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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덩달아 우편함이 손님맞이로 바빠졌다. 평소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증정 책들이 오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인지들이 몰려 있어서다. 오늘도 동인지 한 권과 개인 저서를 받았다. 절로 반가운 마음이 일지만, 한편으론 불쾌감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개인 저서를 받는 기분이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있다’라고 한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다. 대개는 친필로 ‘○○○님 혜존’과 함께 날짜, 저자명이 앞표지 다음 간지에 적혀 있기마련이다. 그것은 증정하는 이의 정성과 수고로움이 오롯하게 전해지는 일종의 정표이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책에 대한 살가운 애정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렇게 사인하며 증정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수고를 내야 가능한 일이 책 증정이다. 저자에 따라 수하를 시켜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수고는 덜지 몰라도 그 정성이야 직접 쓰는 저자에 비해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이 첨단시대에 좀 고루할지 몰라도 43권의 책을 펴내고 증정하면서 철저히 지켜온 원칙이라 할까.

그런데 오늘 받아본 책에는 아무런 사인도 없다. 동인지 같은 잡지야 그럴 수 있다. 딱히 ‘○○○님 혜존’이라 적을 간지 없이 만드는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앞표지 다음에 간지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개인 저서하고 다르니 오히려 그것이 동인지의 당연한 증정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비단 오늘 받아본 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종종 출판사에 의뢰해 수고를 덜고 편리를 추구한 증정이 있다. 특히 저자의 연배가 40~50대 등 아직 젊은 층인 경우도 있어 이맛살을 찌뿌리게 한다. 연로한 문인들도 직접 써서 증정하는 것과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예절 잃은 증정의 그런 책들은 책장에 소중히 보관하지 않는 원칙을 나름 정했다. 딱부러지게 실천도 하고 있다. 애써 낸 책을 여러 문인이나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야 가상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막 뿌려대는 ‘찌라시’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서다.

사실은 출판사에 의뢰해 일괄 증정하는 경우에도 얼마든지 예절을 갖출 수 있다. 받는 사람 이름까지 일일이 쓸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혜존’과 함께 ‘○○○ 드림’ 정도는 라벨지든 또 다른 별지든 뭐든 이용하여 정성껏 보낼 수 있어서 하는 말이다. 지난 해 회갑기념 출판기념회에 온 하객들에게 그런 증정을 해봤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받는 것은 어이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지난 봄 책 발행일 무렵에 받은 책인데 가을 다시 온 것이다. 심지어 1~2년 전 증정받은 책이 다시 오는 경우도 있다. 보냈는지 몰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난감한 건 사실이다. 결국 그 중 한 권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책 한 권 내기는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십중팔구 기백 만 원에 이르는 출판비용 등은 다 그만두자. 원고지 수백 장 넘는 글을 써낸 그 세월에 겪는 창작의 고통은 어땠는지, 그런 걸 생각하면 책 한 권 펴내는 것이야말로 오싹 소름끼치는 일이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어렵사리 세상과 만난 책을 ‘처치’하려니, 그게 또 일이다. 평소에 글을 쓰면서 일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책으로 나오면 달라진다. 그걸 증정하려면 ‘책 내는 것도 일’이란 탄식이 절로 터져나오니 말이다. 거기에 증정예절까지 운운해대니 좀 언짢게 생각할 문인들도 여럿 있을 것 같다.

그럴망정 책 증정에도 예절이 있어야겠다는 나의 생각엔 변함없다. 받는 이가 반갑게 미소지으며 덥썩 받아 주지 않는 책 증정은 또 다른 공해일 수 있다. 그야말로 책들의 홍수시대인 지금이다. 당신의 소중한 저서를 이메일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오는 스팸 같은 그런 것으로 남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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