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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삶이 있다. ‘상처에 아파하는 삶’과 ‘상처를 껴안는 삶’이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상처 없이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에 우리에게 유일한 선택은 ‘상처를 껴안는 삶’이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왜 나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지?” “왜 나만 이래야 하지?”하고 억울해하던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인지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상처를 껴안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성장하는 삶이자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때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의해서 유발된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훗날 성숙한 삶의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됨을 고백 겸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에겐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여름방학 기간에 평소 필자를 애지중지하시며 자식처럼 보살펴주시던 담임 선생님이 서해안 해수욕장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하셨다. 이 사건은 어린 가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주면서 이별의 슬픔을 잊기에 꽤나 힘들었다. 꿈속에서도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던 그 시절, 초등학교 졸업 시까지 담임 선생님의 사랑과 기억을 잊지 못하고 마음의 우울함은 오래갔다. 그 당시는 그저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손자 사랑에 널리 소문이 날 정도였던 할머니는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작은 집으로 옮겨 기거하셨다. 날마다 장손자를 그리워하시며 지내시다 얼마 후에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손주를 보고 싶어 필자의 이름을 자주 부르시면서 눈가를 적시셨다는 말에 필자는 눈덩이가 붓도록 울면서 가슴이 저렸다. 그리곤 할머니 사진을 쳐다보며 그리움과 함께 죽음의 공포와 가난의 어둠까지 동반하여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 굴다리 밑에서 생계형 좌판을 펼치고 ‘뻥튀기 과자’ 장사를 하셨다. 기질적으로 남의 가슴에 싫은 소리 한 번 할 줄 모르시고 당신 아픈 몸을 내색하지도 않던 어머니는 필자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가을에 타계하셨다. 추석 직후에 뽀송뽀송한 이불로 바꿔주시려고 하숙집에 들리셨는데 이것이 마지막 작별이었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9시간 만에 유언 한 말씀 남기지 못하시고 떠나셨다. 잠시 만남의 인연인지 장례 후에는 하숙집 여주인의 꿈에 나타나셔서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는 간절한 호소와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기셨다는 여주인의 말을 직접 전해 듣고 죽어서까지 자식 사랑을 보여주셨던 믿기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었다. 그날 하염없이 흘린 눈물은 깊어 가는 가을의 황량함과 함께 가슴엔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어머니 타계 후에 어린 3남매를 위해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집에 들이셨다. 그러나 1년이 채 안 되어 필자에게 “학생에게 미안하고 특히 어린 동생들에게 면목이 없지만 떠나겠다.”는 짧은 선언을 마지막으로 남남이 되었다. 그 후 몇 년 안 되어 병원 치료 한 번 받지 않을 정도로 9남매 중에서 가장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형제, 자매들보다 가장 먼저 7개월의 투병 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이후 몇 년 후에는 막 60세를 넘기신 누님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중에 병문안을 갔던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동생, 나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라고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다 몇 달 후에 이승을 떠나셨다. 살면서 누군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비에 젖지 않으면서 가는 삶이 있을까마는 필자는 유독 이렇게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상처가 컸다. 특히나 각자의 죽음 이면에 간직된 애석한 사연들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 후에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장인, 숙부, 고모, 친구 등등 하나를 잊을 만하면 다시 또 하나의 죽음이 찾아와 필자 또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산다는 심리적 우울증에 걸려 허덕이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최근까지 그랬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과거의 상처에 힘들어하고 그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아파하고 심지어는 달라붙은 껌처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현실 속에서 자기연민에 빠지고 지우지 못하는 상처는 결국 아픈 곳을 덧나게 하고 더욱 아리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이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엔 특히 순진하고 여린 마음의 감성과 슬픔을 잘 극복하지 못하는 기질 때문이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순리대로 이를 껴안으면 순간의 상처가 소중한 경험이 되고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상처 속의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오랜 세월 혼자서 기억과 싸우며 가슴앓이를 해왔다.

 

상처 속에서도 굳건하게 마음을 다잡는 게 우리네 삶이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솔로몬의 지혜를 실천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종교적 힘에 의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 100세 시대에 이제 60을 맞은 여정에서 늦게나마 ‘상처 껴안기’라는 생활철학을 터득했다. 세상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하지 말고 세상이 보이는 대로 보는 법을 배우라는 깨달음이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넘기면 상처라는 기억도 순간이면서 남은 삶을 더욱 열심히 살도록 북돋워 줄 것이다. 역시 문제는 자신에게 있고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제 늦게나마 철이 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제라도 주변의 어린 학생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에 직면했을 때 또는 유사한 슬픔에 빠졌을 때 그들과 함께 정서를 공유하고 때로는 같이 아파하면서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거란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란다.” 라고 위로하면서 제발 더 힘들어하지 않도록 챙겨주는 인생의 선배이자 교육자로서 남은 삶을 이끌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