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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약수동에 있는 초임지 장충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20대 중반의 풋풋한 청년 교사이었다. ‘청년 교사’란 말은 ‘교사의 젊음’에서 순수와 열정을 바라는 기대가 담긴 말이다. 그런 덕성을 향하도록, 듣기 좋게 부각한 표현이다. 말과 실제가 똑같지는 않다. 나를 두고서만 보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경험 미숙한 총각 선생이란 설명이 나의 실제에 더 맞았을 것이다.

 

신학기로 분주한 3월 중순, 최옥려 교장선생께서 나를 교장실로 부르셨다. 사정은 이러했다. 시내 인문계 K고등학교에 갑자기 국어교사 결원이 생겼다. 정규 인사이동은 이미 다 끝났고, 새 학기 학사일정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다른 고등학교에서 K고등학교로 올 수 있는 선생님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형편이 급하여, 적절한 사람을 중학교 교사 중에서 추천받고자 하는데, 그 추천 요청이 우리 최 교장 선생님에게 온 것이다.

 

최 교장 선생님은 나를 추천했노라고 하며, 공식 인사발령이 나는 대로 고등학교로 옮겨 갈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배려해 주신 것이 틀림없는데, 무어라고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라 그냥 우물쭈물했던 것 같다. 마음과는 달리 반듯한 감사의 인사말이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교장선생님은 다시 나를 불러, 전출 인사명령이 났음을 알려 주신다. 고등학교로 가서도 열심히 성실하게 할 줄 믿는다면서, 가능하면 대학원 공부도 하여서, 자기계발에 힘쓰라고 하신다. 당시에 젊은 교사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장하는 교장은 거의 없었다.

 

교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교장선생님이 다시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K고등학교에 공식 출근하기 전에, 박 선생을 선택하여 전출 제청을 해 주신 K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도록 하세요. 그게 다 사람 사는 인사 예의(禮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돌아서서 다시 교장실 문을 나서는데, 교장선생님은 또 나를 부른다.

 

“찾아뵐 때, 그냥 빈손으로 가지 말고, 동네 정육점에 들러서 쇠고기 두 근만 사서 가세요. 박 선생 왠지 그런 거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공연한 노파심을 냅니다.”

 

최 교장선생님은 회갑을 앞둔 여자분이셨다. 학교경영이 반듯하고 학생들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한신 분이었다. 자상함이랄 수도 있지만, 내 미숙함과 다듬어지지 못한 촌스러운 태도를 은연중에 걱정하신 것이었다. 실제로 최 교장선생님의 그 쇠고기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아마도 빈손으로 갔거나, 최 교장선생님이 말한 ‘인사 예의’에 값하는 것을 제대로 챙겨서 갔을 것 같지 않다.

 

그 나이에는 그런 인사가 왠지 낯설었다. 시대가 궁핍했던 탓일까. 뭘 사서 들고 인사를 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 교장선생님의 노파심은 ‘공연한 노파심’이 아니었다. 삶의 전체성 속에서 ‘인사의 반듯함’을 생활교양으로 감득하지 못한, 나의 미숙을 헤아려 보신 거였다. 나는 ‘인사를 차린다는 것’이 외워서 알게 되는 지식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지혜에 속하는 것이다.

 

그때 내가 행한 인사가 반듯한 예의가 되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일로 인하여 나는 인사에 대한 나의 판단 역량이랄까 감수성이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나의 인사성 전반에 대해서 약간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일이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면, 나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학습을 한 것이리라.

 

02

글자 뜻 그대로만 보면, ‘인사’는 ‘사람 인(人)’자와 ‘일 사(事)’자로 되어 있으니, ‘사람의 일’이란 뜻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에 그런 ‘인사(人事)’의 뜻이 잘 나타난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그런 뜻이니,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인사’인 것이다. 이 ‘인사’가 만나는 사람에게 기꺼이 아는 체하며, ‘안녕’하고 말을 건네는, 바로 그 일상의 ‘인사(人事)’와 같은 글자로 표기된다니, 생각해 보면 의미가 깊고 또 깊다. 우리가 항용 나누는 인사, 바로 이 인사야말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고, 살아가는 데에 중심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니 그 뜻이 어찌 깊지 아니한가.

