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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멀어서, 서러운, 아픈

01

멀다, 먼 곳, 멀리 오다, 이런 말을 들으면, 여행이 생각난다. 무언가 아릿한 낭만의 기분도 함께 따라온다. 나는 먼 나라에 여행을 가면, 그곳 그림엽서를 사서 이렇게 적는다. “멀리 오니 그대 더욱 그립다.” 이렇게 적고 나면, 내 안에서 어떤 고적하고도 먼 이격감이 일어난다. 그것을 멋의 감정으로 이끌리게 하는, 호젓한 여수(旅愁)의 감정도 생겨난다.

 

골치 아픈 복잡한 일에 시달릴 때, ‘눈을 들어서 먼 곳을 보라’고 한다. 먼 곳이 주는 치유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낙원이나 유토피아는 언제나 먼 곳에 있다. 그래서 먼 곳은 동경의 대상이다. 동경을 품고 있는 정서가 그리움이다. 김광균 시인의 ‘설야(雪夜)’라는 시는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먼 곳으로부터 오는 그리움의 소식이 ‘밤에 오는 눈’이라는 것이다.

 

부천에 있는 동네 ‘원미동(遠美洞)’은 ‘멀리(머~얼리)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이다. 새겨보면 운치가 있다. 미학적 원리로는 적절한 거리가 아름다움을 빚어낸다고 하지 않는가. 너무 근접하면 신비함이 사라진다고, 그래서 가족끼리는 존경하기가 좀체 어렵다고도 한다. 아무리 명소라 해도 그곳이 가까운 데 있으면 소풍 가고 싶은 곳에 들지 못한다. 좀 멀리 가는 곳이라면 명소가 아닌 들 어떠하랴. 이 모두에서 ‘멀다’의 미덕을 느낄 수 있다.

 

‘멀다’라는 말은 표현의 부드러움을 주기도 한다. ‘눈이 멀다’는 ‘안 보이다’를 좀 부드럽게 나타낸 것 아닐까. 너무 멀리 눈이 있으면 보이지 않게 되니 말이다. ‘기억이 멀다’도 ‘생각이 안 난다’를 좀 점잖게 나타낸 것이리라. ‘멀다’를 반듯하게 나타내는 용례는 ‘길이 멀다’이다. 길이 멀면 서로 다니고 만나기가 어렵다. 그걸 극복하자고,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라는 구호를 내지만, 멀면 멀어진다(동어반복이 가지는 수사학의 힘을 여기서도 본다).

 

인간은 멀어지려는 관계의 역동성 속에서 자기 존재를 정립한다. ‘멀다’와 ‘가깝다’는 상대적이다. 서로 상대에 의지하여 자기 뜻을 나타낸다. 또 ‘멀다’와 ‘가깝다’는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있다. 멀어짐이 오래되면 가까움이 오고, 가까움이 오래되면 멀어짐이 온다. ‘삼국지연의’에 이르지 않았던가. “나누인 것이 오래이면 반드시 합해지게 되고, 합한 것이 오래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멀다’에도 좋은 것과 아니 좋은 것이 함께 들어 있다.

 

02

‘멀다’를 ‘죽음’의 동의어로 절감하며, 그 ‘멀다’를, 생애 내내 감당하며 살아온 사람을 생각해 본다. 이때의 멀다는 그냥 막연히 먼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의 뿌리로부터 멀어졌음을 뜻한다. 물질적 삶이든 정신적 삶이든 우리는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만 살 수 있다. 폭풍에 표류하다 멀리 무인도에 밀려온 사람의 절박함이란 삶의 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구조되지 않으면 아마도 죽을 것이다. 뿌리 없는 삶이므로.

 

멀리 떨어짐으로 인해서 죽음에 직면하는 사연, 그 사연에 담기는, 아프고 쓰린 이야기는 구구절절 기가 막힌다. 나는 민족의 ‘이산(離散, Diaspora)’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잃고 이산의 질곡으로 내몰린 것만큼 절박하고 막막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싶다. 그냥 멀리 흩어져서 산다는 존재론적 고통은 그래도 견딜 만하다. 그것에 더하여 이민족의 핍박과 학살이 있기에 아픔의 모진 면이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 민족이 근대 초기에 나라를 잃고 겪은 ‘이산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20세기가 막 열리면서 하와이와 멕시코로 떠난 농업 이민 형식의 이산도, 현지에 와서는 혹독한 노동과 비인간적 통제에 시달려야 했다.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 <검은꽃>은 이들 초기 ‘디아스포라 코리안’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읽는 독자도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후손은 오늘날 미주지역에서 자존감을 키우고, 재외동포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세워가고 있다.

