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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차 파는 늙은이 ‘매다옹(賣茶翁)’으로 살고파”

차 문화 발상지 진주, 그리고 ‘죽향’

 

대나무는 향이 없다. 곧고 속이 비어 허심탄회한 정서가 대나무의 향을 대신할 뿐. 그러기에 향 없는 향을 가진 대나무는 차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로 꼽힌다. 차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경상남도 진주. 그곳에 대나무마냥 향으로 차를 혼탁하게 하지 않는 찻집 ‘죽향’이 있다. 담담하고 맑은 ‘참사람’이 그리울 때면 찾고 싶은 곳. 차(茶)로 드는 길이라면 굳이 문이 없어도 되는, 바로 그곳.
 

세상 만물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치를 지니고 있다. 그 이치를 하나씩 추구해 들어가면 마침내 앎에 이른다. 그리하여 직접 몸으로 다가드는 수고로운 행이 있고 난 후에야 사물의 참된 모습을 밝혀 깨달을 수 있는 것들. 그것을 일러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했던가. 차를 아는 것도 그것과 같아서 ‘죽향’을 운영하고 있는 김형점(55)・김종규(59) 부부 내외의 행보는 언제나 이롭다. 
 

청소년수련관이 자리하고 있는 옛 진주시청 건물 맞은편의 ‘죽향’.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요하고 맑은 선방(禪房) 느낌의 차 문화 공간이 펼쳐진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측은 대추자나 생강차와 같은 대용차실, 우측은 다도를 즐기거나 다구를 구입할 수 있는 ‘아정(雅亭)’이라는 공간으로 나뉜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윽하게 풍기는 차향과 다구들이 즐비해 있는 고졸한 멋에 압도당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터. 흡사 고대 유물 속을 들여다보는 듯 저 머나먼 세계의 신비한 기운이 감동으로 다가오던 것이다. 진주시민들은 물론 일찍이 전국의 내로라하는 재야인사들이 숱하게 몰려오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김형점・김종규 부부 내외가 이곳에서 찻집을 시작한 지는 2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 지금이야 ‘죽향’의 사장 직함은 남편인 김종규 씨가, 죽향차문화 원장 직함은 부인인 김형점 씨가 맡고 있지만 애초에 시작은 김형점 씨로부터였다. 

 

 

전생에 해온 일처럼 끌림 느껴

 

대학생 시절부터 대개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세련된 커피숍보다는 은은한 전통찻집을 드나들던 형점 씨였다. ‘전생에 내가 해온 일이구나’ 여겨질 만큼 생사 너머의 끌림이 있었던 것일까. 따로 배워 익히지 않아도 다식 만드는 법이며 찻물 내리는 것이 저절로 손에 익어 나오더란다.
 

결혼생활은 형점 씨를 차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끌어당기는 계기가 된다. 현실에 안착하는 느낌이 들어 답답하기만 했던 시집살이. 밤에 홀로 차를 대하는 시간이야말로 유일한 도피처이자 낙이었다고 형점 씨는 말한다. 그러다 형점 씨는 녹차 한 잔을 들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차가 이렇게 맑고 경이로운 것이구나, 차 한 잔이 이리도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이구나. 그때 형점 씨가 느낀 차에 대한 생각은 경이를 넘어 신이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생에 해결되지 않은 것까지 다 해원되는 것 같은 그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하나. 세포 하나하나에 스미어 있는 모든 묵은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나가도록 울음을 쏟아낸 뒤, 형점 씨는 비로소 세상 참 살아볼 만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온 이유조차 모르고 살다가 죽는 것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오는 곳도, 가는 곳도 분간 못한 채 오고 가야 하는 우매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인간에게 가장 큰 약점이자, 모순이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형점 씨는 그 밤, 비로소 자신의 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크게 비우고 크게 깨닫고 나서 소원하던 전통찻집 ‘죽향’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형점 씨가 아침 이슬이자 햇살과 같은 것이라고 느꼈던 차 한 잔. 그리고 선의(善意)요 심오한 지혜이며, 무한한 진리이고, 동시에 끊임없이 탐색해야 할 비적(秘籍)인 그 차 한 잔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알게 된다. 이때부터 남편 종규 씨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편승해 지금껏 함께 해오고 있다.
 

 

본래 대나무의 굵기는 죽순의 크기와 같아 죽순이 굵으면 대도 굵은 법이다. 형점 씨가 찻집을 열던 1997년 당시에는 세간의 전통차에 대한 관심은 그리 호락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굶어 죽을 일 있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에 대한 고집 하나로 오랫동안 ‘죽향’이 진주의 명물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애초 지고 나온 부부의 굵은 대 때문이었을 거라. 옛  사람들이 먹으로 대를 칠 때처럼 오래된 잎과 어린잎이 구별되고, 음과 양이 뒤섞인 그 오묘한 진리가 ‘죽향’을 일군 것이다. 
 

