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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쉬는 시간] ‘타당한가?’ 물음표가 필요한 순간

‘온라인 수업 과제를 제시할 때, ‘활동 과제’라고 써 주시니까 숙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힘들어요‘라고 들어온 민원. 교무회의에서 공지해요. 민원이 들어 왔으니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해야 할 과제를 ‘과제’라고 하지 말고 다른 말로 바꿔서 사용할 것. ‘앗. 과제를 과제라고 부르지 않고 뭐라고 해야 할까?’ 순간 고민했어요. 임무? 활동 과제라고 표현했으니 과제를 빼고 활동이라고만 해야 하나? 활동 내용? 도대체 무슨 말로 대체를 해야 할까 속으로 고민하다 퍼뜩 생각이 들어요.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지?’
‘홍길동이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과제를 과제라고 부르지도 못해?’
 

교무회의에서 그런 걸 고민할 수도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선생님들이 다 함께 모여서 머리를 싸매야 할까,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학교. 이런저런 민원이 참 많아요. 학부모님들도 개개인의 요구를 모두 표현하기 때문에 민원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지요. “선생님, 숙제를 좀 많이 내주세요.” 어떤 학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다른 학부모님은 “선생님, 숙제를 좀 적게 내주세요. 숙제 봐 주기가 힘들어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지요.

 

상충하는 민원들, 한쪽의 말만 들어주기가 모호한 상황. 그럴 때, 민원에 그대로 반응하다 보면 이리저리 헤맬 수밖에 없어요. 교사의 수업권에 관한 크고 작은 민원들. 상충하기도 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를 크게 만드는 것도 있지요. ‘활동 과제라고 표현하지 말아 주세요’처럼요.
 

여느 공무원 사회가 그렇듯, 교직 사회에서도 순응은 하나의 미덕이에요. 상관의 말에는 고분고분 따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토 달지 말고 일하는 그런 태도가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까요. 문제는 조직의 운영뿐만이 아니라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외부의 민원에도 순응한다는 데 있어요.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부드러운 말로 거절하면 될 것을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관찰하며 ‘악의 평범성’을 말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 그녀가 이런 상황-쓸데없는 민원에도 휘둘리는 상황-을 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무사유’의 전형이라고 했을 거예요. 생각 없이 누군가의 권위에 이끌려 사유하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사유하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책 ‘인간의 조건’을 통해 전한 바에 따르면 불행히도 생각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는 고민하는 힘이 필요해요. 누군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문제 제기가 타당한가?’ 정도의 물음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만약 우리가 ‘타당한가?’ 이 네 글자를 마음에 품었다면 활동 과제 때문에 제기된 민원에도 훨씬 부드럽고 지혜롭게 응대할 수 있었을 거예요. 적당히 돌려서 응대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학부모님, 활동 과제라는 단어 때문에 숙제가 많아진 것 같아 답답하셨군요. 그런데 과제라는 용어는 꼭 숙제를 뜻하지는 않아요. 활동할 내용을 표현하는 교실 용어니까요. 과제 때문에 숙제가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워지신 것은 이해하는데, 과제라는 말을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미션? 활동 내용? 활동? 뭔가 어색하지요? 과제라는 말이 숙제라는 말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세요.”

이런 말로 학부모님의 답답한 마음도 받아주면서 용어를 선택하는 교사의 수업권도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교직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사유하는 힘이 필요해요. 마음속에 물음표 하나를 가져 보세요. ‘타당한가? 그 민원은 타당한 민원인가?’ 그런 물음표 하나가 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막아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