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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대박’이 싫다

놀라고 신날 때 감탄하여 쓰는 말로, ‘대박’이란 말이 요즘 대세이다. ‘대박’이란 감탄사를 이길 말이 있을까. 온 국민이 만장일치라도 한 듯 ‘대박’을 사용한다. 한때 ‘국민 여배우’, ‘국민 여동생’ 이런 표현이 있었는데, ‘대박’이란 말이 ‘국민 감탄사’가 된 듯하다. ‘대박’이란 말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대박이 난 셈이다.


원래 ‘대박’이란 ‘큰 박’이라는 뜻이다. 품사로 따지자면 명사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이 쓰이는 구체적인 장면에서 보면 ‘대박’은 명사로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완전무결한 감탄사로서 쓰인다. 아니 이미 감탄사로 고착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 말을 실제로 사용하는 상황을 제대로 문자언어로 나타내자면 “대박!” 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놀라서 감탄하는 모습을 더 리얼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헐’ 이라는 또 다른 신생 감탄사 하나를 덧붙여 “대박! 헐!”하고 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박’은 새로 만들어진 말, 이른바 신조어(新造語)라 할 수 있다. 신조어의 운명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만들어져서 얼마간 유행되다가 뜬구름처럼 사라지는 신조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조어로 등장했지만 널리 애호되어서 마침내 표준국어사전에 공식 등재되어 당당한 자격을 얻는 신조어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신조어는 신조어가 아니다. 국민(言衆)으로부터 10년 이상 꾸준한 사용을 인정받으면 대개는 국어사전에 등재하게 된다. ‘대박’이 지금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인기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대박’이란 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두 가지 불만이 있다. 하나는 ‘대박’이란 말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의미의 근원(origin of meaning)’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 말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이 말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이 모든 감탄사의 포식자가 되어서 다른 우리말 감탄사를 다 잡아먹어 버린 현상에 대한 불만이다. 말이란 한 개인의 불만 여부로 그 가치나 사용이 규정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 말에 스며들어 있는 이 시대의 정서나 의식을 성찰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나는 나의 불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과 공유 하고 싶다.


‘대박’이란 말의 어원은 두 가지로 전해진다. 하나는 이 말이 노름판에서 왔다는 것이다. <우리말큰사전>에는 ‘박’을 ‘노름판에서 여러 번 지른 판 돈’으로 풀이하고 있다. 더 원래의 뜻으로 ‘박’은 ‘노름판에서 패를 잡고 물주 노릇을 하는 일 또는 사람’이라는 풀이가 있 다. 사전은 ‘한 박 먹다’, ‘한 박 잡다’ 등과 같은 용례도 보여 준다. 그러니 이러했을 것이다. 노름판에서 여러번 질러서 쌓인 판돈을 ‘박’이라고 불렀는데, 노름판에서 한 사람이 여러 번 패를 잡고 ‘박’을 늘려서, 그 ‘늘려진 박’을 한꺼번에 쓸어와 큰 돈을 따면, 이를 두고 ‘큰 대(大)’를 붙여 ‘대박 났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오늘의 ‘대박’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어원은 ‘대박’이 우리 고전소설 ‘흥부전’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그 이듬해 돌아온 제비가 보답으로 준 박 씨앗을 받아 심었다. 가을에 여기서 큰 박 (대박)이 열렸는데 그 박을 잘라보니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와서 크게 횡재하고 큰 부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오늘의 ‘대박’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온 ‘대박’에도 잘 살펴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다. 단순히 박이 커서 ‘대박’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사람들의 인식은) 그 박 안에서 돈과 금은보화가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대박’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박이 크기만 하고, 그 안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감탄사로 사용하는 ‘대박’의 뜻과 이미지는 살아나지 않는다.


