 인류 공동체를 일치와 화합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현시대의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