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매리설산의 마방엄마

찬바람이 분다. 가을 산을 물들였던 단풍이 진지 오래다. 야트막한 산자락엔 아직 지지 않은 참나무 가족의 단풍이 울긋불긋 가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앙상한 담쟁이 덩굴 너머 따스함이 묻어나는 시골집 마당에 아낙네들이 모여 겨울 채비 김장하기가 그리움을 더한다.

김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고춧가루와 어머니들의 수고이다. 여름 지나 가을볕에 갈무리하여 보관한 태양초를 닦기 시작했다. 자연의 선물을 되새기며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개 한 개 닦자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끝이 났다. 닦여가는 고추를 보며 밀어 올리는 시간이 부모란 이런 마음이었구나 자식으로서 받기에 너무 익숙한 마음에 염치없음을 자책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쉰을 바라보며 촌에서 사는 떠꺼머리 처남이 그동안 텃밭에서 가꾼 배추와 무로 김장하여 쌀까지 얹어 보냈다고 한다. 혼자 살며 무슨 궁상맞은 짓을 했느냐며 언성을 높여도 그저 웃기만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다. 자신이 김장하여 형제들에게 보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입고 먹을 것은 대충해도 보내는 것은 제일 좋은 것을 그것도 모자라면 돈 주고 사서 장만하여 보내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궂은 것 시든 것은 자신이 먹고 제일 좋은 것은 자식을 위한다는 그 마음이 부모 된 지금 깊숙이 파고든다. 하지만 자식은 모른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며칠 전 방송된 중국 윈난성 매리설산 자락의 위뻥 마을에 노새 여덟 마리로 마방 일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서른다섯 살 이쉬취리의 삶이 생각난다. 그녀가 사는 마을은 해발 삼천일백 미터의 오지로 위뻥은 티벳어로 하늘로 가는 열쇠란 뜻한다. 그녀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일곱 살부터 친정어머니를 따라 시작한 마방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녀가 하는 마방 일은 남정네들도 힘든 일이다. 구릿빛 얼굴, 작업복 운동화 차림으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얼굴엔 억척스러움을 넘어 강인함이 묻어난다. 설산 성지 순례객을 태워주고 짐을 옮겨 주는 반복되는 일과 속에 고단함이 짓누르지만, 그녀는 일의 대가를 받을 때 그리움과 안도감이 웃음으로 피어난다. 그것은 한나절을 걸어야 도착하는 매리설산 탐험의 시작지인 더친현에 있는 기숙형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덟 살 딸과 열두 살 아들의 학비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쉬치리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티베트의 전통가옥에 열다섯 살이 되는 노새와 산다. 고산 지역이라서 낮도 짧고 일교차도 심하다. 온종일 일해도 점심은 삶은 계란 한 개와 물 한 병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힘든 것은 고독과 그리움이다. 이런 그녀의 아끼는 생활도 돈주머니가 풀리는 날이 있다. 바로 한 달에 두 번 주말이면 더친현에 있는 두 아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족히 한나절을 걸어 도착한 초등학교 정문에서 장난기와 어리광이 한참인 딸과 아들을 만나는 순간 얼굴이 펴지며 화색과 웃음이 돈다. 평소에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는 그동안 번 돈으로 아이들에게 티베트 전통 음식을 사 먹이고 시설 좋은 여관을 잡아 머리도 감기며 하룻밤을 보낸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아이들은 배워서 엄마처럼 거친 마방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중국어를 잘 배워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기대 한다.

짧은 만남 긴 이별! 그녀는 일인용 침대에 아이를 양쪽으로 보듬는다. 그날 밤 아이들은 더는 엄마 꿈을 꾸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새로이 각오를 다진다. 다음날 학용품과 필요한 물건을 잔뜩 사서 아이들에게 건네주고 이별을 한다. 올 때는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걸음이 가벼웠지만 돌아가는 길은 팍팍한 걸음에 노새 방울 소리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룽따와 타르초가 나부끼는 출렁다리를 건너는 고산지대의 좁은 산길을 가는 그녀의 모습이 측은하기 짝이 없다.

설산을 가르는 매서운 찬바람과 마방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외로움과 그리움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식을 위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참는다. 온돌도 아닌 나뭇 바닥에 몸을 뉘고 고산지대 긴 밤 한기를 느끼며 삼십 대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만나고 온 월요일이면 더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적시는 그녀. 강인한 줄만 알았던 그녀도 자식에게 향하는 그 사랑을 어찌할 수 없다.

이쉬치리의 삶과 마음.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의 삶은 돌확에다 갈아서 만든 양념으로 담은 김치 맛에 비유할 수 있다. 맛깔스러운 모습도 아니고 여기저기 거치고 성긴 재료들이 엮어 만드는 오묘한 맛은 어떤 과학적인 방법으로 밝혀낼 수 없다. 오직 사랑이라는 맛뿐이다.

한기가 더해지는 십이월의 중순이다. 아이들에게 힘든 삶을 대물림하기를 원치 않는 이쉬치리의 야무진 모습. 그 모습이 지금을 일궈내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위대한 엄마의 모습이다. 여자는 연약하다고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이 겨울 더 깊어간다.
배너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