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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신궁 여포'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갈등 조정자 여포'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교육적 가치

 “야! 너 완전 방구석 여포 같아!”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의 점심시간에 앙칼진 여학생의 꾸짖음이 들려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짝꿍인 남학생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있었는데요. ‘방구석 여포’라는 말이 저에게는 낯설게 느껴져 귀담아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평소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남학생이 집에만 가면 엄마와 동생에게 그렇게 화를 많이 낸다고 하는 군요. 그래서 짝꿍인 여학생이 가족에게 잘 하라며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방과 후에 그 여학생을 불러 잠시 ‘방구석 여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영(가명)아, 아까 ‘방구석 여포’라는 말을 쓰던데, ‘여포’가 누구인지 알아?”

“그냥 조금 알아요. 싸움은 엄청 잘하는 데 무식하고 못된 삼국지 게임 캐릭터잖아요.”

 

‘아! 용맹무쌍한 영웅호걸이었던 여포가 무식한데 싸움만 잘 하는 허세의 캐릭터가 되어버렸구나.’ 저는 삼국지의 인물인 여포가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서 대화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여포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은 ‘방구석 여포’라는 말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몇 년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에서 ‘방구석’은 자신의 집이나 가정 혹은 인터넷 공간을 의미합니다. ‘여포’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최강의 무인이지요. 즉, ‘방구석 여포’는 ‘집 밖 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평범하거나 소심한 사람이 자기 집 또는 인터넷 공간에서만 여포처럼 험악하게 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에서 ‘여포’는 싸움만 잘하는 일자무식의 이미지를 풍깁니다. 그렇다면 정말 여포는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폭력적이기만 한 배울 점이 없는 인물일까요?


‘방구석 여포’사건 이 후, 저는 아이들에게 여포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고민을 하던 터에 여포의 좋은 점을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수업에서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감정을 잘 조절해보아요’라는 주제의 도덕수업시간이었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했을 때 싸움이 일어난다’, ‘누구나 싸울 수 있지만 화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 핵심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화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때 ‘갈등 조정자’역할을 했던 여포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유비와 기령의 싸움을 말렸던 여포, 그는 갈등 조정자였다

 

여포는 동탁을 살해한 이후, 방랑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때 손을 내밀었던 게 유비였죠. 갈 곳 없던 여포를 작은 성에 머물게 해주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여포는 유비를 자신에게 가장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포가 유비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원술군과 유비군이 수차례 싸웠는데 유비군이 힘없이 대패를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원술군은 유비군을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 장군 기령을보내게 됩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여포는 유비와 기령을 각각 불러 화해를 제의합니다. 당연히 아무 이유 없이 화해를 할리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포는 100 걸음 뒤에 자신의 방천화극을 놓고 자신이 활을 쏴서 무기의 끝 창살을 맞추면 화해하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하게 됩니다. 기령은 설마 여포가 성공 할 수 있을까 싶어 그 제의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신궁 여포는 창살을 맞추는 데 성공하고 약속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장군들은 화해하게 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두 가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첫째, 인물을 바라볼 때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 인물이든 옆에 있는 친구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개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편견을 없애주고 싶었던 거지요. 둘째,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여포는 자신이 활쏘기 실력이 빼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장점을 활용해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냈습니다. 학교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과 대화를 해 보면 대부분 잘 하는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것을 찾아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자신이 잘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바랐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이 되면 주말동안 있었던 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요. 평소 수줍음이 많던 영석(가명)이가 주말에 있었던 일을 활짝 웃으며 발표했습니다.

 

“선생님! 저희 부모님이 토요일에 싸우셨는데 제가 화해시켜드렸어요. 제가 공기를 잘 하잖아요. 부모님한테 제가 공기로 한 번에 30살까지 가면 화해하라고 했거든요. 제가 바로 성공했더니 엄마 아빠가 저 보고 잘한다면서 웃고 화해했어요.”

 

우리 반 교실은 영석이의 이야기에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해주었던 여포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고 실천까지 한 영석이가 참 기특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반 교실에서는 친구들 의견을 잘 들어주고 싸움을 잘 말리는 친구를 뽑아 ‘이 달의 여포상’을 주어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방구석 여포’가 아니라 ‘갈등 조정자 여포’가 되어보도록 제가 소개해드린 이야기를 한 번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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