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서 승진이나 전직할 때 친한 지인으로부터 난(蘭) 화분을 축하 선물로 받았다. 대개의 지인들은 축하전화를 한다. 또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축전을보내지만 가깝다고 생각하거나 교류가 잦았던 지인, 인간적으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화분을 보낸다. 고마운 분들이다. 축하를 받으면 기쁨이 배가 된다. 내가 축하 화분을 받았던 때는 언제인가?교사에서 장학사 발령 받았을 때, 장학사에서 교감 전직 발령 받았을 때, 교감에서 교장 승진 받았을 때, 교장에서 장학관 승진했을 때 등이다. 이 가운데 축전과 축하화분을 가장 많이 받았던 때는 교직의 꽃이라 일컫는교장 승진 때이다. 기록을 좋아하는 필자는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 기억으로는 축전 100여 통, 축하 난 화분 40 여 개를 받았다. 2007년 9월, 첫 학교 교장실 한 쪽벽면이 화분으로 가득 찼다. 3단 화분 받침이 12줄인데 초록으로 가득하다. 마치 모내기를 마친논을 보는 듯하다. 교장실난향이 향기롭다. 첫 학교에서 열정을 바치다보니 4년이 흘렀다. 부임 이듬해부터 3년간 받은 학교표창이 무려 19개다. 필자 자랑이 아니다.구성원들이 능동적, 자발적으로 교육 열정을 바친 결과다. 덕분에 한국교육대상도 받았다. 화
2023-03-06 17:37신입생 여러분, 어서 와요! 중학교는 처음이지요? 오늘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온 마음을 다해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3년 동안 마치 전쟁을 치르듯 힘겹게 학교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재기발랄한 성장기의 멋과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움을 간직한 채 여러분의 중학교 진학을 한동안 고민하고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여러분은 전통의 명문 산곡남중과 모교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오늘은 축복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산곡남중은 1987년 개교한 이래 35회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산곡남중의 모든 교직원들은 자신들의 진로와 진학의 선택에 따라 당당히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을 떠나보내면서 진심으로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긍지와 보람을 느꼈습니다. 왜냐면 산곡남중 졸업생들은 앞으로 상급학교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해 나갈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첫째, 산곡남중은 모든 학생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생활하고 진로·진학을 지도하는 학교입니
2023-03-02 14:13
우수를 며칠 앞두고 둘째 아이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거리가 거리인 만큼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한다. 하늘은 짙게 흐려 내려앉고 있지만 봄기운이 느껴진다. 들녘도 무채색이 옅어지며 온화하게 다가온다. 벌써 냉이도 나오고 쑥도 돋아나고 있다. 두 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지난 4년간을 떠 올려본다. 새내기의 기쁨을 가졌던 1학년이 지나자 코로나19 펜데믹으로 2, 3학년은 재택 수업을 했다. 흔히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을 절반이나 빼앗기고, 4학년은 교육실습과 임용시험 준비로 고3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고,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다고 했다. 그 4년간의 흔들림의 여정을 오늘 이 시간으로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흔들림을 시작하는 시점에 서 있다. 흐리고 찬 바람이 부는 졸업식장은 축하객과 포토존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로 혼잡하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학사복과 학사모를 쓴 채 찬바람의 끝이 매서운데 교정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젊음의 풋풋함과 생
