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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버텨라’ 단절된 다문화 아이들

 

#01 _ 다문화 학교가 최선인가
이주민 어머니를 둔 중학교 3학년생 상우(가명)가 ‘다문화학생’을 위한 대안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으니,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란다. 당사자는 뿌듯해하지만, 선뜻 축하하지 못한다. 상우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줄곧 한국에서 자랐다. 상우의 모어는 한국어이고, 어머니 나라의 언어는 거의 모른다.

 

학습에 대한 관심이 적어 학과 성적은 중하위권이고, 아직 특기나 관심 분야를 파악하기 전인 상우는 성격이 밝고 익살맞아 친구들 사이에 개그맨으로 통한다. 딱히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당연히 한국에서 살 것이라 전망한다. 어려서 아버지와 헤어졌으므로 한국 친척들과 관계맺음이 없고,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 출신국 이주민들이 형성한 사회적 연결망의 한끝을 잡고 있다.

 

상우의 고교 진학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사회적 연결망’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연결망은 삶을 지탱하는 그물이다. 인맥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계산 없이 만나 성인이 된 후까지 길고 깊게 유대하는 이들은 대개 학창시절 친구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중요하지 않은가.

 

상우가 이주배경청소년들만 모이는 다문화 대안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선주민 사회’와 연결되는 끈이 약해져 ‘미래의 사회적 연결망’에 메우기 어려운 구멍이 생긴다. 이주배경청소년을 지원할 때 중요하게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다문화 학교’는 그간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주배경청소년을 교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후기 청소년기에 입국하여 차분하게 교육받을 기회도 없이 빠르게 사회에 진출하는 청소년을 위해 직업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주민 맞을 준비가 덜 된 이 사회에서 이주배경청소년의 정착을 돕기 위해 어려운 역할을 도맡아 온 것이다. 그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좀 달리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장 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될 이주배경청소년들의 사회화 과정을 일반 사회와 분리된 상태에서 거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통합교육으로 풀어가야 한다. 혹여 부득이 분리교육을 하더라도 그 기간과 내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글을 보는 선생님들 마음이 답답하리라 짐작한다. 학급에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있을 경우 수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소수일 때는 따돌림이라도 당할까 걱정, 수가 많아지면 자기들끼리 뭉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까봐 걱정이다. 게다가 학습을 따라가지 못해 절망하다 암울하게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있다.

 

이것은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할 문제다. 아울러 한국인 학생과 다문화학생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구조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와 한국 문화를 낯설어한다는 이유로 분리한다면, 이주배경청소년은 사회에서 배제당하는 것에 익숙해질 것이고 반대로 우리 사회는 통합을 위한 아픈 노력보다는 분리라는 손쉬운 길을 계속 선택할 것이다. 적응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선한 취지가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

 

#02_ 이주배경학생들은 다양성 확장의 열쇠
고등학교 1학년생 선아(가명)는 최근 한국사 과목에서 일본국 ‘위안부’에 대한 역사 자료를 읽은 후 일본의 시각을 비판하고 느낀 점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다. 선아는 청소년기에 이주하여 예비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개월을 지낸 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어를 배우며 수업을 간신히 따라가는 중이다.

 

이 과제를 혼자 해낼 역량은 물론 없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나 과제를 도와줄 사람도 주변에 없다. 부족한 한국어가 부끄러워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다.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느라 하루해가 다 간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가까이 있지만, 더 먼 존재들이다. 

 

공교육에 진입한 뒤에도 이주배경학생들은 혼자 넘기 어려운 벽에 갇히곤 한다. 선아와 같은 학생을 지원할 방법이 없을까. 이주배경학생들이 학교공동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방법은 없을까. 


우선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주배경학생을 환대하고, 친교와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주배경학생의 수가 늘어나 학교공동체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역교육청이 이주민과 교류 의지가 있는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이주배경학생과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이주배경학생이 한국어 기초학습단계를 넘어섰다면 비대면 방식, 즉 전화통화와 온라인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고 소통이 깊어질수록 이주배경학생의 사회화가 빨라질 것이다. 


