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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학창시절 수원 팔달산에 대한 추억

서울에 남산(南山)이 있다면 수원에는 팔달산(八達山)이 있다. 남산은 애국가 4절에 나온다. 팔달산은 태조 2년 1394년 이성계가 지어 내렸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산의 공통점은 도심에 자리잡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주거지와 가까우니 시민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산을 찾을 수 있다. 산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 등산 개념이 아니라 산책 삼아 쉽게 돌아볼 수 있다. 지금 팔달산 회주도로는 벚꽃이 한창이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팔달산을 찾았다. 산행 코스는 화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화성장대로 직접 오르는 길.  계단이 많기는 하지만 가끔 뒤돌아 보니 시내 전경이 보이고 멀리 광교산도 보인다. 화성장대 가까이 가니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수원시의 시화(市花)를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숙지산에는 진달래 동산이 있는데 팔달산 곳곳에서도 진달래가 반겨준다.

지금부터 팔달산의 추억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필자의 초중학교 시절인 1960년대 팔달산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야기도 나온다. 유년시절 우리들은 팔달산을 팔딱산으로 불렀다.  발음하기도 재미 있거니와 명칭에 얽힌 이야기를 믿었다.. 수원에 물난리가 나서 온통 시가지가 잠겼는데 팔달산이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팔딱산. 지금 생각하니 우스운 이야기다. 팔달산이라는 것, 사통팔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팔달산은 우리의 병정놀이터 였다. 당시 나무가 우거졌기에 우리들은 나무로 진지를 만들고 칼을 만들었다. 암구호를 정하고 진지에 들어가려면 암구호를 대야했다. 암구호가 대지 못하면 우리 편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출입을 막았다.  추석 전에도 팔달산을 찾았다.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은 송편에 사용할 솔잎을 뜯어 오라는 어머니 심부름. 나랏산이기에 허락없이 채취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원 전역 소나무에 병충해 방제가 되어 있어 솔잎을 사용할 수 없다.

 

무서운 밤에 팔달산을 찾는 일은 1년에 딱 한 번 있었다. 수원의 커다란 행사인 10월 화홍문화제(지금은 수원화성문화제) 불꽃놀이 때다. 팔달산에서 축포를 쏘는데 시민들은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불꽃놀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작은 낙하산이 서서히 떨어지는 장면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주우러 팔달산으로 달려 간 것이다. 팔달산 불꽃놀이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960년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코스가 바로 팔달산이다. 아마도 비용 들이지 않고 남녀가 건전하게 만남을 즐기는 것이 산책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남녀칠세부동석 교육을 받고 자라 남녀가 손잡고 다니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수원시내에서 청춘남녀가 손잡고 다니는 것은 구경거리였다. 이성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이성교제를 아름답게 보았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아쉽다.

 

팔달산에 강감찬 장군 동상이 있었다. 말을 타고 창을 들어 힘차게 호령하는 강감찬 장군.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호국정신을 배웠다. 외적이 우리나라를 쳐들어 오면 용감하게 그리고 머리를 써서 물리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이 동상은 광교공원으로 이전을 했고 그 자리에는 팔달산을 지키는 사당인 성신사(城神祠)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성신사를 복원한 것인데 우리 세대는 강강찬 장군 동상이 익숙하다.

 

팔달산 정상에는 화성장대가 있다. 서장대라고 부르는데 그 시절엔 흔적만 있었다. 군사를 지휘하던 곳인데 복원한 것이다. 이 서장대가 화마로 전소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나의 심정은 서울 숭례문 화재 때처럼 비참했다. 다시 복원은 되었지만 문화재 관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지금 이 서장대, 사람들은 시내 조망장소로 즐겨 찾는다.  새해 첫날이면 2천여 시민들이 여기서 해맞이를 하면서 한해의 소망을 기원한다. 해맞이 명소다.

서장대를 거쳐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 끝에 서남각루가 있다. 현판 화양루(華陽樓)가 낯설다. 유년시절 이 곳엔 'ㄴ'자 처럼 생긴 하얀 건물이 있었다. 정오가 되면 여기서 싸이렌이 울렸다. 정오를 알려주는 것. 시민들은 비로서 점심 때가 되었음을 아는 것이다. 시계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였기에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 당시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물 제402호인 팔달문. 수원시민들은 남문이라고 불렀다. 시내버스에 붙은 행선지도 '남문'이라고 썼다. 당시 한자를 모르던 우리는 팔달문을 남대문으로 읽었다. 어른들의 우스개 소리도 들었다. 동문(창룡문)은 도망갔고 서문(화서문)은 서 있고 남문(팔달문)은 남아 있고 북문(장안문)은 부서졌다는 말이다. 팔달문에서 팔달산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많다. 이 계단 어떻게 올랐을까?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며 우정을 쌓으며 팔달산을 향했다.

경기도 교육계 교원으로 39년간 봉직을 한 나. 전문직인 장학사 시험(1999년)에 수원화성에 관한 문제 하나가 단답식으로 나왔다.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셰계유산에 등록된 연도를 묻는 것이었다. 1997년이다. 수원토박이이기에, 수원에 대한 애정이 남보다 깊기에 쉽게 정답을 맞추었다. 방송대 공부를 하다보니 정조의 애민정신이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팔달산과 수원화성이 수원의 소중한 보배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언제 보아도 정겹다. 포근하다. 어서 오라고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안다는 것은 미래로 나가는 발판이 된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수원의 재발견, 수원을 찾는 사람들은 팔달산의 어떤 모습을 담아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