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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쉬는 시간] 죄송하지 않을 용기

“어휴~ 학부모님이랑 전화하다가 진땀 뺐어.”
“왜요?”
“민우(가명) 목이 긁혀서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 그래서 ‘죄송하다’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몰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말로 티격태격하다가 한 아이가 민우의 목에 상처를 낸 것이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통에 걸어 다니라고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지요. 따지고 보면 선생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었어요. 아이들끼리 싸운 거니까요. 아이들끼리의 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민원으로 교실에 걸려오는 전화에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종종 있어요.

 

“아니, 돌봄교실이 파업하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돌봄교실 파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학부모님의 격앙된 말투에 저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죄송할 일은 아니었어요. 돌봄교실 파업. 교사들이 파업한 게 아니거든요. 파업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욕을 먹는 것은 교사여야 할까요? 문제는 돌봄 파업도 그렇고, 급식 파업도 그렇고 파업은 다른 분들이 하는데 교사들 욕을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종종(?) 있다는 것. 그런 일로 전화가 올 때마다 격앙된 목소리를 들어드리기는 하는데, 죄송하다는 말씀까지 전해 드리지는 않아요. 
 

복잡하거나 상대하기 싫은 민원이 들어올 때, ‘죄송하다’라는 말로 무마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죄송해야 할 일이 ‘1도 없는’ 경우에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저자세를 보이고 싶을 때도 있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얼마나 많은 민원에 시달렸으면 자동으로 그런 자세가 나오는 걸까요? 그럴 때마다 교직은 정말 감정노동 직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요. ‘학교폭력’으로 화를 내면서 소리 높이는 민원인을 볼 때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무마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멱살도 좀 잡혀주고, 폭언도 좀 들어주고 사안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해요. 너무 시달려서 잠을 좀 편하게 자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우리 책임이 아닌 일에도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 일은 부당한 일이에요. 저자세로 나가면 민원을 빨리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가치를 땅바닥에 내려놓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길거리에 걷어차이는 돌처럼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서 결국에는 차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만약,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해요. 하지만 잘못이 없는 일에는 속으로 ‘어쩌라고?’를 외치며 당당함을 유지하는 태도도 필요하지요.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으로 비롯된 민원성 항의. 잘못된 감정의 화살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 혹시, 누군가 화를 풀려고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온다면, ‘죄송하다’라는 말은 살짝 접어두세요. 우리도 마음을 지키며 당당하게 교직 생활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송하지 않을 용기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