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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핀란드> ‘몰입식’ 영어? 모르는 소리…

영어 교육 잘하는 나라, 그 오해와 진실

핀란드 사람들은 누구나 영어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 다녀온 사람들은 핀란드인이 모두 영어에 능통하고, 3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핀란드 친구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잘하는 사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했다면 대체로 일정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이 영어를 외국어로만 배우면서 원어민 과외 교사도,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없는 핀란드인들이 영어를 비교적 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마다 영어 원어민 교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핀란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우리도 그러한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연간 7조원에 달하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3세부터 영어 학습을 시작해서 끊임없이 영어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과 사교육비의 부담으로 고통받는 학부모도 구제할 수 있다.

핀란드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국내에 다양하게 소개돼 왔다. 맞는 내용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들이다.

오해
√ 영어만으로 수업 진행
√ 더빙 안 한 외화 활용
√ 초등1년부터 영어교육

가장 많이 알려진 얘기는 학교에서 영어 교과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라는 ‘몰입식 영어 교육’이다. 그러나 핀란드 교사들이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실제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핀란드어를 사용하면서 필요할 때만 영어를 사용한다. 오히려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것이 학생들의 확실한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또 영어로 된 외화를 핀란드어로 더빙하지 않고 그대로 방영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수많은 외화를 더빙하지 않고 내보내는 우리 학생들은 왜 여전히 영어에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동남아에서도 더빙하지 않은 뉴스, 영화, 방송을 수두룩하게 내보는데 그들은 왜 핀란드만큼 영어를 못할까? 더빙하지 않은 영화의 도움으로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억지다. 실제로도 핀란드에서는 더빙하지 않은 영화는 영어 학습 교재라기보다는 오히려 핀란드어를 빨리 읽는데 도움이 되는 교재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만 그런 영화가 영어 학습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초등 1학년 때부터 조기에 영어를 배우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핀란드 학생들은 사실 우리의 공교육과 동일하게 3학년이 되면 영어 학습을 시작한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온갖 이유를 붙여서 핀란드 영어 교육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본질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포장된 이야기로 우리 영어 교육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
√ 철저한 모국어 교육
√ 교육의 중심은 쓰기
√ 교사의 수업 전문성

핀란드인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학교의 ‘효율적인’ 영어 교육에 있다. 핀란드는 모국어 교육을 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게 시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글자를 가르치지 않아 아이들이 간단한 책도 읽을 수 없지만, 일단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1학년부터 일주일에 11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모국어 교육에 배정한다. 핀란드어 작문, 문법 등 종합적인 교육을 기초부터 확실히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배운 모국어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모국어에서 경험한 언어적인 감각이 핀란드 사람들의 외국어 학습에 도움을 준다.

핀란드인은 외국어를 학습할 때 모국어의 현상과 비교해 파악할 수 있는 기초가 돼 있다. 그래서 핀란드의 영어 교육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사례들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원어민 교사도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핀란드어를 모르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방해가 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원어민 교사는 아이들에게 문화적인 종속감과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심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요즘 핀란드 교사들은 문어에서 구어로 영어교육의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기존에 쓰기의 비중이 90%였다면 그 비중을 줄여 70~80%로 낮췄다는 의미다. 즉 전통적인 영어 교육은 쓰기를 중심으로 한 어휘와 문법 교육이었고, 현재 핀란드 영어 교육의 경쟁력은 쓰기 교육에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교실 영어 수업 현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 쪽에서는 발음이 부족한 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발음을 연습하고 있다. 교사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각자 그림을 보고 생각한 후 문장을 쓰게 한다. 그 사이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내준 어휘와 작문 숙제를 점검한다. 아이들이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그룹으로 나뉘어 각자가 쓴 문장을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협력수업을 한다. 이후 각 그룹의 이야기를 결합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한다. 학생들은 최종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로 발표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수업의 중심은 아이들이 작성한 작문이다. 쓰기를 기반으로 어휘, 문법, 회화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다른 비결은 없다. 굳이 더 꼽자면 핀란드 교사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고, 할 수 있는가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뭔가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쉬운 일 같지만 교사가 한 시간의 수업을 철저하게 기획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그런 수업 준비가 당연한 임무라고 여긴다. 핀란드에서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교사가 아니다.

이런 수업을 받으면 영어 교육은 일주일에 2시간 받는 학교 영어 수업이 전부라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6시간 동안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영어 능력을 갖추게 된다.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와 수업 방식을 수입할 수는 없지만 우리와 유사한 환경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핀란드의 사례는 많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우리도 영어 학습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영어교육 정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현 가능한 학교 영어 교육 정책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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