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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영어시간, 한 학생의 뜻밖의 행동

교과서 없이 수업에 참여한 한 아이로부터 큰 감동을 받다



학기 초. 앞으로 영어 수업에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아이들에게 말해주며 꼭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고 딴짓으로 시간을 때우는 일부 아이들에게 일침을 주기 위해 수업 시간 반드시 교과서를 지참해 달라고 요구했다. 

만에 하나,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벌로 그날 배운 내용을 열 번씩 써오게 했다. 그 이후, 영어 시간에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잊고 자신의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는 옆반 친구의 책을 빌려서 오기까지 했다. 

금요일 3교시. 2학년 O반 영어 시간이었다. 늘 그랬듯이 수업 내내, 아이들은 열심히 나의 설명을 교과서에 받아 적었다. 매시간, 최선을 다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수업 시간 30분쯤 지났을까? 수업 시작부터 줄곧 내 신경에 거슬리는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 녀석은 수업 내내, 내 눈치를 살피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문득 녀석의 행동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녀석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마치 딴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쓰다가 만 종이를 팔꿈치로 가렸다. 심지어 녀석의 책상 위에는 영어 교과서 대신 다른 교과서가 놓여 있었다. 녀석이 수업 내내 딴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내심 화가 났다. 

그래서일까? 녀석의 행동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감춘 종이를 꺼내 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녀석은 마지못해 종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오늘 제가 깜박 잊고 교과서를 안 가져 왔어요. 그래서 "

녀석이 종이 위에 쓴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이 쓴 내용을 확인한 순간, 딴짓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녀석은 수업 시간 내가 이야기했던 내용 모두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종이 위에 필기해 두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학기 초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얘들아, 교과서 없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단다." 

수업시간 반드시 교과서를 지참할 것을 주문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오늘 녀석이 보여준 행동은 학급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녀석이 필기한 종이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녀석의 행동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녀석의 빽빽이 숙제를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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