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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이 알려주는 ‘러브’의 기원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선샤인이 아니라 션샤인이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줄거리가 이제 절반쯤 진행된 상황에서 시청률은 13%를 넘어섰다. 이제 케이블 채널은 지상파 채널과 당당하게 시청률 경쟁을 할뿐더러 지상파를 가뿐히 넘어서는 경우도 많다. ‘케이블치곤 시청률이 높다’, ‘지상파치곤 시청률이 낮다’는 말조차 이 젠 예스러운 표현이 돼버렸다.

 

높은 시청률의 비결로는 주연 배우 이병헌과 김태리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는 김은숙 작가가 있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등을 써 내려간 바로 그 사람이다. 과거 김수현 작가가 호령했던 드라마판은 이제 또 다른 김 작가, 김은숙에 의해 들썩거린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가 작년에 열풍을 일으킨 <도깨비> 이후 불과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이다.

 

김은숙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여성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캐치해내는 집중력이다. ‘TV 드라마에서 예술성 같은 걸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화끈한 가치관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우리는 왜 드라마를 보는가’에 대한 21세기적 답변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김은숙 작가다.

 

‘우리는 왜 드라마를 보는가’

일종의 ‘판타지’에 강점을 보이는 작가인 만큼 고증에는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군인이 주인공이었던 <태양의 후예>의 경우 군필자, 혹은 밀리터리 마니아 관점에서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김은숙 작가가 이번에 아예 사극을 시도했다.

 

시간대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미양요(1871) 때 미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어린 소년은 커서 이병헌이 되고, 양갓집 규수 김태리와 ‘사랑’에 빠진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겠지만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사랑’이란 단어는 중요 하다. 이 드라마에서는 특히 그렇다. 김태리가 연기하는 주인공이자 ‘신여성’인 애신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 그러니까 ‘러브’에 대해 알게 된다. 다음 대화를 보자.

 

“저는 잉글리시를 배워 벼슬 말고 러브를 할 겁니다. 저는 벼슬보다 러브가 더 좋습니다.”

“러브? 벼슬 말고 하겠다는 걸 보면 벼슬보다 좋은 것임이 분명한데...대관절 그게 무엇이기에...러어브?”

 

대다수의 시청자가 ‘순우리말’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러브, 그러니까 사랑이란 개념은 19세기 말 서양 문물과 함께 흡수된 것이다. 그 이전 조선시대까지 사랑 의 감정이란 것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 개념을 포섭하는 정확한 단어는 없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는 ‘러브’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흥미로운 설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시기 전래된 사랑의 개념은 남녀 간의 에로스적 의미보다는 아가페적 의미, 그러니까 기독교적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 흡수된 서양 문물이란 것은 결국 기독교 문명의 한 자락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젊디젊었던 당시의 선교사들이 지구 끝이나 다름 없는 조선에 대해 품었던 ‘러브’ 역시 당시의 한반도에선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가보면 스물넷의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조선에서 최후를 맞이한 선교사 루비 켄드릭(Ruby Rachel Kendrik)을 비롯해 수많은 청춘의 죽음이 기록돼 있다.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 해도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칠 것이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인간에게는 이성이나 객관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국면이 분명 존재한다. 알 수 없는 연유에서부터 시작된 타인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애정, 그 표현 하기 어려운 감정의 불분명한 경계까지가 바로 ‘러브’다.

 

근래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대중가요, 이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 대사는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랑의 개념이 우리의 내면세계를 얼마나 많이 바꿔놓았는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랑’이 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얼마나 다채로워졌는가.

 

사랑의 개념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아직 150년도 되지 않았다는 얘길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한다. 심지어 사랑의 개념 역시 ‘외래문물’이라는 이유로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이 혐오의 시대, “사랑하지 말자”고 외치는 사람들마저 품고 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러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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