형점 씨의 말대로 차에는 큰 에너지가 있어서 오롯이 믿을 수 있었던 것도 한 몫을 거들었으려나. 사실인즉 모든 물질에는 저마다 고유의 에너지가 있다. 성품이라 말할 수도 있는 참으로 깊고 오묘한 차의 그 에너지가 인연 따라 이루어져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묘함이 나오는 문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지만, 지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해야 할까. 

 

 

차선일미 경지 승화…죽향차선법

 

“대저 차는 깊고 두터운 경지의 것이어서 미묘합니다. 그만큼 차 문화는 심오해서 평생 알아도 알 수 없어요. 차는 한 번 두 번 우려 마시며 내 삶을 되짚어보는 반추의 시간을 제공해 줍니다. 그 속에서 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차는 도(道)입니다.”
 

형점 씨가 하는 죽향차선법은 행차(行茶)의 전 과정을 호흡과 일치시킨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육근(六根)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 일상을 초월로 이끌어내는 정념수행. 즉 일상에서 차 마시는 일을 참선으로 대입시켜 차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로 승화시킨 차의 행법이라고 볼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치고 차와 선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늘날 음차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 마음이 공적(空寂)한 본체에 들어가는 것. 자신의 본체인 본성이 움직이기 전의 정정(定靜)의 정도를 깊이 수련하는 것이 이곳 ‘죽향’이 차를 대하는 자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조화의 도(道)를 안으로 닦는 것. 그리하여 차를 안다는 것은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며, 생도 멸도 아닌 온갖 상대 세계가 끊어진 중도의 자리이자 공의 자리를 아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라만상과 내 마음속에 함께 존재하는 생명의 근원처. 자신의 본체이자 천지자연과 합일되는 이 자리야말로 누구든 회복하여야 할 숙명과 같은 것일 거라.

 

차 문화의 발상지 비봉루를 잇는 공간

 

하동의 차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맛을 품고 있다. 산등성이에 심어진 차나무들도 은은한 향을 품은 찻잎을 키워낸다. 그러나 ‘차는 지리산 하동에서 나오고, 그 차를 마시는 곳은 진주’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진주의 차 문화는 아득하고 오래됐다. 현재에도 진주시청에 등록된 차인회만 28개, 미등록까지 합하면 50여 개의 차인회가 활동 중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차인들이 활동하는 차 문화 활성화 도시인 셈이다. 
 

물론 진주가 차 문화의 발상지라는 말이 나온 데는 ‘비봉루(飛鳳樓)’의 역할이 크다. 비봉루는 비봉산 서쪽 기슭에 있는 누각으로, 1969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진주차인회, 당시에는 진주차례회가 발족됐다. 그렇게 사천 다솔사의 최범술 선생과 진주의 박종환, 정명수, 김창문, 최규진 선생 등에 의해 결성된 진주차인회가 전국차인회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음식은 육신을 살찌우고, 차는 정신을 살찌웁니다. 때문에 차는 귀족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대중화하려고 하다 보면 차의 격(格)이 낮아집니다. 때문에 차 문화는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는 거죠. 차를 마시는 사람의 나이와 연륜에 맞게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 맛은 정성이고, 차는 물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기질적으로 좋은 차는 차를 모르는 사람이 마셔도 좋다. 그것이 좋은 차의 요건이다. 하여 부부는 차를 마시고 난 전과 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본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다 청정함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노동 음료이자 대중사교 음료인 커피와 다르게 휴식과 여여함을 찾을 수 있는 힐링 음료인 차 문화의 특징이란다. 
 

한마디로 ‘죽향’을 알고자 한다면 문(門), 행(行), 득(得)의 길을 거쳐야 한다. 문이 있어서 들고, 행해서 얻는 것. 물론 그 과정에서 중정(中正)을 잃지 않는다는 천리원칙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차 자체가 삶이 되어버린 이곳 사람들처럼, 적당한 양의 차를 알맞게 우려 적당한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따라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죽향’은 그 깊은 철학을 토대로 비봉루에 이어 오랜 시간 동안 진주의 차 문화는 물론 문화예술의 중심에 있었다. 땅 위로 뻗은 가지 길이보다 땅 밑 뿌리가 깊은 차나무처럼 깊은 속을 지닌 찻집으로 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차는 차일 뿐이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차를 더 깐깐하게 고집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죽향’이 차 문화계 대부분의 차인들이라면 다 아는 명소가 된 것만큼 부부에게 차는 이제 사유나 소통으로서의 것 이상의 의미가 됐다. 상대에게 차가 펼쳐지는 것을 아는 나이, ‘차 파는 늙은 매다옹’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물을 보는 데에서 시선을 넓혀 물이 지닌 본질과 본성, 생성은 물론 물의 본체적인 요건 모두를 알아볼 수 있는 나이.
 

다능취인하필주(茶能醉人何必酒), 차가 능히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는데 하필 술이랴 / 서역향오불수화(書亦香吾不須花), 글이 역시 나를 향기롭게 만들 수 있는데 꼭 꽃을 탐하랴. 당나라 어느 시인의 시구마냥 넓고, 높고, 깊고, 고요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지면 진주에 가 볼 일이다. 거기, 연 따라 유유히 사는 차선(茶禪) ‘죽향’이 있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