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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 시행에 앞서

자유학기제 시행을 앞두고 직업체험이 한창이다. 방송국, 병원, 관공서등 곳곳에 학생들이 몰려온다.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이란 구호가 요란하다. 그런데 왜 학창시절 선생님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까.


종종 회사에서 내근을 하고 있으면, 멀리서부터 시끌시끌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송국 견학을 온 거지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나 중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교실을 떠나 외부활동을 나서는 데서 오는 해방감. 겉으론 화려해보이는 스튜디오의 복잡한 내부나 거대한 방송장비에 대한 호기심, ‘혹시 연예인이나 인기 아나운서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복도가 일순 매우 소란스러워지지요. 저도 이곳에서 일한 지 십여년이 지났지만, 학생들의 들뜬 반응을 접할 때마다 방송국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유년시절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더불어 학생들이 주로 관심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부문은 일산센터로 이전한 지 오래고, 이 곳 여의도 방송센터엔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딱딱해 보이는 보도국과 시사교양국, 라디오국만 남아있어 실망만 하고 돌아갈까 안쓰러움이 들기도 합니다.

정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이같은 견학, 체험활동들로 구성된다지요. 한 학기만이라도 중간·기말고사나 각종 평가에서 벗어나 다양한 직업 현장을 방문하고, 토론식 수업 등 자유로운 교실 분위기에서 자신의 적성을 깨닫고 진로를 찾는 시간은 무척 의미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네 꿈이 뭐니?’란 질문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만 돼도 묻고 답하기 쑥쓰러워지죠. 중학교에 들어가서면서부터는 당장의 내신 시험, 모의고사 등에 매달려 공부계획을 세우기도 벅찬 학생들에게 장기목표나 진로를 묻는 건 미안해지기까지 합니다.

정부의 자유학기제 추진의지는 강력합니다. 최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 부처가 이 자유학기제 운영에 적극 협조할 것을 당부했죠. 각종 체험, 견학 프로그램 마련과 제공을 주저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선 학교에서 매번 적절한 현장 체험 장소를 찾긴 쉽지 않을테니까요. 제가 출입하는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서도 거의 매주 각종 기관들과 자유학기제 관련 MOU 체결 소식을 전해옵니다. 그런데, 체험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들을 살펴보면 정부기관, 금융회사, 병원, 언론사, 공기업이 대부분으로 사무직과 관리직, 전문직으로 한정돼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끔 스포츠 프로구단 정도가 이례적인 기관으로 눈에 띄네요.

대부분 직업들이 학생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기성세대로부터 한 번쯤 권유받은 직업들일 겁니다. 그러나 자유학기제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보다 더 다양한 직업세계를 체험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또 체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희망하게 된 진로가 ‘비현실적’,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란 이유로 배척되어선 안 될 테지요. 학생들의 의사가 존중받기 위해선 전 사회가 나서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들이 그 필요성을 제대로 인정받고, 직업별, 학력별, 정규직/비정규직 여부에 따라 존재하는 차별(임금, 처우, 복지혜택 격차 등)이 해소돼야겠지요. 도전에 한 번 실패했다 해서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사회적 안전망 확충도 선행돼야할 과젭니다. 이런 부분들이 해결돼야 ‘고졸 취업’, ‘청년 창업’이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교에서도 진정으로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교육’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하루종일 부대끼며 특기, 적성, 성격 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조언할 수 있는 교사의 역할이 진로교육에 가장 중요한 건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지만, 학창시절 들었던 선생님들의 말씀은 지금도 제 인생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보여지는 결과에 연연말고 늘 최선을 다해라”, “발표하길 좋아하니 기자를 해도 좋겠구나”, “자기 주장이 센 편이니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의견을 조율하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등.. 진로를 결정할 때, 조직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매너리즘에 빠질 때 마다 떠올리고 되새기는 조언들입니다.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을 새삼스레 깨닫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노경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MBC에 입사했다.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등 주요부처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현재는 MBC 취재센터/사회1부 소속(차장대우)으로 교육부를 출입하며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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