여러 선생님이 ‘다문화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초기 ‘다문화학생’에게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적응교육을 하여 ‘한국화’를 돕는 것으로 시작한 ‘다문화교육’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는 각 교과과정에 다문화주의, 인권과 반차별, 다양성, 상호존중과 공존 등의 개념을 녹여 넣는 방향으로 진전시켜 가면 어떨까 싶다.


선아의 사례로 생각해 보자면, 선아의 출신국 여성들 역시 과거 제국주의 일본군의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피해를 당한 역사가 있다. 만약 한국사 시간에 이 점을 언급하고, 선아에게 출신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할 기회를 준다면 어떨까. 학생들이 그 수업을 통해 ‘선아를 비롯한 선아 출신국 시민들’에게 세계시민으로서 연대감을 느끼는 동시에 다양성을 확장할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또 선아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가지며 자존감이 생겨나고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가 나오지 않을까.

 

늘어날 이주민, 다양성의 산실이 될 학교
공교육에서 공식적으로 이주배경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고 학적을 생성한 지 20여 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결혼이주자의 자녀가 태어나고, 노동 혹은 재정착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 동포와 고려인 동포가 자녀를 동반하며 ‘다문화학생’ 규모가 상당해졌다. 이주민 밀집지역에 자리한 일부 학교들은 밀려드는 이주배경학생들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다. 반면 해당 학교가 아닌 경우에는 강 건너 불 보듯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이 매우 큰 폭으로 변화할 것이라 예상된다. 그 배경에는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이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단순 기능을 가진 이주노동자의 정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을 펴왔다. 숙련 노동자에게 매우 제한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지만, 그것은 바늘구멍 수준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착을 기본으로 하는 ‘이민정책’으로 변화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진행했거나 진행을 예고한 내용을 살펴보자.  


- 조선소에 정착 및 가족 동반 가능 비자로 용접공 대규모 도입
- ‌이주노동자가 기술 숙련도를 높이면 장기체류와 가족 동반이 가능한 비자로 바꿔주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제도의 쿼터를 기존 2천 명에서 3만 5천 명으로 확대
- ‌유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뒤, 사무직·전문직에 취업하는 경우에만 비자를 연장해 주던 것에서 앞으로는 졸업 후 3년간 취업 전면 허용
- ‌유학생이 인구감소 지역에 거주하기로 하고 지자체의 추천을 받아 자유롭게 취업하는 ‘지역특화비자’ 확대
- 농축산업 분야 계절노동에 5년 이상 참여하면 가족 동반과 정착 가능한 비자 제공
- 가사 및 돌봄 노동 분야에 외국인 취업 허용
- ‌인구감소지역에서 요양보호사로 5년 이상 근무하면 영주권 취득과 가족 동반 가능 비자 제공 

 

일일이 열거하기 숨 가쁠 정도다. 이대로 실현되면 장기체류와 가족 동반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이 동시에 급격한 인구감소 시대를 맞이하면서 부족한 인구를 이민 확대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이주민을 ‘더 빨리, 더 많이’ 초대하려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주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할 수 있고, 정착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조만간 이민청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이민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공동체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명확하다. 학교는 이주배경학생이 대폭 증가하여 인종·민족·종교·언어·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의 산실이 될 것이고, 달라진 사회의 특성에 맞는 시민을 키워내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통합은 이주민과 선주민이 같은 사회, 같은 공간 속에서 공동의 경험을 쌓아가며 동질감과 연대감을 키워야만 가능하다. 갈등과 오해를 줄이며 통합을 이루고자 한다면 꾸준하고 성실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 상우처럼 큰 까닭 없이 분리교육으로 밀어 넣어서도, 선아처럼 알아서 버티라 무관심해서도 곤란하다.

 

‘사회적 연결망’ 안으로 이주민을 적극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평등하고 밀도 있게 상호의지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이주민은 짧은 기간 고용해서 노동력만 사용하고 내보내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평등 속에 함께 일하고, 함께 세금 내고, 함께 아이 키우고, 함께 국민연금 쌓아가며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교육이 담보할 부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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