2023-02-20 15:56오랜만에 ‘미운 오리’가 만났다. 한 학교에 근무한 인연으로 만들어져 무려 29년을 이어 온 모임이다. 7명 완전체로 모이는 줄 알았는데 미경이가 빠진 걸 가서야 알았다. 3주 후로 잡힌 자녀의 첫 혼사 때문이다. 행여 혼주석에 앉지 못할까 봐 미리부터 사람 많은 데는 피해야 하는 것도 코로나 시대의 결혼 예법이다. 방학에나 숙박 여행을 했는데 학기 중에 약속을 정한 건 처음이다. 금요일 저녁에 만나 저녁을 먹고 가까운 휴양림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차를 마시고서는 또 한 명이 일어선다.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서 의아했다. 언니는 사는 곳은 광주, 근무지는 전남 동부 지역이라서 하루에 네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다. 새벽 6시 20분에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주암 휴게소에 7시 15분에 도착한다. 순천과 광양 방면으로 근무지에 따라 다시 차를 바꿔 타면 8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한다. 광주에서 순천이나 광양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위해 마련된 전세 버스인 셈이다. 퇴근 시간에는 도로 정체로 그보다 더 걸린다. 그러기를 6년째 하고 있다. 한때 교환 교사로 광주의 초등학교에서도 4년을 근무했다. 통근 시간은 줄었으나 아는 이 없고 젊은 교사…
2023-02-08 13:37
겨울방학엔 사랑의 마시멜로를 화복동문(禍福同門) 한비자(韓非子)에는 불행과 행복이 같은 문을 사용한다는 '화복동문(禍福同門)'의 글이 있습니다. 밤과 낮이 순환되듯, 삶과 죽음도 한 몸의 다른 모습인 것처럼,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행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인심은 너나없이 행복에 몰입합니다. 100% 행복도 없고 100% 불행도 없습니다. 99% 행복을 이루고도 1%의 불행만을 바라보며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여 불행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이고 행복임을 간과하고 사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 아닌가 합니다. 단 1회만 살 수 있으니 시간을 가진 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의 축복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문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어떤 권력과 금력으로도 명예로도 살 수 없는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매 순간 깨닫는 사람이라면 굳이 행복이라는 신기루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100% 순도의 행복을 누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고자 집착하는 데서 불행의 그림자는 자란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되니, 비움의 철학이 뜨는 것입니다.가족의…
2023-01-25 19:36
겨울 열차역 플랫폼의 바람은 너무 차다. 햇빛과 달빛, 기다림과 이별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 달려온 바람은 레일 위를 차갑게 안겨 오고 빠져나간다. 둘째 아이가 도회에서 유학하다 보니 마땅한 버스 편이 없어 집을 찾을 때면 인근 도시의 열차역을 이용한다. 올 때 승용차로 데려오고 갈 때 바래다준다. 종종 있는 이 일이 귀찮을 것 같지만 아이를 만난다는 기쁨에 오히려 반가움과 아쉬움이 넘쳐난다. 플랫폼에서 열차 도착을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하니 노란 선 안쪽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헤어질 때 승차를 알리는 방송에 따라 아이는 ‘안녕히 계세요.’ 메아리만 남긴다. 휑하니 멀어져 사라지는 열차의 후미등을 바라보면 가슴이 멍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만날 텐데 무슨 걱정이냐며 가슴을 추스른다. 부모에게 자식은 성장해도 언제나 보살핌의 대상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표현처럼 모든 일에 힘과 보탬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누가 그랬다. 자식은 바람(風)이라고.내 몸 빌어 이 세상에 나온 한 줄기 꽃바람이라고. 부모는 자식이라는 귀한 알맹이 하나 이 세상에 내보낸 바로 그 순
2023-01-16 13:37
나는 퇴직 전 여러 해 동안1학년 담임을 했다.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은 1학년 아이들은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게 하는 순간들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가장 힘들고 마음을 졸였던일은 안전사고 예방이었다. 무엇보다 오전 내내 화장실을 거의 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특히 3월이 제일 힘들었다. 한 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1학년 입학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문제였다. 학기 초에는 직원협의회가 잦았는데 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직원회의로 1분만 자리를 비워도 어느 사이 피아노 위로 올라가 뛰는 아이, 친구와 싸우는 아이, 복도를 달리다 다치는 아이가 발생하는 게 1학년 아이들의 특징이었으니,학과 공부는 그 다음이었다. 내 반 아이가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아이들끼리 놓아두는 일은 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학생 수가 15명이 넘으면 더욱 위험했다. 20명이 넘으면 초비상이 걸릴 정도로 예민했다. 그러니 20명을 데리고 운동장에 나가서 즐거운 생활을 공부하는 날은 목이 쉬곤 했다. 병아리들처럼 금방 뿔뿔이 흩어져서 뛰고 숨어버리는 3월에는 지쳐서 혼절하여 응급실까지 간 적도 있었다. 집에서는 한 아…
