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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의 '어릴 적 내 꿈은'이란 시의 구절을 새기며 품어 왔던 제 꿈은 교사였습니다.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유일한 꿈인 교사가 되고선 저만의 격한 사랑법을 나누어 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저의 첫 발령지는 실업계 남자 고등학교였습니다. 여중, 여고를 나온 제게는 발령 후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사랑의 열정만 가지고 그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을까.’ 무척 고민되었습니다.
 

첫 담임을 맡고 나서의 가장 큰 고민은 학생들이 학교를 제시간에 등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거였습니다. 우리 반 39명 중 제시간에 등교하는 학생은 20여 명, 나머지 학생들은 1교시 후, 2교시 후, 때로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등교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등교 일자를 계산하여 유예되지 않을 만큼만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출석률을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사제지간의 먼 거리감을 없앨 수만 있다면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편안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말을 학생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약속일! 몇 명이 모일지 몰라서 20인분의 김밥을 새벽 5시부터 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앞 9시에 모인 친구는 달랑 5명. 저와 5명의 친구들이 가까운 가포 유원지로 향했습니다. 무려 20인분의 김밥을 들고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가까운 바다까지 마을 앞 흙길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처음엔 발 다친다고 투덜대던 녀석들이 장난도 치며 즐겁게 바다까지 갔습니다. 그늘을 찾아 횟집 앞 평상을 빌려 김밥을 다 먹어 치웠습니다. 아마도 저의 정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배가 불렀지만 억지로 끝까지 다 먹어준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바다에 발을 담그며 내일은 꼭 제시간에 학교를 오자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월요일! 함께 여행했던 친구 중 2명이 지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일요일을 함께 보냈던 아이들의 즐거웠던 무용담을 친구들에게 조잘대는 것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관심 없어 하던 아이들도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다음 주는 꼭 여행에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약속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 집 앞에 모인 친구는 무려 12명! 한 주 만에 성과가 컸습니다. 마찬가지 20인분의 김밥을 싸 들고서 조금 먼 통영 미륵산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멀리 갈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온 친구들의 차비까지 지불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통영은 지금의 케이블카나 루지와 같이 놀 거리가 없었던 터라 등산을 위해 미륵사 절까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중간에 가다가 앉아서 계곡에 발을 씻기도 하고, 준비해 온 김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집안 형편에 대한 고민, 이성과의 연애담, 자신을 믿어주지 않던 교사들의 뒷담화 들을 털어놓았습니다. 학교를 벗어나니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고민들을 하고 있어 기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 없이 시작했던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저는 아이들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정남이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저녁마다 손님을 불러오는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새벽 4시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니 학교에 늦을 수밖에 없음을, 표정이 어두운 교현이는 유전적 영향으로 이가 썩어 부서져 버려 부끄러워서 말도 하지 않고 잘 웃지 않았던 사실, 부제는 수도관 보수 작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느라 손등이 튼 사실을, 잘 씻지 않아 온 교실에 냄새를 풍기는 민재는 욕실이 없는 단칸방에서 몸이 아픈 어머니와 살고 있음을, 창원에서 큰 국밥집을 경영하시는 아버지께서 새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정재, 횟집을 하시다가 경영난으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걱정하는 창재까지…
 

그제서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제때 올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교현이의 손바닥으로 가린 입 사이로 삐죽이 보이는 동강 한 검은 이가 가슴을 쳤습니다. 그날 통영에서 돌아와 교현이네로 같이 갔습니다. 대문도 없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거적으로 덮어 놓은 집의 입구를 걷고 들어가니 교현이와 똑 닮은 어머님이 누워 계셨습니다. 어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누추한 곳에 오셨다며 아픈 몸으로 커피를 타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교현이처럼 이가 조각이 나고 썩어버려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셨고, 잇몸이 곪아서 얼굴의 양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열이 펄펄 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러셨는지 여쭤보았더니 일주일가량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교현이도 가끔 학교에 오면 엎드려서 온몸을 벌벌 떨곤 했는데 아마 잇몸의 염증으로 오한이 들어서 그랬음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일요일이라 방법이 없어서 일단 집에 있는 진통제를 드시게 하고 교현이네를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여운 교현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월요일 교무부장님께 말씀을 드렸고, 운영위원장님 지인의 도움으로 교현이와 교현이 어머님의 이 치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삶이 힘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현실과 맞지 않는 잔소리를 해대던 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자라온 내가 아이들의 어려움을 얼마나 이해하겠냐며 자책도 하였습니다.
 