노름판에서 온 ‘대박’이든 흥부전에서 온 ‘대박’이든, 공통점은 ‘돈벼락’이라는 데에 있다. ‘돈벼락’이란 횡재(橫財)이다. 대개 횡재는 꿈속에서 일어난다. 현실에서의 횡재는 횡액(橫厄, 뜻밖에 당하게 되는 재난이나 액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돈벼락 지향’의 사회 심리는 엄연하고 냉혹한 현실이지 않은가. 실제로 ‘돈벼락’을 찾아 나서는 사회는 절대로 소박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들 ‘대박’을 오늘의 우리가 ‘찬탄의 감탄사’로 사용하는 심리적 뿌리에는 ‘돈벼락에 대한 환상적 소구’가 은연중에 작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신의 자본에 끌려가는 마음(무의식)의 천박함을 이렇게 민낯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우리가 애용하는 감탄사 ‘대박’에 있다. 그런데 무조건적 ‘대박 지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말로 ‘쪽박’이 있다.


대박과 마주 보는 대척점에 쪽박이 있는 것이다. 흥부의 ‘대박’을 무조건 부러워하여 따라갔던 놀부는 어떠했던가. 그는 대박은 녕 ‘쪽박’을 차고 말았다. ‘쪽’은 어떤 물건을 쪼갰을 때의 쪼개진 한 부분이다. 바가지(바가지는 박으로 만든다)가 쪼개져서 쓸모가 없어진 것이 쪽박이다. ‘쪽박을 차다’는 ‘거지 신세가 되다’는 뜻의 비유이다. 혹시 연민과 각성의 감탄사로 ‘어머 쪽박!’이라는 말은 생기지 않으려나.


‘대박’이란 말과 관련한 두 번째 불만은 이 말이 우리말 감탄사들을 빠른 속도로 다 잡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대박’이란 말이 나오고 난 뒤에 그 이전에 우리가 즐겨 사용하던 감탄사들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말 감탄사의 대표 주자이었던 ‘야!’가 보이지 않는다.


즐거운 환희의 느낌을 나타내던 ‘우와!’는 현저히 세력이 약화됐다. 새로이 접하는 경이감을 나타내던 ‘세상에!’는 그저 어르신들이나 쓰는 말이 됐다. 여성들이 애교스럽게 애용하던 감탄사 ‘어머나!’ ‘어머머!’ ‘엄마야!’ 등도 대부분은 ‘대박’에게 점령당했다. 신명을 드러내던 감탄사 ‘앗싸!’도 맥을 못 춘다. 심지어 일본에서 건너와 어린이들이 많이 쓰던 감탄사 ‘와!’도 힘을 잃었다. 감탄사 ‘대박’의 위력을 실감한다. 이전의 우리말 감탄사들은 어디로 추방되 었을까. 모든 감탄사를 ‘대박’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생태계의 종(種)이 다양하고, 한 종(種) 안에서도 여러 변이종들이 있다는 것은 그 생태계의 풍성함과 건강함을 보전한다. 비록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변이종이라 하더라도 쓰임과 기여가 있다. 예컨대 그 생태계 안에 큰 변화가 와서 그 종(種) 전체가 소멸하게 되었을 때, 다양한 변이종이 있으면 그 종 전체를 살려 서 이어갈 유전자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생태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언어 생태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에 실재하는 온갖 변이가 바로 사물의 원형(原形)이며 변화의 원동력이다. 다양성은 이런 변이들의 자연스러운 공존이다. 변이에는 서열이 없다. 그 어떤 변이에게도 다름을 제거하거나 배척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존재하려는 것들은 모두 나름의 권리를 지닌다. 다양성은 갑이 을에게 베푸는 관용이나 배려 따위의 결과가 아니다. 다양성은 종종 혼란을 잉태하지만 마땅히 존재하는 실체이다.

- 최재천 : ‘다양성의 참뜻’ 중에서, 조선일보(2017.3.17.)



지구상에서 세력이 약한 말들도 모두 인류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이미 사라진 말들도 알고 보면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이었다. 같은 이유로 우리말의 다양한 감탄사들이 각기 다채롭게 존재하고 작용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말 전체의 건강함을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박’이 우리말 감탄사의 포식자로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은 우연히 생겨나지는 않는다. 어떤 말 하나가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은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의식과 지향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정서와 가치 등이 빚어내는 종합적 부산물이 말인 것이다. 그것이 유행어이든 신조어이든 일반어이든 다 그러하다. 그러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것이 어찌 말의 잘못 이겠는가. 말을 사용하는 우리 사람들의 잘못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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