 

일제 치하 일본에 강제로 징용에 끌려갔다가 이산이 된 재일동포들의 고초도 들어보면 사연마다 아프다. 그렇게 끌려온 일본 땅에서 쳐다보는 모국의 하늘은 얼마나 멀고 멀었을까. 이국땅에서 고생과 멸시를 이겨내기까지 멀기만 한 고국은 그리움으로써 동력이 되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들의 자립과 성공이 소중해 보인다.

 

나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이산의 경우를, 1937년 10월 소련에 의해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극동 연해주 지역의 동포들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부터 국권 상실의 시기에 맞물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로 흘러 들어갔던 동포들이다. 신한촌(新韓村)이라는 한인 거주지를 이루어서 여러 수십 년 자식 낳고 농사를 일구며 살아오는 곳이다. 살던 집과 땅과 세간을 버리게 하고, 군사작전하듯이 강제로 끌고 갔다. 일본에 협조하는 고려인이 있다고 해서 스탈린이 내린 조치이었다. 나라가 있었다면 가당하기나 하겠는가. 나는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분별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망국을 초래했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서 더 많은 반성과 단죄의 담론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략 17만 2,000명의 동포가 강제로 그 추운 날씨에 화물열차를 타고 40여 일을 어딘지도 모르고 갔다. 열차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장례는 꿈이고, 눈물은 사치에 속했다. 어느 날 허허벌판과도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들은 마치 화물 짐 부리듯 부려진다. 이후의 허다한 고초는 말로써 다할 수 없다. 살아왔던 곳 연해주 신한촌은 수천 킬로미터 밖 너무도 먼 곳에 있다. 조상이 살았던 모국의 땅, 조선(한국)은 다시 그 너머 더 먼 곳에 있다. 멀어서 서럽다. 멀어서 아프다.

 

03

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이 2020년 제51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동인문학상은 우리 근대문학의 선구자 김동인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상으로서, 그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은 1937년 극동 러시아의 조선인 강제 이주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린다. 40여 일간 이동한 열차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면서, 단일 화자가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對話)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강제 이주 열차가 준 강렬한 인상 때문에 그 열차에 실린 인간들의 공포와 고통을 그리고 싶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열차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자, 아비가 어미 품의 아기를 빼앗아 광목천으로 감싼 뒤 눈보라 날리는 열차 밖으로 던지는 장면을 비롯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애절한 역사가 절제되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려졌다. 심사위원 오정희 작가는 화물열차의 3.5평, 어둡고 더러운 공간은 낯선 세계의 설화적 공간으로 살아난다고 말한다(조선일보, 2020. 10. 19.).

 

나는 이 작품의 끝부분 한 군데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아기를 가진 임신부로 이 강제 이주 열차에 탄 금실이, 그리고 그녀를 챙기는 아주머니 들숙, 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금실이의 남편은 이 열차를 타지 못했다. 보따리 장사를 떠난 남편은 북만주 어디쯤을 아내의 행방도 모르고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 찾을 수 없이 이산이 되고 말았다. 이산 안에 또 다른 이산이다. 금실의 말이 내 귀에 박힌다.

 

“네…. 내 남편은 철새 같은 남자지요. 집을 떠나 국경 너머 먼 땅까지 날아갔다 날아오지요. 그이가 돌아올 때까지는 나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가 없어요. 괜히 머리카락을 잘랐다 남편에게 흉한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요. 남편이 장사를 떠나면 나는 개미나 거미도 함부로 죽이지 않지요. 나뭇잎도 안 찢고, 썩은 가지도 부러뜨리지 않지요. 나쁜 생각도 안 하고, 나쁜 마음도 안 가지려고 애쓰지요.”

“조심하는 건 좋은 거야.”

“아주머니 나는 남편과 생이별을 할까 봐 겁이 나요.”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되어 있어.”

“살아 있으면요?”

“그게 언젠가 될지 몰라서 그렇지,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게 돼 있어.”

“아, 언젠가는요……?” 금실은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들숙은 고개를 든다. 열차의 창문을 막은 양철 조각 새에 고인 배꽃 빛 달빛을 응시하며 쓸쓸히 웃는다.

 

나는 금실이야말로 선량한 백성이고, 그녀의 떠도는 남편이 주권 잃은 우리의 나라, 곧 ‘떠도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성은 저리 나라가 다칠까 노심초사하는데, 나라는 답이 없다. 아니 나라는 없다. 백성이 간절하게 함께 있기를 원하는데, 지금 나라는 부재중이다. 국권 상실의 시대, 멀리 먼 곳으로 흩어져 간 전 세대 백성들이 겪었던 가혹한 수난을 나의 형벌처럼 음미한다. 금실은 남편을 이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멀어서 서럽고 멀어서 아프다. 무엇이 이렇게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가. 운명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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