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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교사도 고별 강의 문화 만들자

명예퇴직을 앞두고 강의 의뢰를 받았다. 새 학기 준비 기간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한다. 이 기간에는 전 년도 교육 성과를 성찰하고, 새로운 교육 계획의 방향을 협의한다. 특히 새로 전근 오는 선생님들과 기존 선생님들이 함께 해서 새 학년 교육 준비에 중요한 기간이다. 이 기간에 특강 시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2020년 2월 19일 13:00~14:30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동료 선생님들이 마지막 강의, 마지막 특강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강의 의뢰를 받고 고민이 많았다. 이제 퇴임을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그동안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수업, 평가,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분야 강의를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퇴임하는 마당에 그런 연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제 그런 내용의 연수는 남겨진 선생님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수 계획표에도 교육과정, 수업 및 평가 관련 프로그램은 편성되어 있다. 고민만 커지니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생각을 뒤척이다가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답을 찾았다.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해 진행하는 방송이었다.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이 초대됐다. 등장하는 모습을 보니 거동이 불편해 보인다. 저렇게 나이 드신 분이 연주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랐다. 물 흐르듯 건반을 눌렀고, 소리도 그윽하고 애잔했다. 대가 연주자의 음향이 청중의 심금을 파고들었다. 늙은 연주가는 천진무구한 소년처럼 행복해 보였고, 관객들은 가슴에 적시는 음률을 눈빛에도 담았다. 그러면서 교직을 생각했다. 교실에서 30년 넘게 몸부림치며 버텨왔다면, 마지막 모습도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면 안 될까. 대학에서는 퇴임하는 교수들이 고별 강의를 한다. 이것이 보편화한 그림인데, 고등학교는 왜 안될까. 교단에서 평생 보낸 분들은 마지막 수업도 없이 쓸쓸히 떠나는 것이 아쉽다.

 

마지막 강의가 아니라 고별 강의를 준비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강의 제목이라도 먼저 알려 달라는 말에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이야기’로 보냈다. 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책에 있는 이야기,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메마르고 황량할뿐더러 감동도 없다. 영화감독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밝힐 때처럼, 내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이다.

 

교직에 발을 딛고 지내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회가 변하고, 그 물결로 ‘내’가 변해온 과정을 이야기했다. 시를 인용하고, 그림을 보여주면서 힘들었던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를 추억처럼 말했다. 아이들이 시를 공부하는 방법을 고민했던 이야기, 글쓰기 교육을 위해 노력했던 일, 독서 교육에 빠져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던 이야기 등.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부끄러운 과거도 숨기지 않았다. 성찰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가끔 힘든 상황을 만나면 신념과 용기가 꺾기기도 했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에 여기까지 왔다. 힘들 때는 적당히 하고도 싶었지만, 어린 학생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를 쓰면서 왔다. 결국 교육은 학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는 따뜻한 감성으로 학생들의 마음에 깊이 다가서야 한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성장하는 기쁨도 많았다. 나이 먹으면서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보다 그 이면을 읽는 태도가 생겼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이들의 배움을 돕는 교사가 됐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선생님이 되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무난히 교단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 많고, 통찰력을 갖춘 선생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료들과 협력하며 전문성을 키우라는 말도 남겼다.

 

가장 위대한 일은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생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다. 퇴직이 열심히 살았던 습관과 이별하는 느낌이다. 학교를 떠나지만 나의 교육적 열정, 교육적 영감을 선생님들이 기억해주고, 내가 지녔던 내면의 떨림까지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강의를 마쳤다.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퇴임하지 마시고 계속 강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입을 모았다. 새로 우리 학교에 오신 선생님도 ‘수석선생님, 오늘 울림이 있는 멋진 강의였습니다.’며 인사를 건넨다. 길게는 함께 3년을 근무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들도 있다. 이제 그들과 긴 이별을 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비유에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교단에서 헌신한 선생님의 인품과 성취도 학교를 떠나면 빈 들판에 떠다니는 바람이 된다. 그 선생님의 풍경은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저장할 수 있다. 어쨌거나 퇴임은 기약 없는 작별이기에 슬픔이 앞선다. 달랑 꽃다발만 안기고 떠나보내는 것은 아쉬움이 많다. 대학처럼 고별 강연을 하는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명성이 있는 교수들 못지않게 교실에서 묵묵히 헌신한 열정에도 박수를 보낼만하다. 도전하는 과정에 누적되어온 고난의 이끼까지도 지지를 보내고 우리가 공유해야 한다. 책으로 배우는 교육학은 삶과 분리된 학문일 수가 있다. 교육계에 몸담았던 긴 세월 동안 가슴 태우며 이루려 애썼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아픔도 남겨진 후배들에게 진짜 살아 있는 학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