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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안중근과 하얼빈

제 78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대지를 태울듯한 태양의 열기로 가득한 날, 유배문학관 벽면에 걸린 대형 태극기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항상 보는 태극기지만 지난 밤 세 번째로 읽은 하얼빈의 ‘코레아 후라’란 말 때문에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 저 태극기를 되찾으려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이 애써왔던가?

 

하얼빈 소설은 지난해 10월 부산 서면의 고층 건물에서 보호자로서 안과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8시간 동안 완독했다. 그 후 고개를 들었을 때 가을바람 이는 파란 하늘에 31살로 숨져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소설 속 안중근 의사는 영웅도 아니었다. 젊음을 지고 독립을 갈망하는 대한국인의 한 사람이었다

 

김훈 작가는 이 소설을 50년 전부터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사와 답사를 거쳐서 풀어낸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일들을 짧은 톤으로 꾸미지 않은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후의 일상과 여순감옥에서 사형당하기까지의 내용과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절제된 언어로 비장함이나 불같은 분노마저도 누르고 오로지 기록된 사실만을 근거로 서사를 꾸려간다.

 

작가는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안중근, 우덕순의 행적과 내면을 통하여 읽는 이에게 던지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위대한 영웅의 서사시도 아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한 가정의 가장이요, 나라를 빼앗겨 독립의 빛을 좇는 젊은 안중근의 내면을 풀어놓은 것이었다.

 

하얼빈을 읽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정의란 기준의 모호성과 가진 자의 카멜레온 같은 처세술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여순감옥을 통하여 신이 인간을 만드셨다고 하는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잔인한 악마 근성의 한계점이 어디까지일까였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 편에서 기술 되어졌다. 정의의 의미도 언제나 힘 있는 자의 것이었다. 그 예로 전쟁을 보면 된다. 개인이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더라고 승리하면 정당화된다.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다툼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북·중·러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를 보면 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힘의 원리는 유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유엔은 미국이 주도하는 합법화된 힘 있는 나라의 깡패집단이 모여 폭력과 전쟁을 당연하게 만드는 기구라고 전 정세영 통일부 장관이 ‘통찰’이라는 책에서 피력하고 있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두 번 방문한 기억이 있다. 처음 찾을 때는 장마가 한창인 2011년 7월이었다. 여순항이 내려다뵈는 203고지 기념탑을 보며 노기마레스키가 이끄는 6만의 일본군 희생이 피로 흘러내렸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이토가 대련을 방문하였을 때 환영식에 참석한 일본 여성들 사이에 203머리 스타일이 유행했다는 부분을 보며 허탈함이 몰아쳤다. 그리고 여순감옥을 둘러보며 일제의 잔악성에 몸부림쳤던 기억을 되감았다. 숨을 쉴 수 없는 밀폐 공포감과 어둠, 눅눅한 공기와 곰팡내, 죽음의 손길과 신음이 감방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독방, 암방, 고문 도구를 보면서 지능을 가진 인간이기에 사람의 약점을 더 비집고 들어가 고통을 주는 영장류의 악마 근성에 소름이 절여왔다. 마치 영화 밀정에서 망치로 발가락을 깨고 인두로 얼굴을 지지는 일본 순사의 그 모습이었다.

 

여순감옥에서 제일 충격적인 장소는 아쉬움이 이슬로 떨어진 사형장이었다. 부슬비를 맞으며 사형장을 보기 위해 일행과 함께 걸음을 옮길 때 얼굴은 전부 굳어있었다. 소설에서 안중근 의사는 용수 대신 하얀 종이 고깔이 씌워져 독방에서 사형장으로 옮겨졌다했다. 안 의사는 어머니 조마리아가 지어준 하얀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고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를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상념 속에 걸음을 옮겼을까 생각하니 온몸이 감전된 것 같았다.