 

몸으로 표현하는 인사도 많다. 나는 혼인 예식에서 신랑 신부 맞절처럼 아름답고 소중해 보이는 인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례를 볼 때 맞절 순서에서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상대의 존재와 인격을 향하여 최고의 존경을 담아 맞절을 해 주세요. 상호공경의 최경례(最敬禮)입니다. 살면서,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부부가 꼭 한번 맞절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 앞에서 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인사는 글로도 전해지고, 선물이 인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는 인사는 인사치레가 된다. 상대가 인사치레인 줄 알아차리면, 그 인사는 하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 인사는 어렵다.

 

사전에 나타난 ‘인사’의 뜻은 넓고 다채롭다. 안부를 묻거나 공경하여 예를 표하는 것을 인사라고 한다. ‘어른께 인사를 여쭙는다’가 바로 그런 인사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성명을 통하는 것은 가장 생생한 인사 광경이다. 이걸 못하면 사회성 없는 사람이 된다. 인사를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로 보는 것은 동서양이 다 마찬가지이다.

 

이런 인사와는 결이 다른 인사도 있다. 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일도 ‘인사’라고 한다. 인사관리니, 인사발령이니, 인사문제니 할 때, ‘인사’란 다른 의미를 보인다. 인사성이 좋은 사람이 인사발령에서 이득을 본다면, 그 ‘인사’와 이 ‘인사’ 사이에 서로 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일까. 사람을 대할 때의 인사나, 조직에서의 인사 관리나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사가 만사이다’라는 말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공평하게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인사에 해당하는 영어를 찾으면 다양한 어휘들이 우리 말 ‘인사’에 대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로 하는 인사는 ‘Hello’, 몸으로 구부리는 인사는 ‘bow’이다. 안부를 묻는 인사는 Greetings이고, 경례의 의식이 담긴 인사는 Salute이다. 인사관리의 인사는 Personal이라고도 하고, Human Business라고도 한다. 공적차원의 인사는 정중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a visit of courtesy’를 ‘인사차 방문’으로 번역하는 데서 그런 흔적이 보인다. 번거로워 보이는 인사에는 정중함의 코드가 숨어 있다. 그것은 문화이다. 여기에 이르려면 인사는 인생사 전반에 관여하고, 끼어들지 않는 데가 없다. 그래서 인사는 어렵지 않을 수가 없다.

 

03

흥선대원군의 권세가 대단하던 시절이었단다. 대원군이 있는 운현궁에 시골 선비가 찾아와, 사정을 호소하고, 일자리를 부탁하려고 했다. 마당을 돌아가다가 갑자기 대원군과 마주쳤다. 대원군이 행색 초라한 시골 선비를 수상히 여겨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느냐?” 엉겁결에 대원군을 맞닥뜨린 시골 선비는 놀라 정신이 아득해져서, 땅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연거푸 두 번이나 절을 했다. 대원군이 다시 호통을 친다.

 

“네 이놈! 네가 나를 죽은 사람 취급하느냐? 어찌 산 사람에게 두 번 절을 하는고? 나를 이리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시골 양반은 기가 찼다. 부탁을 꺼내기도 전에, 벌로 매를 맞아 죽게 생겼다.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그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올린다.

 

“대감님,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소생 두 번 절을 올렸으나, 앞에 올린 절은 대감님을 처음 뵙는 인사로 올린 절이고요, 뒤에 올린 절은 물러간다는 하직 인사로 올린 절입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대원군은 그에게 어떤 처분을 내렸을까. 말장난한다고 벌을 내렸을까. 임기응변의 재주를 인정하여 벼슬자리를 주었을까. 어느 쪽도 답이 될 수 있으리라. 인사로 맞닥트리는 삶의 장면들은 늘 역동적이고, 그 역동에 맞추어 인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새해 인사들이 넘쳐난다. 대량 복제된 인사 메시지들이 말로, SNS로, 선물로 발송되고 수신될 것이다. 인사야말로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는 일, 그래서, 인사(人事)이지 않았던가. 새해에는 복제된 상투적 메시지에 휩쓸리지 말고, 나의 메시지로 인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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