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봄꽃은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희고 붉은 매화 꽃잎은 하롱하롱 지고 있고, 붉은 동백은 붉은 꽃송이가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봄꽃이 무수히 피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밭에 새싹조차 내밀지 못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합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시절입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추운 날씨가 이어질 때 쓰입니다. 좋은 시절이 왔어도 상황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못하다는 의미로 지금의 상황에 잘 어울립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은 전한시대의 미인 왕소군을 소재로 지었다고 합니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로 절세의 미녀였다고 합니다. 원제는 후궁들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하여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궁들은 뇌물을 주면서 잘 그려주도록 간청하였는데, 왕소군만은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으므로,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가 한나라궁중의 여인을
2020-03-16 09:14지난 일요일 광명역 인근의 서독산(書讀山), 가학산(駕鶴山)을 다녀왔다. 아내, 처형과 함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의 등산은 괜찮다고 보았다. 아파트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니 곧바로 서독산 입구로 이어진다. 안내 푯말의 서독산, 가학산 이름이 낯설다. 친근하지 않다. 처음이라 그럴 것이다. 계단을 오르며 만난 첫 야생화는 제비꽃. 그런데 꽃 주위 낙엽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이 제비꽃을 보이게 하려고 덮었던 낙엽을 치운 것. 이것 제비꽃 생육에 좋을까? 현재 이 제비꽃 생육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다. 이 행동 사람 중심의 생각 아닐까? 아내는 흩어진 낙엽을 다시 제비꽃 주위에 놓아둔다. 두 번째 만난 야생화는 노루귀. 부사(府使) 묘소를 지나니 등산로 오른쪽에 나타난다. 노루귀 군락지다. 꽃 색깔이 분홍색인데 진한 정도가 다르다. 흰색 노루귀도 있다. 이야생화를 보고 생각한 것은 첫째, 어떻게 여기서 자생하고 있을까? 둘째, 연약한 줄기가 어떻게 무거운 낙엽 사이로 비집고 올라왔을까? 셋째, 추위를 이겨낸 강인함과 생명력은 자연의 경외감이다. 서독산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니 가학산으로 이어진다. 등산로 우측에
2020-03-16 09:14뒤늦게 찾은공부할 권리 겨울나무들은 무거운 옷을 벗어버리고 시원하게 서서 어두컴컴한산책 길을 반겨줍니다. 마치 거인들이 서서 맞아주는 듯한 이른 아침 풍경은 늘 나를 압도하곤 하지요. 나무로 태어난 숙명을 완벽하게 해내고 침묵으로 말을 하는 우람한 나무들이 지난 시간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들을 자랑하며 묻습니다. 교사라는 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일상 앞에 내가 드러낸 가지들이 너무 초라하지는 않은지 엄숙하게 묻고 있으니! 아침마다 숙제를 하듯 그 질문에 답할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이제 자유인으로살며 설레는 마음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공부'임을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저에게 '공부'는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해야 했던 숙제였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물을 여유도 없이, 무조건 달려야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재미는 사치스러운 언어였습니다. 오직 그 길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외길이었습니다. 일하기 위해,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운명처럼 받아든 그 길이 어느 새 41년 저 뒤로 긴 그림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이젠 아무도 나를 일터로 내몰지 않을 지점에서 진정한 공부를 시작할 생각으로 2020년을 시작하며 '공부할 권리
2020-03-16 09:13사일로 이펙트(silo effect)를 넘어라 수직에서 수평으로! 세계적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 2019년 우리 사회에서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사회적 화두로 가장 많이회자된 낱말은 '공정'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진 자는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고지를 선점하며 양극화의 물결이 어디까지 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선점의 조건이 그나마 불법적인지 아닌지, 부모찬스를 최대한 활용한 것인지, 순수한 실력인지 따지기도 전에 이미 출발선이 다른 상위층이 생각하는공정의 잣대는 보통의 시민이 생각하는 개념과 너무나 달라 공정을 바라보는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거나 이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형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을 ‘사일로 이펙트(silo effect)’로 꼽는다. 부서 이기주의 혹은 조직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사일로 이펙트는 회사 안에 장벽을 쌓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고립된 기업문화를 가리킨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선을 넘을까봐, 전략에 맞지 않을까봐, 너무 공격적으로 보일까봐 꺼내지 못하고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회사 뿐만 아니라 공직
2020-03-09 10:09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을까 그림은 힘이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울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작가 서문에서 치유미술관은 가상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를 묶은 형식으로 전개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화가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를 비롯해 15명으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을 받았던 화가들이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읽기 쉽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으면서도 화가들이 겪은 아픔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이 그림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림으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며 울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장면들이, 때로는 내 아픔 같기도 하고 쓰다듬고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하는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그림, 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의 시작은 아픔과 상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글이나 그