2023-01-12 19:29볼까 말까 망설였다. 토요일만 되었어도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필 일요일이다. 게다가 새벽에. 한 주일의 첫날부터 피곤이 쌓이면 일주일 내내 회복할 길이 없다.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축구 경기를 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카페를 마감하고 밤 늦게 집에 온 큰 딸과 남편, 셋이서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았다. 전년도 우승팀인 프랑스와남미 강호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는다. 프랑스는 이제 스물셋의 음바페가 최전방 공격수다.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잇는 걸출한 영웅 메시가 있다. 메시는 매년 세계에서 한 해 최고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서 수여하는 상인 발롱도르 7회 수상, 유럽 챔피언스 리그 4회, 라리가 10회 우승 등 이 시대 최고의 축구 선수이다. 그는 22명이 뛰는 축구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키가 170cm가 채 안 된다. 그보다 20cm 이상 큰 선수들이 포진한 경기장에서 가장 작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한 운동장에서 뛰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땅꼬마로 보이는 그가 살아남은 것만도 놀라운데, 한동안은 깨지기 어려운 실적까지 쌓았으니 메시 찬가는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질 듯하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역대 최초
2023-01-12 13:59
1월 5일종업식 겸 졸업식이다. 비가 오려는지 미세먼지인지 아침부터 하늘이 부옇다. 몇 년 전부터 2월 등교일을 최소화하더니 이제는 1월에 모든 교육과정을 마친 학교가 많아졌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간단하게 했는데 그래도 올해는 학부모님도 초대하고 후배 배웅받으며 강당에서 식을 치르게 돼 다행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부산하다. 재학생은 방학이라 들뜨고, 졸업생은 학교를 떠나니 시원섭섭할 것이다. 교실 앞을 지나는 학생에게 “졸업인데 마음이 어때?” 물으니 “초등학교 더 다니고 싶어요” “많이 서운해요”라고 답한다. 그러기도 할 것이다. 담임 선생님들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데 그걸 모르면 안 되지. 며칠 전 1반 친구들이 독서 수업을 했던 내게도 롤링 페이퍼를 써 가져왔다. 수업 시간 까불고 내 속을 뒤집어 놓은 아이도 본인이 그런 줄은 아는 모양이다. 속은 다 있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까짓 문장 하나가 뭐라고 가슴 뭉클하며 눈시울까지 적시는지 선생이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일이다. 아홉 시가 가까워 강당으로 갔다. 정면에 걸린 축하 플래카드, 화환, 꽃다발 등 비로소 졸업식장답다. 5학년 학생…
2023-01-09 13:38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연필과 샤프심 닳는 소리와 간간이 종이 뒤집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이 셋 챙기느라 출근 시간이 늦어 날마다 불안했는데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1995년 6학년을 담임했다. 순천에 처음으로 분양한 아파트에 당첨되어 이사했고, 집 가까운 학교로 옮겼다. 아홉 개 반으로 잘사는 사람이 많았고 학부모 교육열 또한 높았다. 매달 월말고사를 봤고, 학생은 물론 선생님과 학부모도 시험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들도 시험공부에 열을 올렸고 문제 한두 개 맞고 틀리고에 민감했다. 심지어 집으로 전화해 자기 아이가 몇 등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알려 주지 않아도 몇 반, 누가, 몇 점으로 전교 일등을 했는지 벌써 소문이 났다. 점수가 낮은 반은 교장이 따로 담임을 불러 꾸중하기도 했다. 공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려면 할 수 없이 애들을 들들 볶는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문제였다. 6학년 담임은 중학교 반별 배치 고사 성적까지 신경 써야 했다. 시험 날짜와 범위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매일 복사물을 풀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아이들도 지겨웠겠지만 선생님도 입에 침이 마른다. 시험이 끝나면 아홉 명 선생님이 교실에 모여 한 과목씩 채점
2023-01-03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