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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다시 길을 나섭니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책을 찾아서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소로우 지음/류시화 옮김

 

사는 것은 지난한 구도자의 길이 분명합니다. 연일 폭염에 시달리는 일상, 태풍과 폭염 앞에 무력한 생명체의 모습. 그럼에도 누군가는 살아남고 어디선가는 숨막히는 삶을 견디지 못해 삶을 포기합니다.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에, 한 학기의 마지막 자락에 서서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보게 하는 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제는 절판된 책이라서 지역 도서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을 다시 읽으며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아득한 고향의 목소리처럼, 오래 전 시간 속으로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비음 섞인 목소리처럼 낮은 음계로 가만가만 다가서서 위로하는 소로우의 숲 속을 거닐며 위로를 받습니다. 단순하고 검소하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고 가장 적게 소유함이 행복의 근원임을 묵언수행으로, 몸으로 보여주며 짧은 생애를 살다간 인생의 스승, 소로우를 만나니 폭염 한 가운데서도 서늘함이 다가섭니다.

 

퇴직은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끼고 살아왔는데 이제 몇 달 후로 성큼 다가서니 마음이 가라앉곤 합니다. 물러설 준비를 하니 자꾸만 뒤돌아 보아지는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달리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처럼 고뇌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며 작은 한숨을 쉬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더 관대해지는 제 모습을 봅니다. 욕심을 내고 다그치는 버릇이 줄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지는 것들이 많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이 책은 저처럼 물러섬의 자리에 다가서는 이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서늘한 물가로 안내하는 사려 깊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손짓을 합니다. 마치 오래 전 타계한 법정 스님의 글을 보는 듯합니다. 잠시 제자들 곁을 떠나 독서연수와 재충전을 위한 직무연수로 여름방학을 보내는 선생님들을 무노동 무임금이라며 방학을 없애달라는 청원 소식에 우울하던 참이었습니다. 방학마저 없다면 선생님들은 언제 연수를 받고 건강을 살피고 여행을 떠나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서글픈 마음마저 듭니다.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도 받지 못하게 하며 옥죄더니 이제는 법으로 보장된 삶마저 내놓으라는 갑질, 난도 당하는 댓글들을 보며 정말 떠날 때가 되었음을 절감하는 중이라서 그런지 소로우의 목소리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 인생의 지혜를 선사하는 우리 집 고양이 '꿈이' 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퇴근 후 반겨주는 우리 집 고양이 '꿈이'를 보면서 비록 동물이지만 철학자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반려묘입니다. 단 한 벌의 옷을 그처럼 깨끗이 관리하는 모습, 아주 적은 양으로 하루 식사를 하는 청빈함, 자기 몸을 어찌 그리 깨끗하게 관리하는지 저렇게 작은 새끼 고양이는 늘 몸으로 가르칩니다.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주어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식탐을 이기지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한 마리 작은 고양이의 모습 속에서 위대한 철학자 소로우의 모습이 보이는 까닭은 제 마음이 그만큼 낮아져있는 탓일 겁니다. 구태여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도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는 어떠한 접근도 스킨쉽도 허락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자유를 즐기는 모습이라니! 저는 우리 집 꿈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단순하고 청빈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 순간마다 생각하게 하는 녀석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는 중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일깨워 주려면 스스로 옳은 일을 하십시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사람은 자신이 보는 대로 믿을 뿐입니다. 스스로 보게 하십시오. 너무 도덕적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게 될 것입니다. 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를 가지십시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무언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십시오. " - 23쪽

 

"삶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이 아닌가. 삶의 해안가에서 나와 바다 사이에 가로놓인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웃들은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잠시 외로움을 덜어줄 동행들이다. 그러나 갈림길이 나타나면 나는 또다시 홀로 길 위에 서야만 한다. 삶의 먼 여정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34쪽

 

"우리의 생각은 늘 죽은 자들과 함께 한다. 죽었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하늘로 올라간다. 아니, 그들이 우리의 세계로 내려온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죽고 나면 영영 잊혀진다.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영영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생존의 참모습을 드러내어 더 가깝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우리를 떠나 영영 잊혀지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죽음으로 인해 서로 갈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186쪽

 

이 책을 덮으며 서운했던 마음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끝없이 이해 받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다만 나의 길을 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내가 가르치고 이끌어 온 제자들에게 바른 길을 걷도록 마지막까지 몸으로 보여주는 삶을 살면 된다는 오직 한 생각을 다시금 화두처럼 잡았습니다. 아무도 예찬하지 않아도 좋은 무명교사의 길이었으며 칭찬 받기 위해 산 것은 더욱 아니었으니! 소로우가 보낸 편지는 바로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길을 나섭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의 길을 따라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의 <봄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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