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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포크댄스 강사의 품격을 생각하다

교직에서 은퇴 후 제2인생 포크댄스 강사로 뛰고 있는 리포터다. 학습 대상은 주로 신중년이지만 포크댄스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다. 올해 강사가 주로 활동한 장소는 경기상상캠퍼스, 벌터문화마을, 무봉사회복지관, 일월공원, 경로당 5곳 등이다. 대상은 50대에서부터 80대까지이다. 주 대상자는 60대이다.

 

강사에게도 품격이 있을까? 물론 있다. 강사 복장에서부터 수강생 사로잡기, 품위 있는 언어와 음색, 표정, 교재연구의 깊이, 수업 자료 준비와 전달력, 재미와 유용성, 눈높이, 중간 피드백과 마무리, 시간 지키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교직경험을 떠올려 보니 강의 내용은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강의 외적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교감 자격연수 때다. 강사들이 모두 정장차림이다. 날씨가 더워 양복 상의를 벗고자 할 때는 수강생의 양해를 얻어 벗는다. 국어과 선배 지인 한 분이 강사로 왔는데 남방차림이었다. 최신 유행 옷도 아니고 평상복이다. 강의 내용은 둘째 치고 강사가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였다. 강사는 수강생의 입장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품격을 유지하고 더위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한 것이었다.

 

요즘 내가 강사로서 신경을 쓰는 것은 주로 외적인 것이다. 아침 샤워와 머리 감기, 팬티와 런닝 갈아입기, 구두 솔질하고 광택내기, 바지와 상의의 조화, 모자 착용 등이다. 아내는 얼굴 피부 손질과 머리염색까지 주문한다. 수강생에게 젊게 보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강사로서 매력이 있고 호감을 준다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러나 늘 같은 수강생을 대해다 보면 만성이 되어 무감각해질 때도 있다.

 

얼마 전 캠퍼스 수강생 한 분이 내 가방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선생님 가방을 보니 우리 신랑 가방은 몇 년 간 더 써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어야겠어요.” 내 가방을 보았다. 선물 받은 가방이다. 3년 정도 사용했는데 낡았다. 손잡이가 변색이 되었고 옆면은 껍질이 떨어지고 있다. 수명이 다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물건 나르는 용도로만 여기고 사용하고 있었던 것.

 

얼마 전 지자체 큰 행사를 마친 후 교직선배인 경로당 회원은 카톡으로 사적 이야기라 전제하며 ‘삶의 에너지원 가방 선물’을 꺼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가방을 빨리 바꾸라고 성화다. 어이쿠!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낡은 가방을 수강생들에게 보여 애처로움을 주었고 강사의 품격을 상실한 거였다. 교직에서 은퇴할 정도면 가방의 품격도 유지할 정도인데 그걸 무시하여 민폐를 끼쳤던 것.

 

가방을 바꾸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가죽가방 5만 원 정도이고 이름 있는 제품은 10만 원에서 20만 원대다. 지금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내 습벽을 생각하면 한 번 구입하면 몇 년 사용한다. 그러니 이번엔 품격을 살려줄 제대로 된 가방하나 구입을 해야겠다. 책가방, 학창시절엔 어머니가 사 주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산 적이 별로 없다. 주로 선물 받은 것을 활용했다.

 

어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몇 곳의 가방 매장을 둘러보았다. 신사용 가죽가방은 20만원 이상이다. 다행이 한 곳을 들르니 유명 메이커인데 50% 할인행사를 한다. 제품 색상이나 구조도 마음에 든다. 가방을 들고 집에 왔다. 내 속사정을 아는 서울 누님은 가격 걱정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란다. 가방을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헌가방 속 물건을 꺼내 새 가방으로 옮겼다. 어떤 물건이 나올까? 여러 가지 물건이 나온다. 그러나 고마운 물건이다. 그 동안 이 가방의 역할을 엿볼 수 있다. 출석부, 필기도구, 수첩, 카메라, 스마트 폰, 손수건, 구두주걱, 자동차 스마트 키, 앰프 연결용 잭, 지갑, 안약, 명함, 물수건 등이다. 내 가방은 강사로서 역할을 하게끔 도와준 일등공신이다.

 

새 가족이 된 신사용 가죽가방, 아마도 10년 이상 동반자가 될 것이다. 구두는 한 켤레에 20만 원 이상 기꺼이 주고 사면서 가방에 대한 투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가방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편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사가 품격을 생각하지 않으면 수강생에게 민폐가 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점잖게 강사의 가방을 지적해 준 수강생, 아내의 충고, 가방을 선물한 누님이 고맙다. 세상살이 더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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