 

사형장 내부에는 3개의 도르래에 교수형 장치가 되어 있고 마룻바닥을 네모로 구멍이 나 있다. 그 아래는 둥근 통이 있는데 사형집행 때 나오는 배설물 처리와 관 대용이라 했다. 일제는 그 작은 통에 시신을 넣으며 무릎이 굳어져 꺾이지 않으면 염산으로 녹여서 넣었다고 한다. 사형장을 나오며 자신이 죽으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한 안중근 의사 유언을 떠올렸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 죽음의 후폭풍을 두려워하여 시체를 인도하지 않고 감옥 공동묘지 야산에 암매장하였다. 그 장소로 추정되는 곳엔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유해를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두 번째 방문은 2018년 8월의 뙤약볕 아래였다. 여순시의 팔월 한낮은 열기와 발해만의 습기로 매미 소리도 지치게 했다. 빙 둘러쳐진 붉은 벽돌담 속에 숨져간 독립투사의 원혼을 달래려면 씻김굿이라도 하여 이 응어리가 내려갈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벌겋게 단 무쇠를 밟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안중근 의사 추념관을 찾았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의사의 흉상을 제대로 볼 면목이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 130명의 일행은 고개를 숙이고 준비한 국화를 한 송이씩 드렸다.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그 누구도 힘든 표정은 없었다. 다시 둘러보는 여순감옥은 또 분노를 쥐어짰다. 여순감옥, 선양의 9.18 기념관, 서대문형무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가면 특유의 냄새와 전시된 인간의 잔악성은 신이 피조물인 인간을 잘못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하얼빈에서 여순감옥에 오기까지 안 의사의 여정을 돌아본다. 10월 26일 의거 후 체포되어 11월 1일 하얼빈에서 우덕순, 정대호와 같이 대련으로 이송된다. 그리고 11월 3일 오후 대련에 도착하여 백옥산 아래 여순감옥에 수감된다. 이때 일본은 대련에서 여순으로 안중근 의사 일행을 이송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마차를 사용한다. 문명화된 나라의 법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미명하에 세계를 속이는 모습이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과 관련 조사에서 마나베의 질문에 대한 우덕순의 답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는 다만 일개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해철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나라 뺏긴 설움이 우리를 복받치게 만들고 잡아 일으켜서 괭이 던지고 소총 잡게 만들었다 이 말이야."

 

우덕순 지사의 우직한 용기를 보면서 대한제국 말기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알고 도장으로 국권을 빼앗는다. 그리고 돈을 가진 자들은 안중근처럼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대문 안에 들이지 않는다. 오직 높은 담장 안에서 세계정세에는 관심 없이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내용을 보면서 하층민 우덕순의 의지는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있었던 옛 관동도독부를 찾았던 기억을 소설에 맞춰 본다. 일본 군부의 사주를 받은 관동도독부는 어떻게든 안중근을 무지한 자의 충동적인 폭거로 모양새를 맞추어 간다. 일본 군부는 의사의 의거 직후 재판관에게 ‘판결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군부의 총칼’이라고 했다. 안중근의 거사는 세상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안 의사는 조선독립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포로로서의 군사재판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차피 판관이나 검사나 변호사 모두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한통속인 판에 저들의 논고에 조목조목 반응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재판이라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힘이라는 것을 앞세워 교수형을 단정하고 시작한 엉터리 재판이었다. 안 의사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6번의 재판으로 사형을 언도받는다.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법의 신도 총칼 앞에서는 무력함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정신과 혼이다. 그 정신과 철학이 다시 고국으로 와서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정쟁을 멈추고 난세를 헤쳐나가는 우리나라가 되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인한 사건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한국 황실의 친일적 행동과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는 빌렘 신부, 종교적 이유로 죄인으로 판단한 뮈텔 주교였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감정만으로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다. 그 정당성은 치열한 고민과 다각도의 시각 수반이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죽이는 날까지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정의에 대한 정의는 시대상을 고민한 갈등의 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 몇 줄로 정리된 남은 사람들의 생애가 비참함을 더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안중근 의사의 마음은 안타까울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서술한다면 또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여인 김아려의 삶과 딸 현생, 타향에서 죽은 아들 분도의 삶은 가슴 아프다. 남편, 아버지라는 기둥의 상실은 남은 가족을 그대로 세파에 휩싸이게 한다. 이런 상황을 안 의사도 염려했을 것이다.

 

일본은 남겨진 안 의사의 가족을 가만두지 않았다. 30년 동안 회유와 협박을 하였으며 안중근 의사를 흉악한 살인범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는 안중근에 대해 범죄자라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밝혀왔다고 말했다. 또한 세고 히로시게 전 일본 관방부 부장관은 우리는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발언해 비판 받았다. 이런 지금을 보며 우리는 2023년 일본인들이 안중근 의사를 왜곡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맞서 더는 역사가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빛으로 다가왔다 빛으로 가버린 안중근 의사의 삶은 정말 고결하며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생명보다 더 귀한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친 그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하였음을 흔들어 깨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명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렇게 독립의 역사를 읽고 누리며 독후감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빛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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