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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01
작가 정유정의 소설 <28>은 ‘28일 동안의 강력한 공포’를 그린 소설이다. 한번 잡으면 손을 놓기 어려운 박진감 있는 서스펜스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공포의 내용은 ‘감염’이다. 그 자체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아주 무서운 감염’이다. 작가는 공포를 민감하게 겨냥한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감염되는, 치사율 90%의 전염병에 갇혀버린 어떤 도시의 시민들에게 조준되어 있다. 작가는 이 애처로운 도시를 자신의 이야기 공간으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에 병원체를 알 수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괴질(怪疾)을 풀어 놓는다. 괴질은 미친개처럼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괴이하고 무서운 것이 두 가지나 더 있다. 이 괴질은 개와 사람이 병원체를 공유하여, 개와 사람 사이를 서로 전염시킨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염되고, 개와 개 사이도 감염된다. 그것도 공기를 통해서 빠르게 감염된다. 초기 증상은 눈알이 점점 짙게 붉어지면서 의식을 마비시키는 고열에 시달리고, 눈알 전체가 빨갛게 되면서 바로 죽는다. 게다가 이 도시는 전염 확산 방지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시민들은 감염지대 안에 갇힌 채 버려져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나 자신이 대학살의 도시에 유리되어 버려진 듯, 감정이입이 되었다. 


도시는 마비된다. 괴질에 감염되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도시는 마비된다. 도시는 괴질로 감염되지만, 동시에 유언비어로 감염된다. 공포를 확대재생산 하는 것은 유언비어(流言蜚語)의 몫이다. 사람들은 괴질 때문에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고, 다시 유언비어 때문에 한없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다. 조용히 체념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말이란 것이 그렇다. 스스로를 나쁜 주술에 꽁꽁 묶이게 한다.


극단의 공포 상황에서는 극단의 말이 나온다. 특별히 악의의 말이라고 할 것도 없다. 나의 위급함을 긴박하고 자지러지게 호소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시 그 누구에 의해서 이른바 ‘유언비어’로 전송되는 것이리라. 불안 상태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데서 유언비어의 악마성이 드러난다. 이 또한 인간의 말이다. 언론도 제정신을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혼미를 더 부추긴다. 이 소설에도 그런 말들이 횡행한다. 공포와 마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의 탐욕과 정치적 술수들은 괴질의 병균만큼이나 왕성하게 활동한다.


감염과 질병은 그 자체로는 개인의 영역이다. 우리는 질병을 통해 자아와 운명을 성찰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래서 질병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론적 고뇌’를 감당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감염은 개인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 세상의 모든 감염은 사회적 성격을 띤다. 일찍이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질병으로 은유 되는 세계의 부당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노벨상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작품 <페스트>를 통해 페스트 감염으로 모든 것이 극한에 놓인 세계에서 ‘합리적 이성’을 초극하는 ‘실존’의 가치를 보여 준다. 여기에 이르면 감정과 신념도 감염의 영역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02
‘부정적인 사람과 있으면 수명이 줄어든다.’ 미국 경제매거진 INC.com의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다. 설마 그 정도로 나쁜 영향을 줄까 하고 생각하다가, 기사를 읽어보니 머리가 끄덕여진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사람들 사이의 감정과 정서도 서로를 심각하게 감염시키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독일판 편집자 존 스탠리 헌터는 “부정적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당신도 같은 사람이 돼 갈 것”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한국일보, 2016.10.24.).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며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곁에 오래 있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밝은 기운도 어느새 사라지고 있음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화를 자주 내며 만사를 짜증으로 대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노라면 내 쪽의 에너지도 심각하게 손실된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평명(平明)한 심사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 옆에서 무슨 일인들 차분하고 안정되게 할 수 있겠는가. ‘타인이 곧 지옥이다’라는 말은 옆에 있는 사람의 나쁜 감정에 감염되는 경우의 고통을 제대로 지적한 말이다.  


신문에 소개된 한 심장병 전문의의 견해는 훨씬 더 구체적이다. 불평과 분노를 항시 표현하는 사람 곁에서 그것을 느끼는 사람도 혈압이 올라가고 혈액 순환은 악화된다고 한다. 당연히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두통 등의 신체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약 5분 정도 짜증과 화를 내는 사태를 만들고 이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함께 있었던 나는 면역체계가 6시간 정도 손상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지속적으로 겪게 되면 머지않아 심장질환과 뇌졸중 등 심각한 건강 상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분노가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뇌의 발달이 순조롭지 못하다고 한다. 늘 화내는 부모를 싫어하면서도, 나는 절대로 저런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대개는 나중에 자신도 그런 부모가 되어 있음을 알고 스스로 놀랜다고 한다. 유전 인자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자라는 동안 정서적 감염이 심했던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문제는 부정적 정서와 나쁘게 투사된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훨씬 더 전염되기 쉽다는 데에 있다. 감정과 정서의 감염도 병균의 감염 못지않게 무섭다.


03
감염(感染)은 무언가를 느끼고 받아들여서 그쪽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다. ‘감(感)’은 ‘느낄 감’이고, ‘염(染)’은 ‘물들일 염’이기 때문이다. 염색(染色)한다고 할 때의 그 ‘염’이다. 어떤 색깔로 물들여진다는 데에 이 말의 묘미가 있다. 감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뜻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뜻은 ‘병원체가 몸 안에 들어가 병균을 증식하는 일’이다. 두 번째 뜻은 ‘나쁜 버릇, 풍습, 사상 따위에 영향을 받아 물이 들게 됨’이다. 두 번째 뜻은 첫 번째 뜻으로만 쓰이던 ‘감염’이란 말이 이미 사회·문화적 의미로 그 뜻이 전성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두 번째 뜻에서 보여주는 ‘물이 들게 된다’는 것의 전제나 방향이 이미 ‘나쁜’쪽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병원체에 감염된다는 것도 나쁜 일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감염이나 오염이나 그저 사촌쯤에 해당하는 비슷한 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감염을 이런 통념에서 해방시켜 가치중립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는 없을까? 특히 정서적 감염은 나쁜 감염도 있지만 좋은 감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또래 집단들이 비행(非行)을 하든 선행을 하든 그들을 또래 집단으로 뭉치게 하는 요소는 서로 간의 정서적 감염이다. 어떤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선생님의 과목은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누가 공부하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이 또한 정서적 감염이다. 시를 낭송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정서적 감염이 분명하다. 내가 느끼고 싶은 정서에 내 마음이 물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 편지 한 장을 정성스레 마련하는 일도 고운 정서적 감염을 수반한다. 내가 관심 갖는 어떤 대상에 내 마음이 물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글쓰기뿐이겠는가. 그림을 감상하거나 그리는 일, 음악을 감상하거나 표현하는 일도 모두 정서적 감염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정서적 감염의 빛깔이 순정할수록 자아는 깊게 홀로 느낀다. 그 과정에서 나로 인해 고양되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난다. 정서의 원숙경(圓熟境)이다.


정서적 감염은 그냥 마음을 물들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릇 모든 감염이란 ‘아프게 앓아야 하는 과정’을 동반하지 않는가. 정서적 감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느껴서 받아들이려는 정서로 인해 내 감수성 전체가 어떤 떨림과 울림을 경험하는 것, 그것을 아픔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더러 잠 못 이루는 밤의 미열과도 같은 증상으로 그것이 올지도 모르겠다. 열병이면 어떠랴. 마땅히 감당해 내는 곳에 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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