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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요즘 너, 나 없이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지구촌은 거의 예외 없이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미국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유럽의 전통 깊은 국가들도 예외 없이 봉쇄, 격리 조치로 사람의 이동조차 허용하지 않고 지났다. 이탈리아에선 그러한 봉쇄조치에 지쳐 온 가족이 베란다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웃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발산했다. 여기엔 동시대인으로서의 측은지심과 동병상련이 묻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각자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현실을 희망으로 연결해주는 생각과 행동에 저마다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그중에서 인간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언어의 사용에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모아 보고자 한다.

 

가장 낮은 곳에 /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이는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의 도입부이다. 한 번 두 번 소리 내어 낭송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내 지치고 힘든 나를 품어주는 섬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가슴에 간직된 ‘그래도’라는 섬이다. 이 시는 삶이 나를 속이고 지치고 힘들게 해도 따뜻한 위로와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암암리에 응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섬은 혼자 떠있는 것 같지만 바다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도 그렇다. 혼자인 것 같지만 마음이 연결되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의 연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많은 오해와 갈등, 의심과 편견, 넘겨짚음으로 인해 혼자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그때 속으로 외쳐보는 이 말 ‘그래도’는 마음을 편안하게 긍정적으로 이끄는 처방이 깃들어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전신 마취 수술을 3번이나 연이어 실시하게 되었다. 처음엔 요로결석으로 엄청난 통증을 수반한 상태에서 응급실로 실려 가서 진단한 결과 꽤나 큰 돌이 등에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어 레이저로 부수어 내기가 힘들어 몸의 중요한 부분에 호스를 연결해서 이를 끄집어내는 수술로 대체되었다. 나중에 이 호스를 빼는 고통도 처음에 느낀 통증 못지않게 힘들었다. 그런 후 다음 해엔 왼쪽 어깨, 그 다음 해는 오른쪽 어깨에 석회가 굳어 생긴 돌이 엄청난 통증을 유발해 가족의 부축을 받아서 병원으로 옮겨져 돌 제거 수술을 받았다. 나중에 담당 의사를 통해 돌이 많이 생기는 특이한 체질이라는 말에 주변 사람들이 성당에 나가지 말고 절에 다니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 켠에선 ‘그래도’라는 말이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되었고, 그래도 실비보험의 혜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그래도 내 몸을 잘 알게 되어 건강관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도 인생의 가치관을 건강으로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었고, 그래도 온 가족과 이웃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도 병실에서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고,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감사와 포용력을 갖게 되었고, 그래도 나 이외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도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도 ‘사람이 우선’이라는 휴머니즘을 간직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변화는 ‘그래도’라는 아름다운 마음의 섬에서 더불어 ‘덕분에’라는 절친한 동반자를 얻게 되는 전화위복의 경험이 되었다.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일상의 모든 일에서 역경과 시련이 닥쳐와도 ‘때문에’라는 통상적인 변명을 내세우기보다는 ‘그래도’ 또는 ‘덕분에'라는 긍정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발휘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한 모든 근심에서 '그래도'를 지렛대 삼아 우리의 삶을 가꾸며 지탱해 나가길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