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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한 영향력이 있는 학교 관리자이고 싶다

“교사가 된 것은 잘한 것인가?” 이는 세상을 살면서 한동안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솔직히 순간순간마다 한때 우리나라 경영계의 구루(guru)가 말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에 집착을 한 적이 있었다. 교사로서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나이의 아이들과의 지적, 인적 교류를 나누면서 생활하는 것에 크게 회의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갑갑한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저 멀리 넓은 미지의 세상에 도전하고 싶은 눈길을 보내며 마음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어느 순간 이후, 급격히 추락한 교권과 학교 현장에서의 실망스러운 사건, 사고들을 접할 시에는 더욱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페르소나라는 직업의 가면을 쓰고 무대 위의 배우가 되어 열정적으로 연기를 해왔다. 그러다보니 다시는 연출하기 힘든 젊은 시절의 열정과 헌신을 뒤로 한 채 어느덧 교직에서 36년이나 되었다. 여기엔 평생소원으로 자식을 교육자로 만들기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으로 뒷바라지 하시며 길지 않은 삶을 사신 두 분의 부모님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시인의 마음처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성숙함으로 스스로 되새기는 말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육자이자 관리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간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교직에서 버텨오도록 만든 순간순간 자랑스러운 기억이 있다. 젊어서는 인재를 가르치는 재미와 사명감을 찾아, 그 속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자 했다. 그래서 인재들이 있다는 학교는 자원하여 찾아갔다. 단적인 사례로 한때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에 수학⋅과학 분야의 영재들의 전당인 과학고에서의 근무를 자원하였다. 개교 3년 차가 되던 학교를 재직하던 교장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지원을 했다. 일반고에서 고3 담임교사를 역임하면서 입시의 전문가로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 어려움이 없이 과학고에서 근무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출퇴근 4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도서 지역에서 인재교육에 큰 보람과 만족을 얻으며 활력의 중년기를 보냈다. 당시 인연을 맺은 제자들은 필자를 “20세기 최후의 로맨티스트”라 칭하며 따뜻한 사제 관계를 맺기도 했다. 당시의 제자 중에는 치과대학을 지망하면서 선생님의 치아 관리를 평생 해드리겠습니다 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던 L이 있었다. 또 다른 학생 J는 학문에 열중하여 청출어람을 실천하는 큰 과학자가 되겠습니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들을 포함한 많은 과학고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이 사회의 곳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인재로 당당하게 살고 있다.

 

그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필자가 교육에 쏟은 열정과 인간적인 영향력이 작용하여 나름대로 성공의 초석을 다지는데 도움을 받은 제자들이 오늘의 필자에게 든든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 M.S.사의 이사로 있는 제자 H가 필자를 방문하여 자신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은사임을 고백하며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거의 30년 만의 만남이었고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고교 1학년 때에 필자가 대기업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기회를 제공하여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잠재력이 높은 인재였다. 현재 중견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열정적으로 제자를 키우는 Y는 “선생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제가 받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도 밝게 성장한 인재였다. 담임교사로 인연을 맺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장학생 선발에 힘이 되어 준 기억을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제자이다. 명문대의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언론사에 다니는 K, 그는 학창시절 밤늦게까지 에세이 쓰기를 함께 하며 수시전형을 대비한 인재였다. 대학 재학 시절 학과에서 1등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방송사에서 근무하던 제자로 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면서 고3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최근엔 저녁 무렵이면 학교의 공터를 이용하여 열심히 텃밭을 가꾸던 S, 그는 필자가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단다. 너의 발자국 소리도 네가 가꾸는 농작물에 전해질 것이다. 며 격려했을 때 아, 참 좋은 말씀이네요. 팻말을 만들어 걸어 놓겠습니다. 저는 중국의 화훼산업에 도전장을 내려고 합니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히던 학생이었다. 지금은 농과계열에 진학하여 열심히 자신의 꿈을 가꾸고 있으며 가끔씩 소식을 전해 온다. 올해 고3에 재학 중인 G, 그는 1년 전에 자신에게 삶의 모델로 간직하는 큰 바위 얼굴 이란 누구인가, 라는 설문에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면학실에서 공부할 때마다 슬며시 들어오시어 공부하는 학생들 어깨를 주물러 주시며 격려해 주시던 교감 선생님입니다. 늘 누군가를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필자가 자신의 큰 바위 얼굴 임을 고백할 때는 갑자기 온 세상이 환해지며 보람을 느꼈다. 이렇게 작은 행동 하나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주춧돌이 되기도 하여 이를 고맙게 간직하는 스승으로 남게 된 것은 그저 교육하는 사람이기에 얻은 평생의 보람과 영광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제 고등학교 교감이 되어 학교 관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으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여정에 충실하고 있다. 여기엔 언제나 ‘지성무식(至誠無息)’ 즉, ‘지극히 성실한 사람은 쉼이 없다’는 공자 성인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젠 관리자로서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지치고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이나 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작은 관심과 격려하는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자 한다. 여기엔 항상 그늘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사람이 우선인 ‘사람 사는 세상’을 지향하기 위한 것이며 “인간은 최고의 목적으로 대우해야지 결코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인간 존중 사상을 정언명령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금 다짐해 본다. 사람의 마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관리자가 되어 교직에서의 남은 기간을 필자 주변의 모든 학생과 선생님에게 든든한 조력자(facilitator)로 남아 이 나라 교육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