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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징계도 풍선효과, 대안은 없나?

자녀가 갑자기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렸다. 당신이 부모라면 어떻게 할까? 대부분의 부모는 우선 아이를 업고 병원에 갈 것이며,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바이러스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주사나 약을 처방받아 감기를 다스릴 것이다. 꼭 필요한 시기의 적당한 주사와 약은 아이의 열이 내리고 상태를 호전시킨다. 아픈 아이의 몸이 더 이상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나 지나친 주사와 약의 남용은 오히려 내성을 생기게 해 다음에는 더욱 독한 처방을 해야만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꼭 필요한 곳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감기 바이러스가 침범 하지 않도록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면역력을 높이는것이 근본적 대책이 돼야 한다.


해열제보다 면역력 높이는 학생징계 방안 강구를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징계 조치 중 학교폭력에 대한 가해학생 조치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학생을 선도하기 위한 조치는 9가지(의무교육과정인 초·중학교는 8가지)이다. 학교폭력은 피해학 생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징계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처벌 대상이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안의 경중이나 그 성격에 따라 처벌의 방법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고 교육적인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은 2012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되었지만 실제 법률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의식을 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지금처럼 쉽게 언급되는 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대구 중학생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수면 아래에 있던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더이상은 학교의 자정능력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2012년 2월 정부 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발표와 함께 학교폭력예방법이 대폭 개정됐다. 개정된 흐름은 학교폭력의 범위 확대,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 강화, 부모와 교원에 대한 책무성 강화 등 여러 내 용이 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처벌 중심으로 변화 했다는 것이고 또한 그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처벌 위주의 학교폭력예방대책의 변화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지만 학생, 학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감기에 걸린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필요한 응급조치를 적절히 내린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하지만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최근 들어 강한 징계 중심의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는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학교폭력의 개념이 넓은 상태에서 모든 사안에 대해 일률적으로 사안 처리를 하다 보니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을 육성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분쟁을 야기하며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가 사법기관인지 교육기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모든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되어있으며, 학교폭력 사안으로 인정되면 가해학생은 선도 조치를 받아야 한다.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호 간의 가벼운 말다툼에 대해서도 학교에서는 무조건적으로 학교폭력 사안으로 간주하여 의무적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하며, 이 경우 양쪽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어 아무리 경미한 다툼이었다 하더라도 학교폭력에 대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조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지침에 따라 세 개의 영역(학적 특기사항, 출결 특기사항,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에 입력되어 학생의 학교생활과 인성 정도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척도인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고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들은 궁극적으로 교육적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성장기 학생이 한번 저지른 실수가 더군다나 그것이 경미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자료가 되어 향후 인생의 진로에 불이익을 받게 한다면, 이것은 낙인효과 이상의 가혹한 제재가 될 것이다. 학생에 대 한 조치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처벌에 목적이 아닌 가해 학생의 반성과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 17조에 가해학생 조치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해학생 조치 중 1호인 서면사과 처분은 다른 조치와 달리 불이행시 강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규정이 없으며, 헌법에서 명시된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의해 거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관련 판례를 살펴보면 “서면사과 처분은 다른 처분들과 달리 불이행시 강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판단에 따라 서면사과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유지·보존할 수 있으므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즉,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유명무실한 조치라는 점이다.


둘째, 가해학생 조치 중 2호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6호 출석정지, 7호 학급교체, 8호 전학 조치의 공통점은 대표적인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가해학생을 피해학생으로부터 격리하는 조치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가 ‘피해학생 보호’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조치임에는 분명하지만 학교폭력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무조건적으로 격리시켜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 대한 미안함이나 반성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하고 있다.


셋째, 가해학생 조치 3호 학교 내 봉사와 4호 사회봉사 처분은 봉사를 통해 본인의 행동을 반성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교육적인 접근임에는 분명하다.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더없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 조치는 피해학생에 대한 반성 부분이 빠져있다. 가해학생 입장에서는 본인의 잘 못에 대한 벌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끝났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고, 그에 반해 피해학생은 여전히 사과를 받거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어 버린다.


가장 중요한 과정인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피해학생의 정서적 상처 회복을 돕고 재발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공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이전에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한 피해학생의 후유증을 얼마만큼 치유할 수 있으며, 또한 예방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남기며 법안이 만들어진 취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에 대한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었으면 한다. 가해학생의 모든 조치를 기록하는 것에 대해 학교 현장에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이지만, 자칫 학교폭력예방법의 취지 자체를 무색케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미한 조치로 볼 수 있는 피해학생 에 대한 서면사과, 피해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학교에서의 봉사 처분만이라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의무를 없애기를 바란다. 기재 의무를 없애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기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위의 조치를 받은 가해학생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학생의 상처 회복을 위해 지속적으 로 노력하는 경우 기재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해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학생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재심이나 불복절차 역시 많이 감소할 것으로 판단된다.


경미한 사안에 대해 담임종결 또는 학교장종결 필요

각각의 학교에서 비슷한 사안을 전혀 다른 조치로 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학교폭력 사안을 몇 개의 방법으로 통일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형평성을 강조한 강한 처벌만으로는 학교폭력을 없앨 수 없으므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상황에 알맞은 조치를 내리는 것이 필 요하다. 그 조치를 내리는 과정 역시 밖으로 보이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똑같이 진행하기보다는 학교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당사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피해학생의 신체적 상처뿐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까지 치유하고, 가해학생 역시 피해 학생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폭력행위 재발을 막는 근본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 폭력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 사이의 관계나 사안을 잘 알고 있는 담임교사에게 조정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법적으로는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2012년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된 직후 ‘담임종결 사안처리’라는 것이 존재했다. 담임이 종결할 수 있는 사안과 없는 사안의 구분과 담임종결 사안 처리 에 대한 매뉴얼 등이 교육부에서 연수나 자료를 통해 공식화됐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강화된 시기에도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학교폭력 사안을 처벌의 관점에서만 처리할 수 없음을 알고 그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내에 단 2곳(38쪽, 52쪽)에 담임교사 또는 학교장 자체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이름으로 담겨 있을 뿐 어떠한 지침이나 처리 방법이 제공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현재는 담임교사 또는 학교장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 처리는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 처리할 수 없는 방법이며, 만약 자 체해결로 처리했을 경우 모든 책임은 학교장이나 담임교사 또는 업무 담당자가 짊어져야 하는 입장이다. 과연 학생들 사이의 크고 작은 모든 분쟁을 학교폭력으로 간주하고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학교 현장에서 담임이 종결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처리하는 매뉴얼 등을 제공해서 경미한 사안에 대해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에게 강한 벌을 통해 학교폭력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본인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상처를 준 피해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줘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선도조치가 개선돼야만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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