우리 반 정남이는 새벽까지 아르바이트하는 아이였습니다. 새벽에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나면 학교에 오는 시간은 항상 11시가 넘었습니다. 비록 점심을 먹으러 학교에 올지라도 결석하지 않고 늦더라도 꼬박꼬박 꼭 학교에 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어느 날 정남이가 결석을 하였습니다. 전화 연락도 되지 않고, 아버지와도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정남이는 술에 취해 우리 집 대문 앞에 엎드려 누워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셔서 같이 정남이를 부축하여 우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재웠습니다. 정남이 아버지는 구치소에 계시고 살고 있던 단칸방은 월세를 내지 않아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그다음 날 알게 되었습니다.

 

집도 없이 떠돌던 아이가 문득 담임 생각이 났고, 맨정신에 오기가 미안하여 술을 마셨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정남이는 우리 집에서 한 달가량을 생활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락도 없이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한 달여 뒤에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중국집 배달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는 정남이의 소식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소식을 주지 않는 정남이가 저는 참 섭섭합니다. 그러나 정남이는 고등학교 졸업을 시키지 못한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제게는 참 아픈 손가락입니다. 그때 내가 더 적극적으로 정남이를 찾아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야 하는 죄책감으로 지금도 문득문득 정남이 생각으로 힘이 듭니다.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버린 정남이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나를 기대고 싶었던 좋은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 원망스러운 담임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보고 싶습니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에 또박또박 정확하던 발음을 가진 목소리 좋은 정남이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의 첫사랑들을 꺼내어 바라봅니다.
서툴고 열정만 가득했던 초짜 담임으로 일방적인 사랑으로 너희들을 꼼짝 못 하고 안고서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이해한다고 말만 하고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아파했었는지… 나의 첫사랑들을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교직 생활의 첫 발걸음을 너희들과 함께하여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진짜 고맙다. 나의 첫사랑들아!”

 

지금도 어쩌면 저는 저의 격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향해 날갯짓하며 떠오르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저는 열심히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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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저만의 격한 사랑법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

 

학창 시절 진로 희망이 단 한 번도 변치 않던 교사의 길로 들어선 지 22여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나 없인 학교가 잘 돌아가지 않아.’라는 되지도 않는 신념을 품고 행복한 출근길을 나섭니다. 담임과 연구부장을 병행하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교단 수기를 쓰기 위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의 첫사랑들을 꺼내어 바라보았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제자들의 까까머리 시절을 떠올리며, 서툴고 열정만 가득했던 초짜 담임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 건 아닌지, 어려운 형편을 진정 가슴으로 이해했었는지, 아이들을 향해 내 생각대로만 일방적이고 격한 사랑 표현을 했었는지… 추억 속에 일들을 꺼내어 보며 반성과 후회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격한 사랑을 쏟았던 저의 첫사랑이었기에 지금도 잊지 못하고 가슴 속에 기억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직 생활의 첫걸음! 그 아이들로 인해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또, 달려온 날보다 달려갈 날이 더 적게 남은 지금도 저는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지금처럼 행복한 교직 생활에 지치지 않는 터보 엔진을 달아 준 교단 수기 수상 소식은 아이들을 향한 저의 사랑이 더 충만해졌습니다. 저만의 격한 사랑법으로 저는 교직 생활의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언제나 든든한 나의 멋진 동반자 남편 성창엽 선생님, 그리고 아빠 엄마의 뒤를 이어 국어 교사를 꿈꾸는 우리 큰 딸, 야무지고 똑똑한 막내딸, 부모님의 대를 이어 멋진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멋진 시어머니! 관동중학교 교장‧교감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 모두 모두 교단 수기 수상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