2020-03-03 11:18한국은 지금 수축사회에 진입했다고?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의 저자 홍성국의 강의를 접하고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평소 경제나 정치에 대한 책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책 제목이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와서이끌렸다. 딱딱한 주제와 무거운 전망들을 담고 있어서 읽는 내내 가라앉게 하는 책이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세상에 대한 불안을 알고 2020년을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을 부정적인 틀 안에 집어넣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관심이 가는 심리적 측면에는 대안 제시나 타개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저자가 경제 분야에 오래 몸을 담았다는 점을 생각하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니 살짝 언급만 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책을 쓰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없으니. 저자는 사회적자본 부족과 부의 양극화, 사회적 갈등, 도덕적 해이를 한국이 수축사회로 진입하게 된 원인으로 꼽으며, 현재 한국은 혁명적 수준의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한 4가지 관점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해왔던 해묵은 문제임을 생각하면 특별
2020-02-28 12:59'자유인'을 향한 첫 출발선에서 교직 38년을 포함 공직 생활 41년 4개월을 뒤로 하고 퇴직한지 1년이다. 마치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데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도서관을 찾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교육'이라는 제목이 들어가지 않은 책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퇴직한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새 소식이 올라왔나 검색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놀라는 중이다. 오랜 시간 몸에 밴 관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니 물리학은 삶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1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식사 초대에 다녀왔다. 마라톤 완주를 잘했다며 소소한 자리에 꽃다발, 때론 정성스런 편지와 선물들이 배달되니 실감이 난다. 따로 퇴직 기념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에게 얼굴을 내밀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도리이리라. 문제는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데 그런 자리에 가야 하니 힘들다. 술과 수다를 싫어하니 이래저래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하는 내 성향을 다시 확인하며 사람은 쉽게 바뀔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니,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
2020-02-28 12:59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월 9일 밤(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뿐이 아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ㆍ각본상ㆍ국제영화상까지 모두 4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상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1917’의 3개 트로피보다 많은 4관왕 영화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는 지난 해 5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제72회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 7월 21일 국내 관객 천만 명 돌파에 이은 쾌거다. 그야말로 세계영화사를 새로 쓴 ‘기생충’이다. ‘황금종려상 수상의 천만영화 기생충’이란 글을 이미 쓴 바 있지만, 박수나 치며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건 그래서다. 잠깐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의 의미부터 정리해보자. 먼저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역사 101년 만에 처음이다. 스포츠서울(2020.2.11.)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꾸준히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했지만
2020-02-28 12:58일주일 전 정월대보름 나물을 먹으면서 이야기가 나왔다. 시금치 꼬막 무침을 만들어 먹자고. 왜 갑자기, 하필이면 이 맘 때 꼬막일까? 집에 도착한 공무원 연금지 2월호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꼬막 제철이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다. 조리 방법을 보니 준비물도 몇 가지 아니되고 간단하다.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말이 씨가 된다. 꼬막철은 시기가 정해져 있다. 오늘 도전해 보기로 했다. 딸과 누나를 불러 재미와 추억을 함께 하려 연락을 취했다. 딸은 개인 일정이 있고 누나는 저녁에 합류하기로 했다. 누나와 같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시금치는 국거리용과 나물용 모양새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가 싱싱하기만 하다. 참기름도 샀다. 고소한 참기름과 그냥 참기름 가격차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꼬막 구입은 전통시장을 이용했다. 수산물 가게에 가니 소쿠리에 담긴 꼬막 2kg 7천원, 1.2kg 1만원 두 종류가 있다. 차이점은 씨알 굵기의 차이다. 어느 것을 살까? 싼 것 사가면 아내의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아내는 먹는 재료만큼은 좋은 것을 택하려 한다. 값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 처음 도전인 만큼 맛있는 요리가 탄생해야
2020-02-17 09:52정도전, 그는 천재인가, 사상범인가? -시대를 뛰어넘는 사상가, 정도전 -비운의 2인자 정도전이 말하는 진실한 국가론 -조선의 마키아벨리, 700년 역사를 뒤바꿔버린 조선의 천재 정도전에 대한 나의 편견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그것은 그가 죽인 정적 정몽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조선의 역사 시간,선죽교에서 몽둥이로 죽임을 당한 정몽주는 내겐 우국충신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1960년대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국사 교육은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 개국의 정당성보다는 고려의 충신을 죽인 정도전에겐 배신의 딱지가 입혀졌다. 같은 스승 아래에서 동문수학한 정몽주를 처참하게 죽인 것은 태종의 지시였지만 조선 개국에 방해가 될 인물을 제거하는데 정도전도 일조를 했으니. 700년 조선 역사의 설계도를 그리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반을 다진 정도전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정몽주는 충신이오, 정도전은 반역을 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곱지 못한 시선을 가졌다. 역사 드라마에 등장하는 정도전의 모습도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데 한몫 했다. 새로운 시선으로 읽게 된 이 책은 인간의 편
2020-02-10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